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을 쫓아 달리던 발랄하고
경쾌한 무모함이 좋았다

거품을 좇는 인간 homo bulla

거품을 좇는 인간 homo bulla


인간을 지칭하는 수많은 호칭들, 호모 부커스, 호모 파베르, 호모 사케르..... 어떤 특성에 맞게 붙여진 이름들 일 것이다. '호모 블라 ( homo bulla)'는 거품은 좇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호모 블라’를 소재로 한 작품은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는데 전성기는 17세기 네덜란드라고 한다. ‘호모 블라’ 작품에서는 예외 없이 누군가 비누 거품을 불고 있다. 대부분은 어린아이가 거품을 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있다. 어린아이에게는 현재가 곧 미래이다.


니체는 정신이 겪는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로 설명한다. 낙타는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행사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간다. '해야만 한다'는 당위의 단계다. 사자는 '해야 한다'는 당위에 맞서 스스로의 자유를 주장하는 '할 것이다'의 단계이다. 어린아이의 단계는 '삶에 대한, 자신에 대한 성스러운 긍정'의 단계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어린아이는 순결이자 망각,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 최초의 움직임, 신성한 긍정이다."라고 하였다.

삶을 비누 방울을 불듯 평온하고 기쁘게 즐기는 유희의 단계다.

어린아이가 부는 비누 방울 속에는 존재하는 현재와 아직 오지 않은 현재, 그리고 오고 있을 현재가 들어있다. 그들에게 다가올 인생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리라.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노인이 비누 방울 거품을 부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노인들은 거품이란 것이 어느 순간 터져서 반드시 사라질 것임을 이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도 그 거품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노인과 어린아이의 차이는 노인은 덧없이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불지 않는다는 것이고 어린아이는 사라질 것을 알기에 계속해서 거품을 만들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로마의 시인 바로는 “인간이 거품이라면 노인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독일 밤베르크 홀리그레이브 채플에 새겨진 요한 게오르크 라인베르거의 작품에는 ‘비눗방울을 부는 망자’가 있다. 해골의 모습으로 표현된 망자가 거품을 불고 있는 작품이다. 해골이 된 망자가 앉아서 거품을 부는 것은 인간이란 죽어서도 끝없이 어떤 거품을 좇는다는 의미인지, 망자의 거품처럼 인생은 덧없고 덧없다는 바니타스(vanitas)의 상징인지 알 수 없다.


마네 비눗바울소년.jpg

마네의 작품 < 비눗방울>에 등장하는 소년은 마네의 아들이라 한다. 어두운 배경에 베이지 셔츠와 조끼를 입은 소년이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터지지 않도록. 진지하게. 호흡을 조절해가며, 소년은 눈 부풀어 오르는 비누 방울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에 서있다.

어둠과 빛, 터지는 것과 터지지 않으려는 것이 공존한다.

비눗방울은 표면장력 때문에 생겨난다. 비눗물은 수분층 외부에 얇은 기름막을 형성하고 수분의 증발을 잠시 동안 막아주기 때문에 공기를 안게 되고 그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 동그란 비눗방울이다.

잠시 동안 공기를 품고 있는 비눗방울. 소년은 비눗방울 안에 공기 외에 또 무엇을 넣었을까? 소년의 몸에서 나와 빨대를 거쳐 비눗방울 안으로 옮겨가는 것들....


나도 한때는 비눗방울을 불던 소녀였다. 누구든 유년에 비눗방울 놀이의 추억은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비눗방울 부는 것과, 동그란 투명 방울을 만드는 약품 같은 것을 팔았다. 본드 같은 화공약품 냄새가 나는 투명 방울 만들기 세트. 빨대 끝으로 액체를 묻혀 공기를 불어넣으면 적당히 부풀어 올랐다. 비눗방울처럼 덧없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손에 닿으면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입으로 불어 비눗방울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어쩌면 그 투명한 방울들을 좇는 것이 더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비눗방울 놀이를 좋아한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형형색색 비눗방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번민도 끼어들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현재란 비눗방울을 부는 유희의 순간이니까. 그 방울 안에 붙잡아둔 현재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비눗방울들은 누군가 건드리지 않아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라진다. 사라지지만 아름다운 것,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것들이다.


호모 블라. 거품을 좇는 인간은 신기루나 환상을 쫓는 인간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유년시절 비눗방울을 좇던 무념무상의 유희는 어른이 되어서는 욕망의 유희로 변해갔다는 사실뿐. 사라지는 것이 분명한데도 덧없는 것들을 여전히 좇고 있다. 터질 것이 분명한 비눗방울 안에 담으려 하는 것들은 더 이상 순수함이 아니다.


비눗방울을 따라 달리던 그 어린 날의 순진무구한 유희는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순결이자 망각,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 최초의 움직임, 신성한 긍정"을 품고 달리던 그 오래전 어린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래도 비눗방울을 따라 달리던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유쾌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으리라.

터져버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방울을 쫓아 달려가던 그 시절이.

그 시절의 경쾌하고 발랄한 무모함이........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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