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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압둘라 자크 구르나 그리고 치누아 아체베

아프리카 문학의 힘을 생각하다.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탄자니아 출신 소설가 압둘라 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73)가 선정되었다.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Wole Soyinka)가 지난 1986년 노벨문학상을 탄 이후 35년 만의 아프리카 출신 흑인 작가의 수상이기도 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7일 오후(한국시간)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들의 운명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연민을 갖고 열정적인 통찰을 보여줬다"라고 수상 배경을 밝혔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1948년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서 태어나 1968년 유학을 위해 난민 신분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및 런던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구르나의 모국어는 스와힐리어이지만 21살 때부터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산문에는 종종 스와힐리어, 아랍어 및 독일어의 흔적이 반영돼 있다.


구르나는 1987년 '출발의 기억'(Memory of Departure)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0편의 장편을 발표했다. '출발의 기억'과 '순례자의 길'(Pilgrims Way·1988)과 '도티'(Dottie·1990) 등 초기 작품들은 영국에서의 이민자 경험을 다루고 있는데 그중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던 '낙원'(Paradise·1994)은 식민주의의 상처를 입은 동아프리카 국가의 한 소년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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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은 구르나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탈식민지 작가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라고 평했다.

이날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구르나는 스웨덴 한림원의 수상자 발표 이후 "너무 멋지고 좋은 일"이라고 감격의 소감을 밝혔다. 구르나는 "발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고 정말 놀랐다"라며 "아직도 (수상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중이고, 저와 제 작품을 추천해주신 스웨덴 한림원에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마리즈 콩데, 앤 카슨, 응구기 와 시옹오, 마거릿 애트우드 등을 겨냥하여 국내에서도 번역물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의 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어로 번역된 구르나의 작품은 없다. 그의 작품을 아직 접해보지 못하였지만 탈식민주의와 난민의 운명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서구 위주였던 것에 비해 탄자니아 출신 소설가의 수상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물론 탄자니아에서 줄곧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그의 문학작품의 모태에는 탄자니아의 정신. 더 넓게 생각하면 아프리카의 정신이 녹아있을 것이다.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는지, 기뻐서 춤을 추고 있는지'란 질문에는 웃으며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 자들은 의외로 담담하다. 샴페인을 터뜨리지도, 기쁨의 춤을 추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문학이란 일상이어서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해도 일상은 일상인 것이다.


최근 2007년 부커상 수상작가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를 읽었었다. 45개 언어로 출간되어 1000만 부 넘게 팔린 아프리카 문학의 고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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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아프리카, 우무오피아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주인공 오콩고는 성격이 불같고 공격적이며 권위적이다. 아버지가 불명예스럽게 죽은 후 그는 부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전쟁에도 앞장선다. 오콩고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에 남자다움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어서 여자다운 것, 나약한 것을 스스로 거부하고 경멸하려 한다. 양자나 다름없는 이케메푸나를 자신의 도끼로 죽인 것도 남자다움과 강인함에 대한 집착이라 할 수 있다.

오콩고는 예기치 못한 실수로 인해 마을에서 추방당하고 7년 후에야 마을로 돌아오는데 마을은 백인 교회를 중심으로 유입된 서구 문명 때문에 혼란에 휩싸여 있다. 부족의 전통에 따라 버려지고 소외당했던 이들과 억압받던 여성들이 이런 움직임에 합류하면서 백인들의 교회는 점점 세력을 확장해가고 학교와 법원이 들어서면서 주술사가 아닌 백인의 법에 따라 부족민으로 지배하기 시작한다. 오콩고는 거대한 세력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오콩고의 시신이 매달린 나무에 도착했을 때 오비에리카는 시신을 내리려면 이방인이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 우리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죄악입니다. 대지의 여신을 거역하는 것으로 이를 저지른 남자는 불길한 것이어서 동족이 묻어줄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지켜오던 생활과 문화가 서구 세력의 침입에 의해 서서히 몰락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으며 전통 사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해버린 제국주의 세력과 기독교에 대한 비판, 그에 저항하는 부족민들의 나약함과 수동성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을 탈식민주의 문학의 고전이라 칭한다.

이 작품에는 이보어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데 ‘치’라는 단어는 ‘개인 신’이란 뜻이라 한다.

누구나 자기 안에 ‘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보 속담에 “예”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의 치 또한 “예”라고 말한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문학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아프리카 문학...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탄자니아 출신이다 보니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들이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든 본래의 자기 것에 충실하는 것.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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