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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에서

그녀는 지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천국의 정원으로 

 “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있어요. 난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바랄 나위없이 삶이 만족스러워요. 개들, 염소들, 새들과 여기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답니다.”

“ 사람들은 날 장밋빛으로 보아요. 보통사람으로 봐주지 않고. 내 본모습을 보지 못하는 거예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는 달과 같아서 누구나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지니는 것을요.”

“ 나는 다림질, 세탁기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어요.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동 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 ”     

몇 년 전 타샤 튜더의 삶을 작품으로 제작한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버몬트에 있는 30만 평이나 되는 타샤의 정원, 버려진 땅이었던 그곳을 타샤는 천상의 정원처럼 가꾸었다. 그림책을 쓰고, 삽화를 그리고, 글을 쓰고 끝없이 정원 일을  하던 그녀.. 그녀의 말처럼 삶이 항상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눈에 보이는 대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단정 짓곤 한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처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겉으로 보기에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충만하다고 느끼는 삶도 존재할 것이다.     


타샤 튜더(Tasha Tudor) 미국 1915-2008 /  꽃과 동물, 자연을 존중하는 자연주의자

타샤 튜더는 1915년 미국 보스턴에서 조선 기사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타샤의 집은 마크 트웨인, 소로우, 아인슈타인, 에머슨 등 걸출한 인물들이 출입하는 명문가였다.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던 타샤는 아홉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지고 그 집의 자유로운 가풍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열다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살기 시작한 타샤는 비로소 그림을 그리고 동물을 키우면서 화초를 가꾸는 일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스물세 살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이 출간되면서 타샤의 전통적인 그림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 is One], [Mother Goose] 등으로 칼데콧 상을 수상하면서 그림책 작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획득하고 약 100여 권의 그림책을 남겼다.

뉴햄프셔 주의 웹스터에 있는 낡았지만 아름다운 17기 농가를 구입해 이곳에서 열정적으로 그림 작업을 하면서 네 아이를 키웠다. 집을 꾸미고, 소젖을 짜고 닭과 오리, 양, 돼지를 치면서 꽃밭을 가꾸었다. 타샤는 힘든 노동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으려 했지만 남편은 달랐다. 타샤의 부모처럼 그들도 이혼을 하고 타샤는 삽화와 초상화를 그리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아이들이 크고 < 코기빌 마을 축제>가 성공을 거두자 56세에 인세 수익으로 버몬트 주 산골에 땅을 마련한다. 타샤는 18세기풍의 농가를 짓고 오랫동안 소망하던 정원을 일구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림 그리는 일에 매달렸지만 화실이라 칭할 특별한 공간 하나 없이 다람쥐 둥지 같은 구석에서 창 옆에 앉아 무릎에 화판을 놓고 그림을 그렸다.

30만 평이나 되는 땅을 정원으로 가꾸며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삶을 살고 있다. 1800년대 옷차림으로 직접 천을 짜고 염소젖으로 치즈를 만들어 먹는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면 눈신을 신고 다니며 가축과 온실을 돌본다. 긴 겨울에도 온실에는 동백꽃이 피고, 봄과 여름이면 색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가을이면 감자, 당근을 추수하는 타샤의 정원은 천국처럼 보인다

 골동품 옷을 입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쓰는 타샤 튜더는 골동품 수집가이기도 하다.  타샤의 또 하나 고풍스러운 취미는 인형 만들기다. 골동품 박물관 같은 타샤의 집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3층짜리 인형의 집에는 타샤의 분신인 엠마와 새디어스 부부가 살고 있으며 손톱만 한 책들과 골동품 찻잔들, 골동품 가구들이 빛을 발한다. 92세의 여름, 평생을 사랑한 정원의 품으로 돌아갔다     


     


어젯밤 천둥 번개가 치고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구겨진 표정의 하늘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울음을 터뜨렸다. 잠들기 위해 창문을 닫으려다 옥탑 베란다의 화분들이 생각났다. 타샤의 정원에 비하면 정원도 아닌 지극히 소소한 화분 몇 개가 고작이다. 베란다 창틀에 장미 넝쿨을 만들려고 심어놓은 커다란 장미 화분을 제하면 소박한 작은 화분들...

무언가를 키우는 일에 서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각해보면 나 자신을 돌보는 일에도 서툴기 짝이 없는데 다른 무언가를 감당하는 일은 어쩌면 평생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밤새 쏟아질  폭우를 그 여린 꽃잎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거센 비를 뚫고 화분들을 비가 덜 들이치는 곳으로 옮겨 놓았다. 

 그들과 나.  같은 생명들이다. 생명의 존귀함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니까.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같은 조상에서 기원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비에 젖은 연둣빛이 고와서 책장에서 타샤 튜더의 책들을 추려내었다. 책이란 그런 것이다. 한동안 잊혀 있다가 우연히 다시 끄집어내어 보고 싶은 것. 그러하기에 나는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여전히 선호하는 편이다. 타샤 튜더의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며 영화로도 보았던 정원의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타샤는 92세의 나이로 지상에서의 소풍을 마무리했다. 

그녀는 가고 없어도 그녀가 남긴 책들과 그녀의 아름다운 정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곳에 그녀의 향기와 몸짓도 배어있으리라./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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