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대륙의 한 조각, 대양의 일부이기에
그을린 휴식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소방관들은 이것이 마지막 사진이 될 줄 알았을까. 6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평택 송탄소방서 이형석 소방경, 박수동 소방장, 조우찬 소방교가 화재 진압 도중 찾아온 짧은 휴식 시간에 동료들과 검게 그을린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속 나머지 2명은 현장에 투입됐다가 자력으로 탈출한 팀원들이다.
팀을 이끌던 이형석 소방경은 다른 소방서 동료 및 지역 의용소방대원이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6일 오전 7시 21분에 이 사진을 공유했다. 화재 현장에 재투입되기 1시간 47분 전이다.
이 소방경은 6일 새벽 0시 17분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청북 고렴리 신축 건물 화재 대응 1단계"라는 짧은 글로 자신의 작전 투입 사실을 알렸다. 이후 아무 말이 없다가 “조심해. 밤이라 인명 피해는 없지?”라는 지인의 물음에 오전 7시 3분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기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한국일보 기사 내용 일부 인용)
한국일보 신문에 유족의 동의를 얻어 게재된 마지막 사진 한 장.
이. 박, 조 소방관들이 그을린 얼굴로 해맑게 웃고 있다.
사진은 “ 그을린 휴식”이라는 다섯 글자로 설명되고 있다.
아무도 없는 냉동 창고 신축 공사장에서의 화재 진압, 1차 진압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 동안 찍은 사진이라 한다. 이후 가연성 물질이, 인화성 물질이 많은 2층에서 다시 화재가 발생 진압 작업 중이던 5명의 소방관 중 3명이 순직하였다. 최초의 불은 6일 밤 11시 45분 발생이고 7일 새벽까지 1차 진압, 그리고 돌아오지 않은 3명의 소방관.....
사람 없는 건물에 발생한 화재, 무리한 진압으로 소방관의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다는 소방 노조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화재에 무리한 진압이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을 듯하다.
이미 화재가 발생한 신축 건물은 잔여 불씨가 남아있는 한 더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기에..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소방의 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다.
소방관들의 영결식 장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의 모습이 그들의 그을린 얼굴들과 겹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수록된
존 던이라는 17세기 영국의 종교시인은 ‘죽음에 임해서의 기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드니, 그건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내가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에 어떤 한 사람의 죽음도 나를 그만큼 감소시킨다는 시인의 말이 소방관들의 죽음 앞에 내 가슴이 고통스럽도록 아픈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의 죽음은 곧 우리들의 죽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휴식... 꿀 같은 휴식, 달콤한 휴식이라는 말은 흔히 쓰지만 그을진 휴식이라니.
그 다섯 글자가 여전히 마음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세상살이에 그을진 휴식뿐이겠는가.
그늘진 휴식, 휴식 같지 않은 휴식, 휴식 아닌 휴식, 비참한 휴식, 분노한 휴식.....
그늘지고 그을리고 굶주리고 허기진 사람들의 사회...
방송에서 연예인들의 아이들이 나와 쌀을 바닥에 부어놓고 촉감놀이를 한다고 하는데(물론 집들이로 가져간 쌀을 아이들이 실수로 바닥에 엎어서 시작되었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그 쌀 한 톨도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겐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송인가.
모든 일들이 그러하지만 ‘나 아니면 그만이다.’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고통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지 말았으면 , 누군가의 눈물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가슴속 외침과 절규를 무시하지 말았으면
존 던의 시처럼 우리는 모두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가 아닌가.
그을린 휴식 속 가장 찬란한 미소를 짓던 세분의 소방관들도 대륙의 한 조각, 대양의 일부를 품고 어디론가 떠났다. 누군가는 그들이 뜨겁지 않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새해가 시작된 지 일주일. 누군가의 죽음들은 왜 이리도 마음을 뒤흔드는 것인지.
신문을 펼치기가 두려운 아침.... 가식 와 오만과 연기와 위선이 판치는 정치권의 뉴스는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쌀을 거실 가득 쏟아부어놓고 촉감놀이를 한다는 아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아이들은 몰라서 그리했다라고도 하겠지만 이미 어른인 그들은.... 몰라서 그리하는 것이 아닐 테니...
아침이 오고 있다,
누군가의 눈물과 고통과 슬픔이 만들어낸 아침들이다.
그을리고 그늘지고 고통스러운 새해가 아니기를 모두에게 기원한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