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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둥지를 만든다

연두의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은 저마다 꿈틀거린다

메마른 나무에 연초록이 움트고 있다. 나는 연초록을 바라보는 이 계절이 좋다

연초록이 진초록이 바뀌어버리면 거대한 수관을 머리에 인 나무는 본래의 위엄을 되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메마른 가지 끝에 뭉클 거리며 피어나는 연두만큼 가슴을 설레게 하지는 않는다. 

나무의 끝에 피어나는 연두는  언제 보아도 싱그럽다.     


새빨간 철쭉들을 옮겨 심는 모양이다. 이른 아침부터 트럭에 실려왔을 철쭉들이 바싹 몸을 웅크린 채로 나른한 하품을 하고 있다. 아직 꽃잎을 펼치지 않은 꽃 봉오리들. 단단히 여문 봉오리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듯한 새빨간 봉오리들. 완벽하게 꽃잎을 펼쳐내기 직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들. 우리는 알 수 없는 꽃들의 마음...


이식 작업 중인 커다란 나무. 동그랗게 동여맨 흙더미 아래 뿌리들은 기억들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다. 나무는 뿌리의 기억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무는 아래를 더듬어 내려가는 뿌리의 밝은 눈에 기대어 위로 위로 더듬어 올라갈 것이다. 가로막을 아무런 장벽이 없는 무한 공간의 하늘을 향해  나무가 두 팔을 벌릴 수 있는 것은 흙으로 뒤범벅이 된 뿌리의 얼굴 때문에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 위대하다는 진부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진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을 되새겨본다.     



수령이 오래된 거대한 느릅나무 꼭대기에 동그란 새집이 생겨났다. 마른 나뭇가지를 물어와 견고하게 지은 둥지. 정호승 시인은  ‘새들은 바람이 강한 날에만 집을 짓는다.’라고 이야기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지은 둥지는 보기엔 위태롭게 보이지만 바람이 불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바람의 강도를 알고, 나무의 흔들림을 알고 집을 짓는 새들은 건축학개론을 읽은 전문가들임에 틀림없다.     

어떤 새들의 둥지일까. 궁금증이 밀려온다. 둥지를 튼 새들. 새들의 일상은 또 얼마나 분주할까. 자연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새들의 집.

나무와 새는 공생하는 친구처럼 보인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바람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몸을 뒤흔드는 나무의 움직임 만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바로 그날이 새들이 집을 짓는 날이라니... 우산의 끝이 뒤집힐 듯 바람 가득한 날.. 꽃들이 가느다란 줄기에 의지해 위태롭게 서있는 날.. 어미새와 아비 새는 둥지를 만든다. 흔들림 없이. 

거센 바람에 나무는 몇 번이고 몸을 흔들지만 새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새들은 나무의 흔들림에 맞춰 집을 집는다. 

느릅나무의 거대한 수관. 그 위에 동그랗고 앙증맞은 모자처럼 보이는  새 집.

세상의 모든 것들은 위대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연둣빛 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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