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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홀로 걷는 달

패자 부활전 같은 격려와 위로의 달.... 

2월 1일

새해 새날.... 

새해를 맞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우리는 또 새해를 맞는다.

 몇 시간씩이 더 걸리는 정체를 견뎌내며..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러 도로를 달려오고... 서로 덕담을 나누고 안부를 묻고 성묘를 가고... 음식을 장만하고 온기를 담은 선물을 준비하고.

근 2년...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는 여전하지만... 

고향을 향하는 저마다의 마음은 설날이다.

달력을 넘기며 벌써 1/12를 소모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나의 1월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2월... 가장 짧은 달. 2월은 달력을 바꿈과 동시에 또 그렇게 가버릴 것이다.

새해를 맞고 한 달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을까. 분명 무언가를 했었다. 늘 분주하였고... 늘 시간에 쫓겼고.. 늘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러함에도 무엇을 하였는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구정이라 부르는 음력설은 일종의 패자 부활전 같은 것일까. 분명 무언가를 하였고 새해 다짐을 하였지만 통째로 사라져 버린 1월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혹은 거창한 새해 계획을 세우고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또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게 하는 것일까.

와불이 있는 운주사엘 가보고 싶었다. 천불 천탑이 있는 곳...

가본 지가 꽤 되어 오늘은 마음먹고 가보리라 생각했는데... 아침부터 갑작스레 눈이 날리자 선산에 들러 성묘만 하고 방향을 바꿔 백양사를 향했다. 어제까지 화창했던 날씨가 일순간 겨울의 한 복판에 와있는 듯하다

눈은 그다지 내리지 않았지만 뺨에 와닿는 바람은 거세다.

갑작스러운 눈 때문인지 사람이 드물었다. 하얀 것과 검은 것... 백양사로 이어지는 길은 한 편의 수묵화처럼 보인다. 까치소리가 들려온다. 반가운 외침인가.

고즈넉한 길....  벗은 나무를 바라본다. 하늘을 향한 나무들.

나무들에게 한 해의 시작은 어떤 의미일까. 나무들에게 시작은 이미 몸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

햇살과 바람의 농도와 질감으로 이미 새봄의 것들을 준비하고  있는 나무들. 

나목이 된 나무 안에 뜨거운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으리라..     

올라가던 차들이 내리막길에서 멈춰 선다. 좁은 산속의 길... 그새 길에 쌓인 눈 때문에 내려가는 차의 바퀴가 헛돈다. 폭설 내린 날보다 사실 이런 날의 도로는 더 위험하다. 

벌써 2월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또 새해의 달력을 넘긴 지 1달이 지나버렸다는 사실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한다. 마냥 희망을 기대하기엔 한 달의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인디언 용어로 2월은 물고기가 뛰노는 달(위네바고 족), 너구리 달 (수우족), 홀로 걷는 달 (체로키 족),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오마하 족),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테와 푸에블로 족), 새순이 돋는 달(키오와 족)... 달의 이름을 정하는 그들의 순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체로키 족의 ‘홀로 걷는 달’이 마음에 와닿는다. 겨울과 봄의 점이 지대에서... 여럿이 아닌 홀로 걸어야 하는 달... 겨울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봄을 입기 위해, 봄의 축제를 위해 홀로 걸어야 하는 달... 2월은 홀로 걸어야 하는 달이다. 부산스럽지 않게... 고즈넉하게... 눈 내리는 산사의 홀로 선 나무들처럼 2월은 홀로 서고 홀로 걷는 달이어야 한다     


2월에 해야 할 일들. 마음이 편치는 않다. 원고를 늘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본격적으로 투고를 해야 한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은 여전히 내 글에 대한 허기와 결핍 때문이 아닐까.

다른 이의 글을 평가하기란 도리어 쉬운 일.... 자신이 나목이 되어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평가의 기준을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면 역시나 부끄러움뿐이다. 그러나 체로키 족의 말처럼 홀로 걷는 달이어야 한다. 허기든 충만이든 결핍이든 두려움이든 설렘이든... 그 모든 것들을 다 품고 걸어가야 하는 달인 것이다.

아직 나는 봄의 축제를 누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홀로 걸어야 한다. 

산 그림자에도 바람의 흔적이 보인다.

산사의 모든 것들은 한 편의 수묵화가 되어있다.  산사의 아침은 적막하다.

2월을 맞는다. 또 실패한 이들을 위한 새해 새날의 시작인 것이다. 격려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다만 달력을 새로 넘겼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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