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당신의 고도는?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날마다 고도를 기다리다. 언젠가는 누구든 예외 없이 죽을 운명인 인간들이 삶 속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몸부림치는 것은 ‘부조리’한 모습이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향해가면서도 그 운명의 반대를 향해 걸어가려는 것. 개인이 살아있는 동안 어떤 업적을 쌓았다 하더라도 그 업적과는 무관하게 땅 속으로 혹은 하늘로 돌아가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오지 않을 사람 혹은 오지 않을 무엇을 기다리는 것. 이미 오지 않을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으면서도 끝없이 기다리는 것.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다림’의 부조리를 보여준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핵심은 바로 '기다림'이다.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등장해 이해할 수 없는 허튼소리를 내뱉으며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다. 그들은 시골길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린다. 날마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우문우답을 나누는 두 사람. 고고는 침묵이란 저마다 혼자 지껄이는 행위라 말하고 디디는 저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진 인간들이 잠깐 사는 동안 그 뒤로도 잠깐이라는 시간 동안 모두가 한꺼번에 지껄이게 된다고 말한다.
포조 역시 ‘잠깐’ 생은 잠깐이라는 말에 주목하는데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운명이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순간에 불과하다면 삶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다.’ 삶의 한시성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표현을 빌면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다고 말한다.
이 작품의 끝에서 두 사람 모두 ‘가자’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가만히 앉아있다. 1막의 끝에서도 고도는 오지 않는다고 소년이 알려주고 2막의 끝에서도 소년이 나타나 고도는 오늘은 오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고도’는 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언제라는 예정이 없는 기다림이 있을 뿐이다.
블라디미르: 자,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그래, 가세.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일,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언제까지나 기다릴 뿐 결코 찾아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마치 인생의 의미를 ‘고도를 기다리는’것에 둔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 고도가 오지 않으면 목을 맨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결코 목을 매지 못할 것이다.(목을 매지 않을 것이다) 목매달기 딱 좋은 크기의 나무를 바로 곁에 두고 끈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목을 매달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고는 있지만 고도가 오든 안 오든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도’란 마치 그들이 기다려야 하는 당위, 목적 같은 의미를 주지만 정작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고도의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사소한 것을 두고도 ‘되는 일이 없어’, ‘ 더는 못하겠어’라는 포기와 ‘아직 다 해본 건 아니잖아.’라는 기회 사이에 방황한다. 그들의 대화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고, 반드시 고도를 만나야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디디와 고고는 대화를 나누지만 정확한 대답을 기대지 않는다. 동문서답이 오가는 그들, 대화가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지껄일 뿐이다. 고도가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반드시 올 것이라 기대하고, 고도가 분명 오늘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도 내일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기다림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고도’를 찾아 나서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고도’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확신은 행위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확신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기다림을 정당화한다.
어쩌면 삶도 그러한 게 아닐까? 디디와 고고처럼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저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고도로 상징되는 그 무엇인가가 반드시 오리라는 희망 속에 견디며 살아가는 것.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고도’는 우리에게 정확히 언제 올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삶 속의 ‘고도’는 기다려야 할 것인지, 찾아 나서야 할 것인지 모호하다. 나무 아래 앉아 막연히 날마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 그래도 언젠가는 오리라는 기대를 품는 일, 기다리는 대신 ‘고도’를 찾아 길을 떠나는 일, 길을 떠나도 ‘고도’를 만날 수 없다면, 고도'의 실체에 대한 회의마저 밀려온다면 기다림은 부조리하다.
그러하지만 저마다의 기다림과 저마다의 찾아 나섬이 어떤 명백한 확신이나 의미를 품는 것이라면 헛되지 않은 일일 것이다.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 그리고 찾아 나서는 ‘고도’. 우리들 인식의 부조리함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고도는 당신에게 누구이며 그리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