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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은 각자 인생의 틀이다

당신의 창밖에 무엇이 보이는가.


“창문은 각자 인생의 틀이다”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 마테오 페리콜리는 2004년 봄, 7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려다 창밖을 바라본다.  짐을 거의 다 쌌지만 다시 창밖을 내다보다 참을 수 없는 상실감을 젖는다.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어.”      

 창밖 풍경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7년간 26일, 육백사십 시간 동안 창밖을 내다보았던 셈이다. 아쉬움이 남아 자신이 늘 바라보았던 창밖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궁금해졌다. 창밖을 바라보는 이의 주관적 해석이 담긴 풍경을 한 권에 담아보기로 한다. 『창밖 뉴욕』은 소설가 니콜 크라우스, 영화감독 노라 에프런, 무용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셰프 마리오 바탈리,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 뉴요커 63인의 창밖 풍경이 이들이 직접 쓴 글과 저자가 그려낸 풍경으로 구성되어있다. 

페이지마다 창밖을 바라보는 이들의 저마다 다양한 풍경과 다른 목소리가 들어있다. 


“그들은 창 너머 세상만큼이나 스스로를 드러낸다”

풍경이 곧 삶이기에  같은 뉴욕을 살지만 “모두 조금씩 다른 뉴욕을 살고 있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듯싶다.   창밖에 어떤 풍경이 보이느냐가 그 사람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창을 두고도 창밖의 풍경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창을 바라보는 일이 삶의 전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로저 엔젤은  

“ 수백 개의 창문에 퉁겼다가 오후 나절이면 이 공간으로 들어오는 햇빛 덕에, 내 방 창 너머 풍경은 건축적으로 황량하면서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겨울이면 오후 늦게 햇살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곧 분홍이며 오렌지색, 녹색, 파란색, 은색을 띤다. 그리고  긴급 메시지, 타임스 스퀘어에서 움직이는 도심의 택시 헤드라이트 (또는 그 가는 빛줄기) 등이 창 왼편, 아래쪽으로부터 떠오른다. 귀가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고 일깨운다. ”

그녀의 창문에는 수백 개의 햇살이  퉁겼다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로저 엔젤은 건물의 유리창에 반사되는 빛에 집중하고 있다. 햇살이 퉁겨나갔다가 들어오고 어느새 빠져나가는.. 햇살들의 반짝임이 창안을 가득 채운다.


맷 델린저는 창밖에 거대한 나무의 모습을 날마다 바라본다

“저 나무... 내 브루클린은 언제나 그대로다.” 모든 것은 변해가는데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녀의 창밖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나무 주변의 풍경들이 변해가도 나무는 계절의 옷을 갈아입을 뿐이다. 그러하기에 맷 델린저는 "내 브루클린은 언제나 그대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녀가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나무의 삶이 그녀의 삶 안으로 들어와 있다. 


 

캐롤 보거트는

“ 34층에 올라 책상에 앉아있으면 하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쪽 창은 내가 매주 비행기로 들락거리는  라구아디아 공항과  케네디 공항 쪽으로 나있다. 하늘은 베를린, 카이로, 프리타운을 비롯한 세상으로 연결해준다. 일할 때면 마음이 그 하늘에 가 있다.”


캐롤 보거트는  창을 통해 주로 하늘을 바라본다.

생각 또한 눈에 보이는 하늘을 넘어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하늘로 수시로 날아간다.








데릭 버멜의 창밖 풍경

“ 새벽에는 흉내지빠귀 소리가, 아침에는 짐 부리는 트럭의 통통거리는 엔진 소리가, 정오 에는 아래층의 텔레비전 소리가 들린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놀면서 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해질 녘에는 자동차 알람이, 저녁에는 경찰차 사이렌이 들린다. 그리고는 정적이 찾아온다.”


데릭 버맬의 창밖 풍경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풍경이다. 자동차 엔진 소리와, 산책하는 사람들의 소리, 아이들이 달리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택배 사원의 빠른 발소리와... 

익숙한 생활의 소리들이 펼쳐지는 풍경이다.

창은 일상의 소리들을 위한 무대이다.









                                                                   


아킬레 바르치

“ 안이 있으면 밖도 있다. 모르는 척하지만 그 둘을 갈라놓은 경계도 있다. 경계는 때로 벽돌벽처럼 두껍고 완고하다. 우리의 시야나 상상력처럼 얇고 비물질적인 것도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경계는 안일까, 밖일까? 나와 세상의 경계는 나의 일부일까, 아니면 세상일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과 유리를 바라보는 건 좋다. 질문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       

       

아킬레 바르치는 이처럼 답답한 건물 사이에서 안과 밖의 경계를 묻고 있다. 안과 밖의 경계, 창을 바라보는 자신과 창밖에 보이는 것들과의 경계를 바라보며 질문의 본질을 생각한다. 단조롭고 건조한.. 프레임에 갇힌 창안에서.


뉴욕. 63인의 눈에 비친 창밖 뉴욕... 처음 이 책을 열 때는 간결하고 세련된 그림과 그림에 어울리는 짧은 글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63인의 눈에 비친 뉴욕은 세련된 도회적 풍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에 누군가가 눈물 흘리는 모습도, 구걸하는 자의 모습도, 소외된 이의 모습도, 집을 갖지 못한 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창밖 풍경 그대로일 뿐.

이 책의 저자 마테오 페리콜리는 이사를 가면서 창밖 풍경을 가져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 63인의 창밖 풍경을 담아냈지만 다시 바라보면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만일 그의 창밖에 울부짖는 자의 몸부림과 그 눈물과, 울음소리가 가득 차있다면... 그는 창밖 풍경을 과감히 버리고 홀가분하게 떠나지 않았을까.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창밖 풍경도 보기 좋아야 감히 창밖 풍경이란 말을 쓸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 창밖 풍경을 누릴 수 있는 자 만이 감히 창밖 풍경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저마다 풍경이라는 말이 있다.

창밖 풍경은 결국 사람... 사람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아닐까.

사람들의 온기가 만들어 낸 풍경이 아니라면 온기가 있는 풍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창밖 풍경을 누리려는 자의 의무 같은 것이 아닐까/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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