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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의 몸짓과 절박한 외침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  올가 토카르추크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가 『방랑자들』을 발표한 지 일 년 만에 내놓은 범죄 스릴러물이다. 인간에 대한 자연(동물)의 복수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존재를 향한 연대의 몸짓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2017년 폴란드 출신의 거장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감독이 <흔적>이란 제목으로 호평으로 받았고 은곰상을 수상했다.


 사회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두세이코라는 60대의 여인, 체코와 폴란드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42킬로미터 길이의 산, 정상 부분이 칼로 자른 듯 평평해서 ‘고원’이라 부르는 곳에서 다른 이들의 집을 관리해주는 일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고등교육을 받은 지성인이면서 예민한 감수성,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지만 주변인들은 정신 나간 여자 취급을 한다.      


눈 내리는 밤, 산간마을 오두막으로 괴짜가 찾아와 두셰이코의 잠을 깨운다. '왕발'의 집으로 이동하며 목에 사슴뼈가 걸려 죽은 왕발의 시신에 옷을 입히고 침대에 눕힌다. 목 잘린 두 마리 사슴의 눈동자. 어둠 속 고요한 시선에 두세이코는 어떤 떨림을 느낀다. 왕발의 생년월일을 확인하기 위해 서랍을 뒤지다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사진...

“갑자기 적막이 밀어닥쳤다. 내 몸은 긴장했고 싸울 준비를  마쳤다. 음울한 통곡이 들렸다. 목소리, 쇳조각이 쩔렁거리며 부딪치는 소리, 바퀴의 삐걱거림, 분노는 모든 지혜의 근원이었다. ”     

"그 사진 한 장에는 제복 입은 사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에는 짐승의 사체가 줄 맞춰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중략... 동물들의 시신은 마치 내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메시지처럼 줄지어 놓여있었다. 죽은 동물들이 만들어 낸 기나긴 말줄임표.... 사진 한 귀퉁이에 새하얀 털과 검은 얼룩의 개 세 마리. 그중 두 마리는 바로 내 딸(두세이코의 개)들이었다."

가운데는 경찰서장, 그 옆에는 회장. 특공대원 복장을 한 브넹트샥, 사제용 로만 칼라를 목에 두른 바스락 신부... 그 옆에는 그 옆에는....     왕발의 죽음 이후 고원에서 연달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살해된 이들은 사진 속 주요 인물 4 사람 경찰서장과, 회장, 신부, 브넹트샥. 죽음의 현장마다 사슴의 발자국이 범죄의 무늬처럼 남아 있다. 사고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두셰이코는  인간에 대한 동물의 복수라고. 소리친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연작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 중에 나오는

“한 때 유순했던 의인은

험난한 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죽음의 골짜기를 따라서“로 시작된다.     

한 때 유순했던 의인은 두세이코였다. 불법 사냥에 대해, 왕발의 불법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아무도 관심조차 두지 않으며 심지어 두셰이코를 향해 미친 노파라고 수군댄다.

 불법인 밀렵과 달리 사냥은 '법의 테두리'에서 허용된다며 '사냥 달력'을 발행하는 마을, 동물은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이고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며 사냥을 옹호하는 교회, 모피 암거래를 위해 여우를 키우는 농장. 모든 것이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현실에 대해 두셰이코는 생각한다. "인간의 정신은 우리가 진실을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발달된 것"일까. 불리한 정보를 걸러내어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하는 "방어 체계"가 아닐까.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한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끊임없이 상중(喪中)이다. 이것이 바로 두세이코의 상태였다     

결국 유순한 두세이코는 왕발의 주검 앞에서 목격한 사슴의 간절한 눈동자를 떠올린다.

자신은 도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슴을 대신하여 범법자들을 응징하겠다고. 그리하여 기꺼이 그들(동물)들의 도구가 되어주겠다고...     

사람을 동물의 이름으로 응징하면서 두세이코는 유순한 의인에서 정의의 형벌을 내리는 대담한 전사로 변해간다. 칼이나 총, 둔기 같은 인간의 도구가 아닌 얼린 얼음. 4명 연쇄살인에 사용된 도구는 냉동고에 얼려 비닐봉지에 싼 뾰족한 얼음이다. 가장 자연다운 살상용 무기로 인간을 응징한다. 그리고 주변에 왕발의 집에서 발견한 사슴 발로 사슴 발자국을 주변에 남긴다.     

왕발의 집에서 ‘덫’을 가져온다. 어리고 유연한 나무를 골라서 땅을 향해 구부러뜨린 뒤 단단한 나뭇가지에 철사 올가미를 고정한다 동물이 올가미에 걸리면 몸부림치기 시작하고 그 순간 나무가 곧게 펴지면서 동물의 목을 부러뜨린다. 두세이코는 중간 정도의 자작나무를 골라 간신히 구부려 살인 도구를 설치해두었다.

어린 딸(개)들의 시체를 여우들에게 먹인 장본인이었으므로 사냥을 했으므로 동물들의 가죽을 벗겨냈으므로 두세이코는 공정한 형벌이라 생각했다          


폴란드어로 ‘amboda'는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제가 오르는 연단, 또 하나는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쏘기 좋게 만든 연단.

같은 단어이지만 극과 극의 의미.. 거룩한 복음을 선포하는 연단과 살생을 위한 총알을 발사하는 연단.

