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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발

그것으로 좋은 것,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 그런 그릇 하나 품고

막사발     

막사발의 ‘막’은 ‘마구’의 준말이다. ‘앞뒤 헤아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거칠거나 품질이 낮은’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막가다, 막말, 막벌이꾼, 막살이, 막잡이 등에 붙은 ‘막’과 같은 뜻이다.

 16세기 일본으로 건너가 ‘성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할 정도의 가치를 지닐 정도로 한류 바람을 일으킨 품목은 청자도 백자도 분청사기도 아닌 ‘막사발’이다.

현재 교토(京都) 다이도쿠샤(大德寺)에 보존되어 있는 조선 막사발 ‘기자에몬이도’는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있고 보물로 3점, 중요 문화재로 등록된 것만도 20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왜 조선에서는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한 막사발을 그토록 고귀한 존재로 받아들였을까? 별다른 장식이 있는 것도 날렵하고 매끈하며 세련된 것도 아닌 막사발. 지나치게 평범하여 아무도 주목받지 못한 황토 그릇에 일본인들이 매료된 이유는 바로 ‘꾸미지 않음’에 있을 것이다. 사심이 없는 그릇, 그 안에 무엇을 담는다 해도 거부하지 않을 그릇, 그 안에 밥이든 국이든 술이든 이슬이든, 바람이든 햇살이든 그 무엇이 머문다 해도 품어줄 그릇이기 때문일까.     


“평평범범(平平凡凡)한 모습이다. 무엇 하나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 한 군데 꾸민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더 심상(尋常)한 것이 없다. 전혀 하(下)치의 물건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범범(凡凡)하고 파란(波瀾) 없는 것, 꾸밈 없는 것, 사심(邪心)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는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 세계적인 동양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우리의 막사발을 두고 이같이 극찬했다고 한다.

"하(下)치의 물건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것으로 좋은 것이며 그러하기에 좋은 것이라니...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을까. 


 16세기 조선에서 막사발은 대접받는 그릇이 절대 아니었다. 있으나 없으나 깨지면 아까와할 필요도 없이 금세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한 그릇. 너무도 흔하고 평범해서 도리어 소중함을 느낄 수 없는 그릇이었다.     

공자의 논어 위정 편에 < 군자불기>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과 같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공자가 그토록 강조한 ‘군자’는 인과 의를 실천하는 존재다. 군자는 하나의 그릇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에 중점을 두어 생각하면 ‘막사발’이야말로 ‘군자’에 걸맞은 그룻이 아닐까.

막사발의 인품은 군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 된다. 가장 '막'써도 되는 천해보이는 그릇에 군자의 기품이 서려있는 것이다. 


그릇의 용도는 무엇일까? 흙으로 빚어진 옹기들이 뜨거운 가마에서 제 몸을 태운다. 고통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 그릇들의 용도를 정하는 이는 사람들이다

귀하게 쓰일 존재, 막 써도 되는 존재로 규정되는 것은 빚는 이의 마음보다는  쓰는 이의 마음이겠지만 본디 똑같은 흙의 온기를 받았을 옹기들의 서열화는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다. 어떤 그릇도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을 요구할 수는 없으리라. 그릇의 용도는 그릇의 특징이나 그릇의 재질이나  여러 요인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여기저기 막 써도  되는 막사발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도리어 용도성에 갇히지 않은 큰 그릇임에 틀림없다. 어디든 가리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의 그릇이다. 무엇이든 품을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한계를 정하지 않는 그릇. 그러하기에 막사발은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는 그릇이다. 설령 그 그릇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개, 소나 말이나 닭이더라도 그들의 생명줄을 품어주는 그릇이니 얼마나 거룩한가.


눈앞에 아무것도 담아두지 않는 막사발 하나 놓아두고 싶다. 막사발 안에 내가 담고 싶은 모든 것들을. 나의 한숨과 눈물과 열망과 고통과 설렘과 두려움과 소망과  특별한 의미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의 권태나 지루함이나.... 모래알처럼 자잘한 삶이 이야기들을 ‘막’ 담아둘 그런 그릇 하나.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처럼  "범범(凡凡)하고 파란(波瀾) 없는 것, 꾸밈없는 것, 사심(邪心)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는 것"...... 그러하기에 좋은 것... 그런 그릇 하나 놓아둔다면...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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