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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타오르는 불과도 얼굴에 쌓이던 눈과도

기어이 돌아가 껴안아야 할 당신과도 작별하지 않는다

가슴에 타오르는 불과도 얼굴에 쌓이던 눈과도

기어이 돌아가 껴안아야 할 당신과도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우리는 모두 연극 무대에 선 배우들이며 선택 없이 맡겨진 배역을 받아들이고 최상의 연기를 펼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의 결정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과 관련하여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왜’들에 대한 이야기다. ‘왜 검이 장착된 장총을 멘 병사들이 현무암 밭을 뛰어넘었을까. 왜 쓸려나가는 바닷가에 묘비가 세워졌을까, 왜 지금도 끝나지 않은 4.3에 어느 누구도 명쾌히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일까?’


  소설은 사람처럼 보이는 휘어지고 뒤틀린 수천 그루 검은 통나무들,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다가 어느새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달리던 경하의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경하는 세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기 위해 날마다 유서를 새로 쓴다. 살고 싶어 하는 몸, 무언가에 찔리고 베이는 몸, 뿌리치면서도 매달리는 몸, 피인지 진물인지 모를 것이 끝없이 새어 나오는 몸을 품고도 생을 꾸역꾸역 유지하는 이유는 아직 유서가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흔적 없이 쓸려 나갈 바닷가의 묘비, 검은 통나무들,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경하의 꿈은 잊혀가는 기억 속에 침묵하는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4.3 희생자에 대한 메타포처럼 보인다.


  ‘새’와 ‘밤’과 ‘불꽃’으로 이어진 이야기들 속에 ‘왜’에 대한 답을 찾는 세 명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새’의 시간은 경하의 꿈으로 시작되고 경하는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인선을 만나러 병원으로 간다, 봉합 부위를 삼분에 한 번씩 찌르는 것은 신경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통을 느껴야만 살아있는 것이고 또한 살기 위해서는 계속 통증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대설주의보와 강풍 경보까지 내린 지금 당장 제주로 가서 아마를 살려야 한다는 인선의 말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처럼 들렸지만 경하는 ‘왜?’라는 말을 삼킨다. 숨 막히는 밀도의 눈보라를 뚫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새 한 마리를 찾아서, 고작 새 한 마리를 위해서, 그럼에도 가야 한다. 교통이 두절된 곳에 혼자 남은 작고 어린 새를 지켜야 하는 것은 이미 여러 번 죽어 더 이상 죽을 수도 없는 4.3 희생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을 지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작고 어린 새는 소외된 존재들이면서 제주 4,3의 흔적을 품고 사는 이들일 것이다. 죽기 위해 날마다 유서를 쓰는 경하는 여전히 세상과 작별하지 못한 채로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눈송이를 뚫고 깃털처럼 가벼운 새를 살리러 간다.


  ‘밤’의 시간은 여전히 열세 살에 멈춰버린 정심의 시간이다. 날마다 실톱을 이불 밑에 깔고 자면서도 악몽에 시달리는 정심은 수 만 조각의 뼈들 앞에 다다른 사람. 머리 숙이고 굽은 허리를 더 구부리고 소녀인 채로 늙어버린 여자다. 학살의 이유를 묻고 싶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답을 아는 이들은 모두 절멸해버렸고 살아남은 이들은 차마 답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정심은 밤마다 잠든 인선의 입에 손가락을 물리고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울었다. 잠들지 말고 도와달라고 끝없이 외치며 예리하게 벼린 칼 같은 기억들, 피투성이 기억들을 끝도 없이 토해냈다. 남겨진 자들은 이미 죽어간 자들이 남긴 ‘왜’라는 질문, 어떤 절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한다. 운 좋게 살아남아 차가운 눈을 털어내고 가족의 얼굴을 더듬어야만 했던 정심은 평생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을 어어갔다.


  ‘불꽃’의 시간은 중산간 마을에서 마주한 인선과 경하의 시간이다. 정심의 죽음 이후에도 인선은 정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낮에는 공방에서 나무를 깎고 밤에는 안채에서 증언 자료들을 점검하면서 활주로 아래 구덩이에 무릎을 구부린 키 작은 사람을. 절멸을 위해 살해된 이들을 떠올렸다. 머리뼈들, 두 개의 텅 빈 안와와 움푹 파인 코가 정면을 향한 얼굴들, 대퇴골과 정강이뼈들. 흙 사이로 비어져 나온 어깨뼈와 척추와 골반뼈가 느슨히 연결돼 사람의 형상을 이룬 유해를 기억해야 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것들 그러나 아직 여전히 인간인 것들을 더듬는 시간은 어둠이 기억의 전부였던 때의 흔적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검은 통나무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경하에게 인선은 이미 아흔아홉 그루의 나무를 봄부터 건조하고 있었노라고, 프로젝트의 이름은 ‘작별하지 않는다’라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인선에게는 끝내 작별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며 아직은 작별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인지 실재하는 인선인지 모를 인선이 조릿대 차를 끓이고 이미 죽은 새의 영혼인지 죽지 않은 새들의 환영인지 모르는 아마와 아미가 공방을 날아다닌다. 눈이 쏟아지는 밤, 경하와 인선은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보아둔 곳을 향한다. 

