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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낱낱의 것들을
봄눈이라 불러야 할까

2월 눈 내리는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2월의 눈이 하늘을 메우고 있다.

아침이 오기 전... 하늘은 온통 하얀 것투성이다.

눈 내리는 소리가 잠을 깨운다.

일어나 창문을 바라본다. 어제 인근 지역 최소 8cm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그저 예보려니 했는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눈이 도시를 뒤덮고 있다.

눈은 보드랍고 연약한 것... 낱낱의 새하얀 눈은.... 그러하다.

어린 날. 하늘에서 내리는 새하얀 것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혀를 내밀어 눈의 맛을 보곤 하였다. 무맛.... 눈의 맛은 무맛이었다. 혀 끝에 와닿는 차가움 외에는...

낱낱의 눈이 아닌 ‘눈’이라 불리는 하늘 가득한 것들의 정체는 강하고 때론 두려움을 준다.

하늘 가득한... 차갑지만 가볍고 보드라운 것. 그것들이 어딘가에 쌓여갈 때 눈과 눈의 연대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 심지어 인간마저도 무기력하게 만든다. 


낭만으로 눈을 바라보던 때는 그나마 20대가 아니었을까. 

젊음 때문인지... 새하얀 것들에 대한 순수,  경외감 같은 것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 차가 생기면서부터 눈 오는 날은 가장 싫은 날이 되어버렸다. 녹아 질척이는 길은 그래도 참을 만 하지만 순식간에 빙판으로 돌변한 도로는 운전자에게 공포다.     

눈 오는 날, 창문을 바라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다시 꺼내 읽는다든지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조리기엔.... 어딘지 어색한 2월이다.

2월의 한 복판.... 그런데 눈이 오고 있다.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처럼 여겨진다. 우리 삶에서.

달력의 숫자와 하늘의 숫자는 다른 모양이다. 삶의 길도 마찬가지. 달력에 어떤 삶의 흔적을 남기고 희망을 품어도 모든 일이 바라던 대로 되는 것은 아니듯.

그런데도 달력을 넘기며... 그렇게 한 해를 보내버리듯.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서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가 바라본 하늘은 얼마나 인간적이지 않았을까...

눈 내리는 2월의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오늘 하늘은 얼마나 인간적으로 보일까.

사실 하늘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늘은 하늘적이어야 하고 인간은 인간적이어야 하는 것... 하늘이 인간적이고 인간이 하늘적이라면 그 또한 얼마나 어색한 일일까.     


산사에서는 나뭇가지에 눈이 내리는 소리에도 잠이 깬다는 법정스님의 글을 읽고 눈 내리는 소릴 듣기 위해 한 겨울 눈 내리는 밤, 나무 옆에 서 있어본 적이 있다. 

도시의 밤... 눈은 하염없이 내렸지만 도시의 소음들 속에 눈 내리는 소리는 묻혀버렸다

아주 간혹. 아주 드물게 어린 눈의 신음인지...  젊은 눈의 고독인지.... 더 나일 먹은 눈의 아픔인지 모를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법정 스님이 산사에서 즐겨 듣는다는 그런 소리들은 아니었다.     

눈 내리는 아침... 또다시 나는 잠들지 못하였다.

모든 것이 눈에 덮여 고요하다.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리는 눈이 반갑지 많은 않다.

눈 내리는 2월... 오늘의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고 보후밀 흐라발처럼 중얼거리는 수밖엔.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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