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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 삶은 온통 잉걸불처럼 타오르고

나는 오래도록 새빨간 잉걸불 같은 밤을 끄고 싶지 않았다

잉걸불     

거센 불꽃이 일다가 일순간 잠잠해져 있는 상태... 불이 잠든 것일까

그러나 불은 잠들지 않았다

이미 죽어버린 것 같은 불꽃... 그러나 불은 죽지 않았다.

죽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서 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 생의 한 중간에서는 참담한 실패를 슬퍼하였으나, 지나간 생의 마지막 삼분지 일 동안에는 그 실패가 마치 온 세상이 잔치를 벌였던 불타는 벌판같이 여겨진다. ”

                                                                                                         - 베르나르  포콩-

네모난 창문이 있는 방. 가느다란 전구 불빛은 초라하다.

이글거리는 잉걸불.

폐허가 된 그 방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그러나 다시 그 모든 것을 뱉어내버릴 것 같은 잉걸불이 타고 있다.

사그란 든 것처럼 보이나 살아있는 불꽃들... 저마다의 언어로 경계를 부수는 불꽃들의 춤...     

생의 한 중간.... 그것이 축제인 줄 몰랐다. 돌아보면 슬펐고 우울했고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으나 다시 생각하면 그것은 축제의 정점이었다. 고독하고 힘들고 괴로웠던 것 같은 시간들이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도리어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것, 훌쩍 그 시간을 지나온 뒤 생각하면 포콩의 말처럼 그 슬픔의 시간들이 온 세상이 잔치를 벌였던 불타는 벌판처럼 여겨진다.

지나온 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 알게 모르게 오늘을 만들어낸 것, 타오르던 지난 시간들이 오늘의 잉걸불로 있다.     


코로나가 있기 전 그의 친구가 사는 섬에 1박 2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온통 별빛뿐이 그 칠흑 같은 밤.... 모닥불을 피우고 둘레에 모여 앉았다. 불은 왜 사람들을 그 주위로 동그랗게 모이게 하는 것일까. 무슨 추억담들이었을까. 

모닥불이 사그라들 때까지.... 별빛이 질 때까지... 그리고 기어이 아침이 올 때까지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다만 쏟아질 것 같던 별빛과 섬 특유의 냄새.... 그리고 은은히 불꽃을 일으키던 모닥불은 여전히 기억에 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 그  밤... 그들 중 누군가는 이제 다시 그곳에 모일 수 없게 되는 날이 오리라... 모닥불을 켜놓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도 오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그날들이 언젠가는 오게 될 것이다.      


불...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불.......

모닥불이든 잉걸불이든.....  그 모든 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잉걸불이란 말은 어감부터 특이하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하였으니 잉걸불이 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겉은 타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여전히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은근히 집어삼킬 듯 뜨거운 불........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꽃...     


입춘이 지났는데 때 아닌 눈이 내렸다. 금요일부터 시작된 눈이 일요일까지 이어졌다

절기상 입춘이 오면 겨울의 끝인 듯싶은데 새하얀 것들이 쏟아지는 밤하늘은 연한 핑크빛이다. 어젯밤 눈을 보기 위해 불을 끄니 하늘 가득 새하얀 것들의 모습이 보였다.

유리창에 가득 찬 새하얀 것들이 별똥별처럼 쏟아졌다.

겨울 산이 보이는 유리창 밖의 풍경. 산 위에 점멸하는 작은 불빛 하나

옥탑방에 불을 끄고 깊은 밤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볼 수 있다는 것...... 방의 조명을 새빨간 불빛으로 바꾸니... 방안이 온통 타오르는 잉걸불이다.

그 잉걸불 아래 나는 작업하던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잠든 노트북... 여기저기 메모된 종이와 펜과 마시다만 커피와 낙서가 된 달력들과..... 박제가 된 꽃들과... 모래시계. 그리고 우산을 쓴 오리 인형...

방안은 온통 뜨겁게 달구어진 잉걸불이고.... 창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눈은 집요하게 내렸고... 나는 오래도록 밤의 잉걸불을 끄고 싶지 않았다.

눈 내리는 2월의 밤... 오래전 섬에서 바라본 모닥불 아래의 밤처럼

언젠가는 이 밤을 축제의 시간처럼 기억할 것이다..

내 안의 잉걸불들... 아직 제대로 타오르지도 못한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그리고 끝없이 타오르고 싶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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