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윈스턴과 데이비드 란쯔의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조지 윈스턴의 'Thanks giving'이 들려온다. 이어지는 음악은 데이비드 란쯔의 return to the heart... 피아노 선율에 따라 나도 모르게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음악을 듣는다.
오래전 퇴근길에 듣던 음악을 또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듣는 동안 음악은 나를 과거로 끌고 간다. cd도 아니고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대. 조지 윈스턴의 윈터, 스피링, 겨울에서 봄으로.. 디셈버를 무던히도 자주 들었다. 퇴근길이면 자연스럽게 레코드, 음반 가게에 들러 새로 나온 클래식 음반을 사곤 했다.
피곤했던 하루의 끝, 차 안에서 듣는 피아노 음악을 나를 구원하는 도구처럼 여겨졌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젊음을 소모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하는 일이 나의 미래일까? 미래에 대한 보장인가 미래에 대한 규정인가.. 일을 하면서도 늘 같은 고민을 품고 살았다. 사무실 유리창으로 바라보이는 하늘, 새라도 날아가면 그 새가 그리도 부러울 수 없었다. 새 또한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나는 것일 텐데 나는 그 새의 비상이 자유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바랐다.
어느 순간 30대가 40대가 되고 더 더 빨리 나이 먹어 버리기를 바랐던 것은 그때쯤이면 무언가가 되어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20대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늘 흔들리던 시대였다. 형체 없이 주어지는 젊음의 시간은 부담스러웠다. 형체가 없기에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형체가 없었기에 형체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 속의 음악,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음악과 데이비드 란쯔의 피아노 음악이 나를 깨운다. 세상의 틈에서 꼬박꼬박 급여를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문득 버겁다고 생각했던 젊은 날. 그 치기어림이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게도 하였다. 살아오면서 소모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세상의 삶 속에서 소모되지 않았을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소모되지 말아야 한다는 그 결기마저 이미 소모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소모품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나를 소모하고 있는 것일까?
항상 나로 살고자 했다,
세상의 틈에서 틈에 끼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틈'이 되고 싶지 않았다.
Thanks giving day.. 추수감사절... 주어진 날에 감사하는 날.
주어진 선물 같은 날에 감사하는 날이라는 윈스턴의 음악은 지금의 내게 무엇이 주어졌으며,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지를 생각하게 한다.
심장으로 돌아가라.... 란쯔의 음악도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게 질문처럼 다가온다.
심장으로 돌아가는 일은 초심을 잃지 않는 일처럼 여겨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울 하늘이 금세 어두워진다.
신호 대기 중인 차 안에서 심장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잊어버리고 살아버린지도 모르는 그 무엇을 끌고 나의 심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심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일깨워준 Thanks giving day에 대해서....
윈스턴의 음악 December를 다시 들어야 할 시간이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