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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ernal Journey책 속으로의 끝없는 여행

우리에게는 배설구가 필요하다. 

Eternal Journey책 속으로의 끝없는 여행 

아주 오래전 차를 산다면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트렁크에 책을 가득 싣고 풍경이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하며, 특별히 정해진 목적지 없이 

단지 해가 지는 풍경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멈춰 서고... 카페 분위기가 좋아서 멈춰 서고... 뺨에 스치는 바람이 좋아서 멈춰 서고... 

쉼 없이 어딘가, 정해지지 않은 곳에 멈춰 서서 트렁크 안의 책을 꺼내 읽는 여행... 트렁크 안의 책을 모두 내 안에 흡입시키는 작업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는 여행. 

오던 길과는 전혀 다른 길로 돌아오며 트렁크 안의 책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복기하며 읽는 여행.

‘책 여행’이란 걸 해보고 싶었다. 여행의 목적은 무언가를 보기 위해 멈춰 서지만 반드시 책이 동반된다는 것.

멈춰 서고 읽고... 멈춰 서고 읽고... 를 반복하는 지루한 그러나 아름다운 여행.

차는 오래전 생긴 지 오래지만 책 여행을 아직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트렁크에는 늘 책이 가득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누군가에게 보내줄 책, 누군가로부터 받은 책... 등등의 책들이... 책 여행의 용도가 아닌 짐처럼 가득 찬 책들...

     


이번 여름 여행의 테마는 말 그대로 소박한 책 여행이었다.

원래 의도대로 트렁크 가득 책을 싣고 가 다 읽으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책의 집, 책들이 있는 곳을 탐방하는 것. 책 향기 맡기라고 해야 할까.    

부산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서점을 타깃으로 가보지는 않았다. 관광지 중심의 튜어였을 뿐. 관광지에서 돌아오고 나면 그 뒤에는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부산은 늘 뜨거운 도시이고 젊음의 숨결이  있는 도시라는 것. 무언가 늘 움직임이 느껴지는 도시라는 것... 어디서나 지하철을 타도 커다란 백팩을 멘 여행객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는 곳. 휴가지 패션이 일상복처럼 여겨지는 곳...

지하철에서 젊은 일본인 커플을 보았다. 남자의 팔에 자잘한 장미 문양의 문신이 있었다

백팩을 멘 두 사람은 지하철 문이 열리자 경쾌한 걸음으로 달렸다. 여자의 긴 머리칼이 흩날렸다. 아주 사소한 아주 평범한 그 순간이 나는 문득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의 장미 문신과 여자의 긴 머리와...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부드러운 일본어가. 

달려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시들지 않은 젊음 때문이었을까.

그들이 내리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들어가고 있음을... 비단 그것은 세월의 흔적만은 아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뜨거움들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테마가 책의 집을 찾아서인 것은.......... 내 안의 사라져 가는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부산 수영구에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이 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책으로만 흘낏 본 인디고서원. 주제와 변주. 열두 달 작은 강의, 독서회. 인문학 캠프... 결국은 ‘인간이라는 가능성’을 탐험하는 곳처럼 여겨진다. 블루가 아닌 인디고라는 색상의 이름을 딴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초록지붕의 집... 초록지붕 집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외부인은 2층 서점까지만 둘러볼 수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진열된 책들. 아날로그 적인 느낌을 주는 곳. 오래된 미래 같은 곳.

도심 한복판에 정박한 작은 배처럼 여겨지는 그곳은 아늑했다.     

그곳의 주인은 결국 수많은 책들이었다.  




부산 기장 힐튼 호텔 내의  eternal journey는 아난티 코브를 검색하면 자동적으로 뜬다.

인디고 서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전자가 소박한 아름다움이라면 이터널 저니는 세련된 편안함이라고 해야 할까. 

주제별 작가별 진열된 서가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서점의 이름처럼 책 속으로의 ‘끝없는 여행’이다. 3-6개월 단위로 테마별로 진열한다. 책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서 책의 향기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이터널저니는 개인의 서재처럼 꾸며진 공간이다. 휴가지에서 만난 거대한 서재.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 노부부가 다정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분명 젊은 날에도 그들은 서점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르고 함께 책을 읽었으리라. 아름다운 풍경이다. 끝없는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닌 책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  인터넷 서점에서는 절판으로 나오는 마크 로스코의 책도 몇 권 있었는데 사 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서점을 나오면 쏟아지는 8월의 태양을 온몸으로  만날 수 있다. 시원하게 펼쳐진 여름 바다의 풍경에 눈이 부시다.


감천 문화마을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그중 하나는 어린왕자와 여우가 있는 곳, 또 하나는 좁은 계단에 알록달록 색을 칠해 책을 그려놓은 곳이다. 그 계단에는 '부산을 맛보다 '라고 적혀있다. 어린왕자와 여우는 바닷가와 오밀조밀한 작은 집들과 고층 아파트, 멀리 보이는 산을 보고 있다.

 감천 문화마을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와 특별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 듯싶은데 사람들은 어린왕자와 여우 사이에 앉아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다. 최고의 포토존 기획인 셈이다.


여행이란 것은 무언가 배설할 곳, 혹은 배출구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꾹꾹 눌러놓은 것들이 있다. 평소에는 드러내지 못한 것들을 여행을 통해 배설한다. 여행이란 결국 무언가를 배설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리라.

자기 안의 것들, 그것의 이름이 욕망이든, 분노든, 실망이든 상실이든.... 무기력이든... 슬픔이든...

여행의 끝에서는 그 모든 것들을 여행지 어딘가에 배설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돌아와 일상을 시작한다.

평소에도 책 속에 묻혀 살지만 또 다른 책들... 책이 모셔진 책의 집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

나는 그곳에 무엇을 배설하고 돌아왔을까. 

내게는 층층이 탑처럼 쌓여가는 책들. 버리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여행지에서 고귀하게 모셔진 책들을 보고 돌아왔다. 

어떤 것의 절정에 있다가 어떤 것의 절정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8월은 여름의 절정이었는데 불어오는 바람에는 벌써 가을이 스며있다. 나는 아직 어떤 것의 절정에도 오르지 못하였는데 삶의 시간은 빠르게 흩어진다.

눈앞에 펼쳐진 새파란 바다와... 책 속으로의 끝없는 여행이 공존하는 그곳의 가을 풍경이 벌써 궁금해진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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