  솜 같은 눈 속에 드러누운 그들을 바라보는 것들은 침묵하는 나무들과 소리 없이 내리는 눈뿐이다. 불꽃의 가장자리를 건드린 눈송이에 깜박이던 불티가 꺼졌다. 인선아 잠들지 마, 아직 사라지지 마, 불이 댕겨지면 눈을 허물고 네 얼굴에 쌓인 눈을 닦을 거라고 내 손가락을 이로 갈라 피를 주겠다고. 다짐하며 경하는 숨을 들이쉬고 꺾이는 성냥을 붙잡고 불을 붙인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다시 불꽃이 살아난다.


  어떤 만남의 끝도, 어떤 시작의 끝도 작별이기에 우리는 늘 작별을 연습한다. ‘작별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미 진행 중인 작별을 작별로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새’와 ‘밤’과 ‘불꽃’의 시간을 관통한 정심과 경하 인선이 끝내 작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아직 ‘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기억은 연약하고 어떤 기억은 강하다. 어떤 기억은 어떤 기억을 덮어버리면서 또 어떤 기억을 끌어낸다. 삼분마다 한 번씩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대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통증을 느껴야 한다. 4.3의 기억들도 그러할 것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끝도 없는 눈이 내린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성근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경하와 인선의 움직임을 따라 수많은 흰 새들이 소리 없이 낙하하는 것 같은 함박눈이 내린다. 눈의 속성은 기억의 속성과 닮았다. 눈은 연약하면서 강하고 모든 것을 덮으면서 모든 것을 드러낸다. 낱낱의 눈은 너무 작고 너무 부드럽고 너무 연약하지만 수천수만의 눈송이들이 연대하면 그 어떤 것들도 덮을 수 있고 그 어떤 것들도 드러낼 수 있다. 깃털처럼 가벼운 그러나 집어삼킬 듯이 두려운 것들이 내린다. 정심이 학교 운동장에서 사람들의 얼굴에 쌓인 눈을 낱낱이 들여다보던 때의 눈과 인선이 맞고 자란 눈과 새를 묻기 위해 눈을 헤치는 경하의 손에 묻은 눈은 결국 동일한 눈이다.


  동굴 안에서 우물 안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학살된 이들의 몸을 향해 내리던 눈은 그들의 최후를 기억한다. 오직 눈송이들만이 ‘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으리라. 눈은 오고 떨어지고 날리고 흩뿌리고 내리고 퍼붓고 몰아치고 쌓이면서 모든 것을 덮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 눈을 뚫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 어떤 사소한 것들과도 그 어떤 부드러운 것들과도 손등에 내려앉자마자 소멸해버리는 것들과도 죽을듯한 고통과도 작별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밀물에 쓸려가 흔적조차 없는 이들의 무덤을 다시 짓고 그들의 고통과 고통을 증언하는 기억과도 작별하지 않는 것이다.


  정심은 흙 구덩이 속의 오빠들과, 수의를 벗어던지고 질주하던 오빠들과도 끝내 작별하지 않았다. 수집해 온 낱낱의 기록들을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두고 얼굴 위에서도 결코 녹지 않던 차갑고 섬뜩한 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 모든 ‘왜’들과도 작별하지 않는 것이다. 가슴에 타오르는 불과 얼굴에 쌓이던 눈과 기어이 돌아가 껴안아야 할 당신이 있는 한 정심과 인선, 경하가 작별하지 않았던 그 모든 기록과 기억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불꽃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경하는 눈송이가 삼켜버린 불씨를 다시 피워냈고 작별하고 싶었던 자신의 삶과도 작별하지 않을 것이며 작고 어린 새의 싸움처럼 고요한 그러나 결코 지지 않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또 다른 정심과 또 다른 인선과 또 다른 경하가 반드시 그 답을 찾아낼 것이다. 눈송이 하나가 땅에 떨어지면 또 다른 눈송이가 뒤를 잇듯이../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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