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단어를 이마에 써붙인 광대처럼 우리는 살고 있다

기대거나 눕거나 웅크리거나...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

스위스 출신 현대 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 <nuns and monks by the sea(바다의 수녀와 수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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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아니다. 수녀와 수도승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다와 수녀와 수도승으로 지각한다.

회색 공간 안에 인공적인 형광색을 입은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무표정한 조각들, 몸체와 머리. 묵상하는 수녀와 수도승이 분명하다.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예술로 탐구해온 우고 론디노네의 다채로운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브는 무지개, 올리브나무, 태양, 물고기, 새, 돌이다. 돌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고 론디노네는 원하는 크기와 디테일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작은 석회암을 3D 스캔한 후 확대해 청동으로 주물을 떠서 작업을 완성했다고 한다.

작품명이 ‘수녀와 수도승’이지만 특정 종교에 한정된 작품은 아니다. 돌에 구현된 인간의 자아를 찾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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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론디노네의 설치 미술에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 바닷가의 수도승>을 떠올린다.

광활한 우주처럼 보이는 바닷가에 수도승이 서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작품의 왼쪽 하단에. 상념에 잠긴, 고독과 숭고란 단어를 밤하늘에 적고 있는 듯한.

“일기를 쓰듯 살아 있는 우주를 기록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태양, 구름, 비, 나무, 동물, 계절. 하루, 시간, 바람, 흙, 물, 풀잎 소리, 바람소리, 고요함.. 모두.” 라고 이야기 하는 우고 론디노네처럼 바닷가의 수도승도 밤하늘에 일기를 쓰고 있다. 고독이라는 일상어를 수없이 흩뿌리면서 '찰나'에 불과한 지상에서의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작품 ‘고독한 단어들’에는 각기 다른 포즈로 쉬고 있는 광대 마네킹 27개가 등장한다. 화려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 그러나 그들은 지쳐있다, 공연을 끝낸 광대들. 삶의 공연은 늘 버겁다. 당위와 의무에 눌려 휴식이란 없다.

무대에서 과장된 옷차림을 하고 과장된 표정을 짓는 그러나 무대 뒤에서는 축 처진 채 웅크리고 앉은 광대. 이 작품의 묘미는 27개의 광대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신과 닮은 광대를 찾는 것이라 한다. 자신과 닮은 광대 찾기 놀이를 하는 동안 위로를 받으리라. 어딘가 나를 꼭 빼닮은 광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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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알랭드 보통은 『영혼의 미슬관』에서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으로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을 들고 있다.

“ 다른 도구들처럼 예술에도 자연이 원래 우리에게 부여한 현재 너머로 우리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예술은 우리의 어떤 타고난 약점들, 이 경우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심리적 결함이라 칭할 수 있는 약점들을 보완해준다.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의 태생적 결여를 보완할 수 있다."는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하나의 거대한 추상처럼 다가오는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의 가슴 안에 잠복해있는 결여를 치유할 수 있다.


회색 공간 안의 수녀와 수도승은 바닷가에 서있다. 거대한 회색의 섬. 사면이 바다인 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은 익명인 채로. 표정도 없는 그 무표정 속에 우리는 자기 안의 결여를 끄집어낸다. 27개의 광대 마네킹들. 광대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일까. 그러나 광대짓을 하고 싶어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날이 온다. 밥벌이로서든 실존을 위해서든 저마다 광대인 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작품의 제목이 ‘고독한 광대들’이 아니다. ‘고독한 단어들’이다. 사람들 낱낱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한다면 나는 어떤 단어로 규정될 수 있을까? 고독한 단어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수없이 뱉어내는 단어들 속에 나를 상징하는 단어란 무엇일까?

결국은 고독한 단어들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발화되는 순간 사라지고 마는 단어들의 최후와도 같다.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광대들, 저마다의 단어들을 붙인다면 권태이거나 휴식이거나 지침이거나 소외됨이거나 허무이거나... 허탈이거나 가짜 미소이거나..

세상이란 공간 속에서 쏟아지는 미디어 속에서... 다르지만 같은 일상, 혹은 같지만 다른 일상을 반복하는 우리들은 고독한 단어들을 이마에 써붙인 광대들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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