두세이코는 묻는다. “ 우리는 왜 꼭 유용한 존재여만 하는가? 대체 누군가에게 또 무엇에게 유용해야 하는가?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리 하느냐”라고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윌리엄 블레이크의 연작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 증 ‘지옥의 격언’에서)

올가토카르추크가 제목으로 이문장을 뽑았을 때 출판사 편집자는 기괴한 제목이라 난색을 표했지만 올가토카르추크는 “너무 아름다운 시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한 줄의 문장이 바로 작품의 모토 메시지이고 상징이자 메타포이기 때문이다.‘며 제목으로의 주장을 관철시켰다고 한다.     


이 시구는 이 책이 내포하는 모든 암시를 드러낸다. 옮긴이 최성은은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쩌면 거대한 무덤일지 모른다. 죽은 이들의 뼈가 묻혀있는  대지에 두 발을 딛고서 선조들이 남긴 흔적들을 발굴하고 해독하고 대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생이 허락된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기에”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기괴한 제목에 끌려서였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명령형으로 끝나는 어미의 강력함.

죽은 이들의 뼈, 여기서 죽은 이들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을 상징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죽음. 그 죽음을 딛고 후대의 사람들은 쟁기(생계유지 혹은 생존유지의 수단)를 끌어야 한다. 최성은 옮긴이의 견해대로 세상은 거대한 무덤이고 우리는 그 대지를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하다 보니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여길 수 없다.     


4명의 연쇄 살인을 저지른 (그녀의 표현을 빌면 정의의 응징) 그녀가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금성 덕분에 경찰 추격을 피해 무사히 국경을 넘어 체코로 건너가는 결말은 다소 불편하다.

“ 비너스는 시시각각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들어섰고 좋은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았다. 비너스는 나의 안내자였다.”      

도덕적으로 불편한 결말이라 해도 그리하는 것이 주제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리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국경을 넘기 전 경찰에 체포되어 연쇄살인범의 최후를 걷게 된다면 '연약한 의인‘이 ’ 강력한 전사‘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던 전체적인 서사가 흔들리고 말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응징한다는 것인지. 그녀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것은 동물을 대신하여 행한 행동일 뿐이다.. 그녀가 살인을 저지른 뒤 사슴 발자국 도장을 남기는 것은 동물의 이름으로 자행할 수밖에 없었던 정의에 대한 증명일 것이다.      


책에 수록된 문장 하나하나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존재를 향한 연대의 몸짓이면서 절박한 외침이다. 가장 작은 것 속에 가장 큰 것이 담겨있음이 분명하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저는 사슴들, 그리고 다른 잠재적 가해자인 동물들이 처벌받지 않기를 청합니다. 저의 조사에 따르면 그들에게 주어진 혐의는 결국 사냥꾼이었던 피해자들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행위에 대한 피치 못할 대응이었기 때문입니다. ”

                                                             존경을 담아서              두세이코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

겨울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나무가 거대한 사슴의 머리처럼 보였다

거룩한 결기가 느껴지는 사슴의 뿔이 하늘을 겨누고 있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를 두세이코처럼 중얼거려본다./ 려원

          

* 책 속의 문장들     

한때 유순했던 의인(義人)은 험난한 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P. 73 이 모든 것이 끔찍스러운 슬픔으로 사무쳐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고원이 빚어내는 흑백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슬픔이 세상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픔은 모든 것의 본질 가운데에 있으며, 다섯 번째 원소이자 정수였다.     

P. 124 블레이크가 살아서 이 모든 것을 봤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주’에는 아직 ‘타락’하지 않은 곳들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그곳에서 세상은 망가지지 않았고, 에덴동산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거기에서 인류는 어리석고 엄격하기만 한 이성의 법칙이 아니라 마음과 직관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들은 헛소리나 지껄이며, 자기가 이미 아는 것을 뽐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놀라운 것들을 창조한다. 국가는 더이상 개인의 일상을 억압하는 족쇄를 채우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희망과 꿈을 실현하도록 돕는다. 개인은 기계처럼 돌아가는 시스템의 톱니바퀴나 특정한 역할 수행자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로 탈바꿈한다.  

P. 148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한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喪中)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P. 165 “고통받는 사람은 신의 뒷모습을 본다.”

나는 여기서 뒷모습이란 게 등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엉덩이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의 앞모습조차 상상하기 힘든데 뒷모습은 과연 어떨까. 어쩌면 이 말은 고통받는 사람은 일종의 쪽 문과도 같은 특별한 창구를 통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축복을 받으며,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진리를 포착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건강한 사람이란 결국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삶의 조화와 균형이 맞춰지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P. 179 경사진 구시가지 광장에 멈춰 서자 오가는 사람들과의 강렬한 유대감이 마치 파도처럼 내 안에 차올랐다. 이 사람들 모두가 내 형제이자 자매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너무도 연약한 데다 필멸의 숙명을 타고난, 쉽게 파괴되는 존재다.

P. 208 가장 작은 것 속에 가장 큰 것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탁자 위에 행성의 배열, 나아가 우주 전체가 깃들어 있다. 온도계, 동전, 알루미늄 숟가락, 그리고 도자기 컵, 열쇠, 휴대폰, 종이 한 장과 펜, 내 회색빛 머리카락 중 하나의 원자에는 생명의 기원이, 그리고 세상에 그 시작을 부여한 우주적 재앙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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