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러하지 않은가?

에셔의 '상대성'에 소품처럼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손을 그리는 손처럼..

"책장을 넘기는데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울며 이를 가는 소리,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쇼펜하우어

"철학적 궁금증이란 단지 지적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분노에 해당한다. 철학적 의문은 세계가 응당 그래야 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도덕적 분노’라는 표현에 흠칫 놀란다. 철학적 궁금증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것이다. 도덕적으로 분노해야 하는 것이다. 철학에 대한 궁금증을 삶에 대한 궁금증으로 바꿔 생각해본다.

"삶의 궁금증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것이다. 무언가에 분노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 모리츠 코르넬리우스 에셔 (1898-1972)

기묘한 시각적 지각적 반응을 일으키는 판화작품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그래픽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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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 1953/ 모리츠 코르넬리우스 에셔 (1898-1972)


역삼각형 구도를 이루는 세 개의 계단이 화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공존 속에서 계단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되어있다. 오르내리는 일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

작품 속 사람들은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짐을 지고 계단을 오르거나 식탁에서 식사를 하거나 책을 보고 앉아있거나 무언가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거나... 수직과 수평의 세계가 서로 다른 세 공간에서 익명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

우리도 그러하지 않은가. 삶의 계단을 오르고 계단을 내려오고 그 계단의 끝에서 다시 계단을 향해 오르고.. 반복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에셔의 '상대성'에 등장하는 순환 고리 어딘가에 우리는 존재하는지 모른다.

짐을 지고 오르내리고, 책을 읽고 식사를 준비하고... 그 소소한 일상들, 반복들..... 계단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계단의 끝이 언제 나올지 모르면서 계단을 오른다. 에셔의 그림 속 '나'는 어디에 있을까?

다시 들여다보면 순환의 계단을 벗어난 실외는 그래도 자유 의지대로 움직이는 곳처럼 보인다. 그곳엔 잔디와 나무와 꽃과 풀이 존재한다. 미로와 같은 계단을 벗어나 열린 공간으로 가는 일..

그러나 우리는 왜 그러하지 못하는가? 짐과 책과 물그릇을 내던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령 아무것도 지고 있지 않는 이들의 몸도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림 속 계단은 삶의 중력이 미치는 공간이다.



"책장을 넘기는데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울며 이를 가는 소리,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는 쇼펜하우어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에셔의 <상대성>에서 익명의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우는 소리, 웃는 소리, 걸음소리, 이를 가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무의식적 행위를 반복하는 이들에게서 눈물 떨어지는 소리, 한숨 소리, 가슴의 절규, 이를 가는 소리, 생의 발걸음 소리, 슬픔의 중얼거림이 들리지 않는다면.


“ 그들의 삶은 태엽이 감겨 이유도 모른 채 움직이는 시계 장치와 같다. 인간이 생겨나고 태어날 때마다 이미 셀 수 없이 많이 들어본 낡은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하기 위해 인생 시계에는 새롭게 태엽이 감긴다. ”

쇼펜하우어


어릴 적 태엽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태엽을 감고 또 감고.... 인형은 태엽이 돌아가는 동안은 눈을 깜박이고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곤 했다. 그 인형들은 태엽을 감아도 결국은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반복을 멈추었다.

셀 수 없이 많이 들어본 낡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우리의 등 어딘가에 새롭게 태엽이 감긴다. 태엽이 풀리는 그 순간까지..... 익숙하고 낡은 반복이 이어진다. 반복의 지루한 유희 그러나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고통들. 태엽인형처럼 우리도 익숙함을 되풀이한다.



< 손을 그리는 손 >/ 에셔

손을 그리는 손.jpg

왼손은 끝없이 오른손 셔츠를 그리고, 오른손은 왼쪽 셔츠를 그리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순환이 이어진다. 동시에, 어느 한 손이 그리기를 중단하지 않는 한 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그만둘 수 없는 것. 삶이란 '손을 그리는 손'같은 것이다. 밥이 밥을 먹고, 돈이 돈을 쓰고, 걸음이 걸음을 걷고, 잠이 잠을 자고, 슬픔이 슬픔을 끌어오고... 돌고도는 것 사이에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양가감정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무르기를 원하고, 머무르게 되면 또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손이 손을 그리는 삶이다.


우리도 그러하지 않은가.

부당함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버리고, 누군가의 기쁨을 위해 나의 기쁨을 슬며시 감추어버리는, 분노할 때 분노하지 못하는 것... 늘 무언가에 떠밀려 자꾸만 비겁해지고 마는 것을...

누군가 나를 순환의 계단에서 구원해 주기를, 누군가 내게서 손을 그리는 연필을 빼앗아 주기를.... 누군가 등에 있는 태엽 장치를 슬그머니 멈추어주기를..........

그러나 그 누군가는 없다.

등에 있는 태엽 장치가 멈추는 날이 오기 전까지 순환의 계단에서 밖으로 걸어 나가고, 손을 그리는 연필을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스스로!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는 작고 사소한 중얼거림에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으르렁거림이 될 수도 있음을../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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