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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개 짓거리'에 대한 로맹 가리의 보고서

로맹 가리 『흰 개』


          

“ 내 말 잘 들어봐 친구.

흑인을 물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어

‘흑인만’ 물지는 말라는 거야. “    

      

"그것은 회색 개였다. 주둥이 오른쪽에 점 같은 무사마귀 하나가 있고 코 주위에 빨간 털이 있어, 내가 다닌 니스의 고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담뱃가게 겸 술집 ‘담배 피우는 개’의 간판에 그려진 골초를 닮은 개였다.(.....) 그 개는 새퍼드였다. 녀석은 1968년 2월 17일 베베리 힐스에서 내 인생에 끼어들었다.

그 개의 이름을 바트카라 지었다. "    


로맹 가리의 장편 소설 『흰 개』의 시작은 이러하였지만 수많은 사건들을 건너 소설 『흰 개』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 개는 단숨에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손목을 한 번 물리고 뒤로 굴렀다. 내 목덜미가 벽에 부딪쳤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서 나는 내 어머니의 눈을, 충직한 개의 눈을 보았다. 바트카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비통한 울음을 울었다. 캄캄하고 슬픈 울음이었다. 그러곤 밖으로 사라졌다. (....) 녀석은 도시를 가로질러 달렸고 녀석이 가는 길에 경찰차들은 ‘미친개’ 주의라는 메시지를 뿌렸다. 녀석의 눈에는 사랑의 신에게 배반당한 신자의 절대적 몰이해와 완전한 비탄이 담겨있었다.... 나는 20분 뒤 진의 품에 안긴 녀석을 발견했다. 녀석의 몸에 상처의 흔적은 없었다. 녀석은 우리 문 앞에 문을 둥글게 만 채 죽어있었다...     


 회색 개였지만 흑인을 공격하기 위한 ‘흰 개’로 길러진 바트카의 운명은 스스로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우연히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운명에 끼어든 바트카는 1960년대 초,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는  골칫거리가 되어가는 흑인들의 인권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야 흑인을 골라 물도록 특수 훈련한 경찰견을 길렀는데 사람들은 이 개를 ‘흰 개’라 불렀다. 

그러나 바트카는 ‘노아의 방주’에서 무슬림계 흑인 조련사 키스를 만나 백인만을 물어뜯는 ‘검은 개’로 길들여진다. 키스는 바트카에게 흑인의 냄새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이고 과거 백인들이 했던 짓을 그대로 되갚기라도 하듯 백인 공격용 견으로 개조시킨다.


회색 개 바트카는  한때 흰 개였다가 검은 개로 생을 마감한다. 개의 털 색깔은 분명 회색이지만 흰 개이기도 하고 검은 개이기도 한 바트카는 흑백 인종의 대결이 첨예했던 1960년대 미국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무언가 물어뜯도록 조련된’ 모든 인간의 초상이면서 인간의 광적인 증오의 희생물이기도 하다.      

로맹 가리가 이 책을 쓰던 때는 베트남 반전 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로 인종 갈등이 고조되고  파리에서는 68 혁명이 일어난 혼란기였다. 로맹 가리는 바트카와의 첫 만남에서 바트카의 죽음에 이르는 시간 동안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흑백갈등을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증오와 위선을 로맹 가리는 한마디로 ‘인간의 개 짓거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압축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개 짓거리’를 일삼고 있다. 수세기 동안 당해온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으려는 흑인, 죄의식 때문에 생각의 균형을 잃고 흑인을 무조건 옹호하는 백인, 자기 피부색을 만능열쇠처럼 내세워 먹고사는 ‘직업 흑인’, 돈으로 죄의식에서 해방되려는 백인, 백인의 죄의식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는 흑인, 기부금을 내며 생색내고 싶어 안달하는 할리우드 스타, 흑인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를 영웅 행위로 포장하는 흑인, 모두가 보는 앞에서 ‘흰 개’를 불태우자는 백인, 겉으로는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서면서 흑인 폭동에 겁먹고 ‘흰 개’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백인... 한 인간에게서 피부색만을 보거나 아름다운 영혼을 ‘연기’하는 이 모든 인간을 향해 로맹 가리는 격정적인 어조로 분노를 토해낸다. 


로맹 가리의 『흰 개』는  1960년대 미국에서 겪은 일들을 토대로 한 자전 소설이면서 증오의 이빨을 드러내어 무언가를 물어뜯음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하고, 겉으로는 진정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가식과 위선을 지닌 인간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인간들... 물질만능과 선동적인 쾌락의 시대에 인간군상들의 개 짓거리에 대한 냉소적인 보고서다.      


실제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1968년 가을 이혼한다. 『흰 개』가 출간된 1970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로맹 가리는 “이혼이 우릴 갈라놓기엔 우린 매우 가깝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처럼 전형적인 미국 이상주의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호구라는 얘기죠.”라고 말한다. 진 세버그에 대한 로맹 가리의 진심은 무엇일까? 1979년, 진 세버그가 파리 외곽에서 죽은 채 발견됐을 때 로맹 가리는 『흰 개』는 “진 세버그의 성전聖戰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1969년에 쓰인 이 책의 내용에 전율하면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시절에 존재하였던 갈등들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흑백 인종 차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젠더 간의 갈등, 페미니즘, 종교, 극단주의, 이념 간의 갈등.... 사람과 사람 사이 편 가르기의 요건은 갈수록 집요하고 교묘하게 진화 중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준은 판단의 잣대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하기에 정의라 부르짖는 어떤 행위도 온전한 정의가 될 수 없고 모순과 부조리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회색 개였으나 사람들에 의해 ‘흰 개’ 혹은 ‘검은 개’로 길들여진 바트카....

여전히 계속되는 색깔 전쟁...... 

로맹 가리의 말처럼 ‘인간의 개 짓거리’는 언제쯤 끝을 볼 것인가?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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