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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르겠어"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있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단어를 찾아서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고문실 벽처럼 피로 흥건하게 물들고,

그 안에 각각의 무덤들이 똬리를 틀기를,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기를,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는 것,

지금 내가 쓰는 것,

그것으론 충분치 않기에.

터무니없이 미약하기에.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소리는 적나라하고, 미약할 뿐.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시인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혼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거추장스러운 망토와 가면, 장신구들을 모두 벗어던진 채 고요한 침묵에 잠겨 아직 채 메워지지 않은 종이를 앞에 놓고 조용히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그런 순간....     

영감,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감이 솟아난다는 사실입니다.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의 수단으로 일을 합니다. 혹은 일을 해야 하다는 의무감 때문에 일을 합니다. 스스로의 의지와 열정으로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의 조건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선택을 내리곤 합니다.

“알고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 알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 오로지 그 하나만으로 영원히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모르겠어.”라는 두 마디 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말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그 날개는 우리의 삶 자체를, 이 불안정한 지구가 매달려있는 광활한 공간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내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만들어줍니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쓴 작품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또다시 망설이고 흔들리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이 작품 또한 일시적인 답변에 불과하며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통감하기 때문에 ‘한 번 더’ 또다시 ‘한 번 더’ 시도와 시도를 거듭합니다.     

우리는 끝도 없이 지속되고 있는 인생이라는 연극무대를 보면서 유효기간이 우스울 정도로 짧고 오로지 두 개의 날짜만이 지정되어 있는 입장권을 떠올립니다.... 세상에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바위도, 그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어떤 구름도, 그 어떤 날도 그 뒤에 찾아오는 그 어떤 밤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도...

                                                                              - 1996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 중에서 -               


시인은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는 화산 같은 단어를 찾기란 어렵다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고 소리는 적나라하기에... 

결국 시인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로 마무리하고 만다.     


말과 글... 말이 뱉어내는 것이라면 글은 토해내는 것이라 할까. 말의 분출이 입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글의 분출에는 온몸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모른다고 하는 이들은 사실은 알고 있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에 진정한 ‘앎’을 향해 다가간다.

현대사회에서 ‘안다’고 하는 것은 때로 폭력적이다. 안다는 것의 범위, 깊이를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 세상에 ‘안다’고 하는 이들은 넘친다.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모른다’를 말할 수 있는 자는 세상의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은 없음을 아는 자들이다.        


사이 툼블리의 작품 < 파노라마>는 내면의 삶의 한 부분을 보여 주기 위해 특수 제작한 거울과 같다.

검은 칠판에 무언가를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흔적처럼. 이해할 것 같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앎'과 '무지'의 충돌의 흔적들. 내면의 파노라마....  


한 여름의 절정이다. 숨을 곳 하나 없는 강렬한 태양 아래... 아스팔트 길은 끓어오른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여름을 아는가?  내 감각 기관이 느끼는 모든 것만으로 ‘여름’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여인은 개 두 마리와 산책을 하고 어떤 여인은 아파트 입구 마른 꽃밭에 물을 주고 있다. 짐을 들고 걷는 어떤 여인의 등은 땀으로 젖어있다. 또 어떤 여인은.... 그리고 또 어떤 여인은....

사소한 풍경 속. 모든 것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 어떤 순간도 평범하지도 않고 일상적이지도 않다.

언젠가는 퇴장해야 할 인생극장 티켓을 손에 쥔 관객들이기에.

이 여름의 풍경을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마주할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은 당연하고 때로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만일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결코 당연하지 않은 시간이 된다.

     


시인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의 시에 대해,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나 또한 늘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나’로 살고 있는 ‘나’에 대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결여의 인간이고 알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나는 모르겠어."라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있는 두 마디 말을 시인은 사랑한다.

"나는 모르겠어." 그래........ 이 여름을, 이 여름의 깊이를, 이 여름의 의미를.......... 그리고 오늘의 나를.. 부단히 바쁜 척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나를 나는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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