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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 시에서 다섯 시사이

잠들지 못하는 이들의 창에 별빛이 내려와 있나 보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일어난 시간.

저 멀리 불이 깜박이는 산이 보인다. 이 시간 저 산에 오를 이는 아무도 없을 텐데 누구를 위해  켜놓은 불일까. 점멸하는 불빛은 불빛을 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메시지처럼도 보인다

더듬더듬 시계를 찾는다. 새벽 세시. 일어나 무언가를 하자니 너무 이른 듯싶고 다시 잠들자니 잠이 오지 않을 듯싶다. 다시 잠을 청해야 할까. 일어나야 할까. 어둠 속에서 한참을 궁싯거린다. 


나처럼 잠 못 드는 이가 또 있나 보다. 바로 앞동. 불 켜진 창이 또 하나 있다.

이 시간 저 창 속의 사람도 먼 산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별빛보다 더 빛나는 인공의 불빛을....... 저 창 안의 사람은  이 밤 왜 잠들지 못하는 것일까.

불을 켜고 일어나 도종환 시인의 시집을 찾는다. 

그래...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무언가를 하기엔 애매한 시간...  그 시를 읽는다.

   

<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                                                 

                                                              도 종 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 두 시에서 한 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 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 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 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시인의 시에서 말하는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는 아마도 황혼을 향해가는 오후의 시간일 것이다.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 두 시에서 한 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 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


인생의 시간은 이미 중심에서 멀어져 있으나 어두워지기 전 아직 몇 시간이 남아있고 또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허락하시리라는 생각에 기쁘다고 적고 있다. 당신 생의 열두 시와 한 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뒤 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노라고. 

돌아보면 지난 시간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 줄 것이라고도.   시인의 삶엔 굴곡이 많았다. 원치 않든 원했든... 그러나 작고 부서지기 쉽고 약한 것들 지켜내기 위해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대지는 알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깨어있는 이 시간. 나의 세시는 새벽 세시다.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잠을 청하면 다시 ‘밤’이 될 것이고 이렇게 일어나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이 시간은 ‘새벽’을 지나 ‘아침’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라지는 어둠과 생성하는 빛의 시간을 동시에 보고 있다. 어둠의 농도가 옅어지고 어둠의 깊이가 얕아지고... 저 멀리 점멸하는 먼 산의 불빛은 더 자주 깜박일 것이다. 푸른 새벽이 올 것이고... 어딘 가에선 잠 못 든 수탉이 일어나 홰를 칠 것이다.

잠들지 못하는 누군가의  창.. 그는 이 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불 켜진 아파트의 창들을 하나하나 세어보고 싶다. 잠들지 못하는 이들의 방.... 별빛이 내려와 있나 보다. 


지금 나는  치열하지도 맹렬하지도 않았던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다. 시인의 생처럼 가파르게 행복하지도 가파르게 불행하지도 않았지만 그 완만한 굽이에서도 자주 지치곤 하였다.

지금은 완만한 오르막일까. 완만한 내리막일까. 알 수 없다.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분명한 진리  같은 것이 있다. 올라갈 때는 분명 오르막이었는데 내려올 때는 그 길이 내리막길인 것... 그러하기에 나는 지금 오르막에 있는지 내리막에 있는지 단정 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새벽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이 시간 나는 특별하고 대단한 무언가를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다만 다시 불을 끄고 잠을 청하기엔 다시 어둠 속으로 소멸해버린 이 시간이 아쉽다. 

그저 자판을 두드리는 일. 아주 고요하고 연약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찬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그냥 이 시간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이라고 해야겠다.


벌써  2월의 한 중앙에 서있다. 생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해마다 실감한다.

작고 보드랍고 연약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시인의 시간들이 얼마나 험했는지 대지는 고요히 손을 들어 증명해줄 것이라 하였는데... 지나온 나의 시간들을 손을 들어 증명해줄 대지가 없으리란 생각을 하니 부끄럽다. 

누구의 무엇이 아닌 오직 ‘나’로 살지도 못하였으면서도 또 누군가를 위해 나의 전부를 내어주지도 못하였다. 그 어정쩡함 속에 그래도 치열하게 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어쩌면 안주하였고 어쩌면 견디었던 시간들이었다. 어쩌면 위선과 어쩌면 자기만족과 어쩌면 과장된 슬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불 켜진 창들을 세어보는 시간이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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