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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desidero ergo sum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desidero ergo sum

욕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욕망한다는 동사 앞에 붙어야 할 말들은 사람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당신을 욕망한다.’ 혹은 ‘나는 나를 욕망한다.’ 많은 관계 속에 욕망한다는 말은 붙이면 자칫 관능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돈을 욕망한다.’ ‘ 책을 욕망한다.’라고 하면 물질에 대한 탐욕처럼 들린다. 이루고 싶은 꿈들, 이루어야 할 것들을 욕망한다고 쓰면 집착처럼 들린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욕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심리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이란 단어는 원초적인 것이며, 끓어오르는 뜨거운 것을 연상시킨다. 돌아보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욕망하며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 대개는 욕망하는 것들을 저 아래 깊은 곳에 감추고 적당한 선에서 욕망과 타협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설령 마음껏 욕망하고 싶어도 타인의 시선 때문에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억압된 욕망이 엉뚱한 형태로 표출되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무언가를 욕망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생명이 소멸한 자, 뜨거운 것들이 식어버린 자는 욕망할 수 없다. 욕망한다는 것은 나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넘치는 것들, 끓어오르는 것들. 욕망하는 것들을 표출함으로써 나는 존재할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무언가를 마음대로 욕망하지 못하였다. 바른 아이여야만 했고 어른들이 만들어 준 욕망의 크기에 맞춰 살아야 했다. 감히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 어떤 욕망의 임계치를 생각하는 것은 불온한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어쩌면 이 명제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욕망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삶에 욕심을 부릴 오기가 있다는 남아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설령 욕망한 것을 손에 쥐지 못한다 하여도 욕망하는 것들을 충족시키려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욕망하는 한 나는 여전히 존재해왔고, 존재하기 때문이며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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