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살아가는 조르바처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순간을 살아가는 일. 카르페 디엠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조차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조르바 자네 이 순간 뭐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화자인 나는 갈탄 채굴을 위해 크레타 섬에 광산을 운영한다. 크레타로 가는 배 안에서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 그와 함께 갈탄 채석장 사업을 시작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는다. 장비를 구하러 뭍으로 나간 조르바는 평소 그의 습관대로 여자의 마음을 사고 즐기기 위해 사장의 사업자금의 일부를 이용해버린다. 조르바는 고해성사를 하듯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화자인 나는 분노하지만 곧 깨닫는다. 오히려 먹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논리와 이성 속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자신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오렌지 나무가 있는 과수 집 여자의 육감적인 몸에 마음을 빼앗겼음에도 자신의 육체를 이성으로 억누르려 애쓴다. 통제된 상태. 일체의 욕망까지도 통제된 상태를 이상적이라 여기는 그와 정반대로 조르바는 육체의 언어에 귀 기울이고 육체가 이끄는 대로 반응한다. 조르바에겐 미래란 없다. 조르바에게는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는 미래를 소환해서 살지 않는다. 갈탄을 캘 때는 갈탄이 되고, 여자와 사랑을 나눌 때는 사랑만 생각하고, 오직 그 여자만 생각하고, 술을 마실 때는 술만 생각하고, 춤을 출 때는 춤만 생각하는 것. 조르바처럼 살아가는 것... 말하기는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사실 나는 조르바처럼 살지 못한다 조르바보다는 사장의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다. 실수를 한다거나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저지른다거나 그런 것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사회가 정한 틀이 아니라 내가 정한 틀에 사로잡혀 있고 그 틀을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잠이 들면서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눈을 뜨면 그것은 다음 날이었던 것이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있다. 미래이던 것이 현재가 되어있는 것이다.

과거 돌아보기와 미래 끌어당겨 쓰기는 어리석다. 때론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현재뿐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조르바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글만 쓰고 책을 볼 때는 책만 보는 것. 사랑을 할 때는 사랑만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검은 옷의 암말처럼 풍만하고 육감적인 과부를 죽인 마을 사람들. 그녀를 얻지 못한 절망감에 자살한 파블로에 대한 응징. 사람들은 오렌지 꽃물 냄새와 올리브 잎사귀 냄새가 풍기는 그녀를 응징한다. 기어서라도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그녀를 마을 사람들은 거대한 바리케이드처럼 막아선다. 그녀가 움직이는 곳마다 사람들이 만든 바리케이드도 따라 움직인다. 날렵하게 도망치려는 그녀를 늙은 마블란도니가 덮쳐 순식간에 목을 따서 전리품처럼 교회 문패에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앞에 나와 조르바는 손을 쓸 수조차 없었다.

광기, 악의 구체화. 피가 끓은 남자들은 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음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젊은 처녀들과 늙은 아낙네들은 마을 남자들의 관심이 온통 과부에게 쏠린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과부의 죽음은 그녀를 사랑하다 죽은 파블로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국은 그들 안의 또 다른 욕망이 빚어낸 죽음이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낸 나무 조각도 성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믿음에 대한 이보다 더 명쾌한 말이 또 있을까?

조르바는 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알아가는 남자다. 그는 세상을 몸으로 읽고 받아들인다. 세상은 모두가 그가 머물 항구이며 그가 떠날 항구다. 반면 나는 세상을 펜 끝으로 해석한다. 살다 보면 세상은 이성만으로 되는 곳은 아니었다. 몸을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곳에서 펜 끝을 보며 저울질하는 사이 세상은 자기만의 속도로 흘러가버렸다.


조르바는 육체가 원하는 욕망을 욕망으로 채운다. 먹고 싶어 눈앞에 아른거리는 버찌 때문에 잠을 잘 수조차 없으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버찌를 마구 먹고 그 욕망으로부터 벗어난다. 나의 욕망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돌아보면 나는 제어된 이성 안에 욕망을 누르고 산다. 이성이 꼭 진리는 아닌데도 마치 그것이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어쩌면 그 또한 위선이 아닐까?

돌아보면 삶에서 내가 만들어낸 궤적 아닌 것이 없다. 살아가면서 무언가 결여되어간다고 느낄 때, 원하지 않는 무기력이 몰려올 때 조르바를 읽는다. 그러면 조르바는 내가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 조르바는 온몸으로 말한다. 이성 따위는 집어던지라고.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조차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조르바 자네 이 순간 뭐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사람들은 생각이 많다는 것을 신중하다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실천을 겸비한 생각이 아니라 걱정에 대한 생각, 불안감에 대한 생각, 주저함에 대한 생각이라면 그 생각들은 자신의 삶을 이끄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펜 끝이 아닌 온몸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조르바.

몸은 정직하고 몸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르바는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일! 오직 그 순간만을 생각하는 일! 인생에 대한 조르바식 조언이다.




Den elpizo tipota

I hope for nothing.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Den forumai tipota

I fear for nothing.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Eimai eleftheros

I am free.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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