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재판이 시작되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재판을 면할 수 없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판사로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던 이반 일리치는 성공의 정점에서 갑자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간다. 죽음 앞에서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고통스럽게 되묻는다.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통보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직장 동료들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공석이 된 자리에 누가 발령이 날지에 촉각을 세우고 카드놀이 멤버 중 하나인 시바르쯔는 조문을 다녀온 후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의 집에서 카드놀이를 할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리치의 부고를 듣고 자신은 아직 살아있음에 안도한다. 이반 일리치의 아내 쁘라스꼬비야 표로르브나는 조문객을 만나면서도 남편 사망으로 국가로부터 무엇을 얼마나 받아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결혼대상자로 미모, 귀족가문, 어느 정도의 재산을 지닌 여자를 고른 이반 일리치는 아무런 고민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결혼 후 아내와 이반 일리치는 수시로 부딪혔고 그럴수록 공무에 매달려 직장에서는 승승장구했다. 부부가 서로 소원한 관계 속에서 은밀한 적개심의 바다에 뛰어들기 전 잠시 머무르는 섬이 필요했으나 그 섬은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았다. 탁월한 업무 처리능력, 인품, 권력 의식, 단란한 가정을 지닌 그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새로 이사할 집안의 인테리어를 하다가 옆구리를 다치는데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통증이었으나 점점 통증이 심해지자 유능한 의사들을 불러 최고의 치료를 받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의 병이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불행해질까 전전긍긍한다. 이반 일리치는 아내의 그런 모습에 더 참담해진다.

참을 수 없는 통증 속에 그는 상반된 두 가지의 마음으로 고통스럽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감과 열심히 치료를 받다 보면 어느 순간 치유될 것이라는 희망,


죽음이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이반 일리치는 한 걸음씩 산을 올라왔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실은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대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가족, 사교계, 직장에서의 성공...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생각.

 소리 내어 울고 싶고 위로받고 싶으면서도 정작 누군가 다정히 굴면 정반대로 화를 내는 변덕이 반복되는 가운데 오직 하인 게라심만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진실된 자세로 그를 대한다. 한 줄기 희망이 비치는 듯하다가 절망의 파도에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의 반복. 미모의  딸은 아버지의 병과 아버지의 변덕에 무관심하다. 그녀에게 죽음이란 영영 오지 않을 단어처럼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이반 일리치는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 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순간 어떤 빛을 보았다. 그리고 아직은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가족들을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기쁨을 느낀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예심판사였던 그는 “재판이 시작되겠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순간순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재판이 시작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을 것이고 이반 일리치의 삶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흘 낮 사흘 밤을 비명을 지르다가 생을 마감한 이반 일리치. 그의 생에 대한 재판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죽음.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죽음의 순간도 예측 불가하다. 누군가의 장례식을 가는 일. 해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 입관 예절. 입관하기 전까지 장의사가 하는 모든 것을 유족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는 가끔 그런 절차를 왜 공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서 비록 천으로 몸의 일부를 가리긴 하지만.. 시신의 존엄은 안중에도 없음을....


관 뚜껑을 덮기 전 고인의 얼굴을 바라볼 마지막 시간이 주어진다.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 책에 묘사했듯 죽은 이들의  얼굴은 해야 할 일을 다했고 제대로 해냈다는 표정이다. 이미 고인이 된 누군가의 얼굴.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얼굴. 이미 영혼은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았다. 냉기가 감도는 얼굴 앞에 살아있는 자들은 어떤 애도를 표해야 할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색다른 소설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뒤에 남은 자 들에 초점을 두지만 이 소설은 철저히 떠나야 할 운명에 직면한  당사자. 병명조차 모르는  모호한 상황에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 장차 고인이라 불릴 사람의 입장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는 일.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앞으로 남은 생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 생각한다. 

“재판이 시작되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재판을 면할 수 없으리라.

그 재판의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한 그 언제를 피할 수는 없기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더욱 잘 살아야 한다. / 려원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