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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면 야생화처럼
살라, 피우라, 살아남으라

류시화..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의 신작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은 꽃과 기억, 새와 나무. 침묵. 그리고 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습관적으로 그의 시집을 모으지만 시집 속 그의 시가 모두 가슴에 와닿는 것은 아니다. 시집만 그러한 게 아니다. 쏟아져 나오는 책들... 그 책들 속 모든 문장이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쉽게도 이번 시집은 기존 그의 시집에 수록된 것들에서 만났던 시어들이 살짝 변형되어 있기도 하지만.... 모든 시인들이 늘 새로운 시어들로만 시집을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시집을 읽는 것은 시집 안에서 나를 붙드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시어를 찾기 위해서다.

< 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라는 말>이라는 시에서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자신 안에 하늘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문장에 멈추었다.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이미 자신 안에 하늘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것은 내 안에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일까...

‘불완전한 단어들이 모여 시가 될 수 있는 것은 가슴 안에 시가 있기 때문’이라면 불완전한 단어들을 모아 글을 쓴다고 웅크리고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나는 가슴 안에 또 무엇에 있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무엇이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무엇을 가슴 안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일 것이다. 가슴 안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인가로 채우기 위해 분주한 것이다.            


<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라는 말>     


물은 마른 입술을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는 말

원하는 것 갖기 전에 먼저 감사하라는 말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

헤어진 것보다 헤어진 방식이 더 아프다는 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하느냐는 물음에

다른 사람이란 없다고 답했다는 말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좋다는 말

어떤 것들이 원을 그리며 떠나갈 때 원의 중심에 머물라는 말

고독을 이기려면 고독의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말

세상은 나와 함께 시작되지 않았으며

나와 함께 끝나지도 않는다는 말

단지 나와 함께 살아 있다는 말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더 많은 불행한 사람이 있고

치유된 상처가 있으면 더 많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말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자신 안에 하늘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고

불완전한 단어들이 모여 시가 될 수 있는 것은 가슴 안에 시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

사랑하는 것을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말

내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 달라는 기도의 말

꽃이 지는 것이 꽃의 패배는 아니라는 말

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라는 말

이 행성에 78억 개의 심장이 매 순간 뛰고 있다는 말

너의 존재가 풍경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

슬픔을 함께 하면 기쁨이 된다는 말

울지 않는 눈물은 독이 된다는 말

하나의 물방울 속에서도 파도가 치고 있다는 말       

                                                                       류시화        


<야생화>  

   

만약 원한다면

야생화처럼 살라

단, 꽃을 피우라

다음 봄까지 살아남으라     

                                                               류시화


원한다면

만약 원한다면 야생화처럼 살라 한다. 온실 속의 장미가 아닌...

단, 꽃을 피우라고

꼭 다음 봄까지 살아남으라고..     

이름 모를 꽃들.. 꽃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꽃들의 이름은 인간이 지은 것들, 꽃들이 정한 꽃들의 본래 이름을 나는 알지 못한다

살라. 피우라. 살아남으라.... 우리들의 삶에도 들어맞는 동사가 아닐까

살라. (무언가를 꽃) 피우라. 그리고 (무언가로부터) 살아남으라....          


"손을 내밀어 보라, 다친 새를 초대하듯이

시대가 어떤 식으로 살벌하든, 어떤 시대가 되든, 시를 읽으려는 인간 영혼의 경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는 시 그 자체로 답할 수밖에 없다."

                                                                                                          - 다나카와 슌타로     


시대가 어떠하던 어떤 식으로 살벌하든... 시간이 어떤 식으로 나를 관통하고 어떤 식으로든 나를 밀어내든 나는 무언가를 끝없이 읽어야 하고 끝없이 써야 한다.

부지런히 읽는 인간은 부지런히 쓰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내 안에 들어온 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뱉어낼 수밖에 없으니까.....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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