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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갑옷을 벗어던지자 소리 없이 흑점들이 폭발한다

희랍어시간/ 한강/  이미 죽은 언어로 이어지는 어떤 삶의 기척들


한 강의 <희랍어시간>의 첫 문장은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로 시작한다.

서슬 퍼런 상징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었지만. 남자와 여자가 한 침상에서 보낸 첫 밤이자 마지막 밤. 새 벽이 올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 장검이 놓여있었다. 그 서슬 퍼런 칼날이 만년의  보르헤스와 세계 사이에 가로 놓여있던 ‘실명’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지극히 조용하고 사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다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이야기이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이, 여자는 말語을 잃는다. 그것이 처음 왔던 것은 열일곱 살 겨울. 말을 잃고 살던 그녀의 입술을 다시 달싹이게 한 건 낯선 외국어였던 한 개의 불어 단어였다. 시간은 다시 흘렀다. 이혼을 하고, 아홉 살 난 아이의 양육권도 빼앗기고, 다시 그렇게 말을 잃어버린 후,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 놓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선택한 것은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     

가족들을 독일에 두고 십수 년 만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 남자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볼 수 없다던 마흔이 가까워오지만 아마 일이 년쯤은 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아카데미의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주의 깊게 지켜보지만 여자의 단단한 침묵과 마주하자 두려움을 느낀다. 희랍어 강사와 여자는 서로의 앞에 침묵을 놓고 더듬더듬 대화한다. “

                                                                                              출판사 책 소개 요약


언어를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독백처럼.

아무도 들을 이 없는데 벽에 대고 하는 독백처럼.

설령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투로.......  

   

여자에게 어느 날  ‘그것’이 찾아왔다.      

그녀에게 이십 년 만에 찾아온 침묵은 예전처럼 따스하지도 농밀하지도 밝지도 않다. 처음의 침묵이 출생 이전의 그것에 가까웠다면 이번의 침묵은 마치 죽은 뒤의 것과 같다.      

지난해 봄 백묵 가루가 잔뜩 묻은 손으로 여자는 흑판을  짚고 서 있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적 한 것은 여자가 끝내 다음 단어를 찾아내지 못한 채 일 분여의 시간을 흘려보냈을 때였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여자는 떨리는 입술을 꽉 다문 채 혀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중얼거렸다

그것이 다시 왔어..     

여자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부터 육년남짓 출판사와 편집대행사에서 일했고, 칠 년 가까이 수도권 두 대학과 예술고에서 문학을 강의해왔다. 진지한 시집 세 권은 삼사 년 간격으로 묶어냈고 격주로 발행되는 서평지에 여러 차례 칼럼을 기고해왔다. 최근에는 제호를 정하지 않은 문화지 창간 멤버로 매수 수요일 오후 기획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것이 다시 왔으므로 그녀는  그 일들을 모두 중단했다          


오랫동안 말을 잃은 상태를, 그녀의 육체는 예민하게 드러낸다     

어떤 것도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았고 어떤 것도 내부로 스며들어오지 않았다

이따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낀다... 침묵의 얼음 속에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들여다보는 것은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으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 단어뿐이다.

     


눈을 잃어가는 남자는 아카데미에서 희랍어를 가르친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수업을 하냐고요

월요일과 목요일애는 희랍어 초급반을, 금요일에는 플라톤을 완전 강독하는 중급반을 가르칩니다. 한 반의 수강생은 많아야 여덟 명을 넘지 않습니다. 

동기가 어떻든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겐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걸음걸이와 말의 속도가 대체로 느리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아마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일 테지요) 오래전에 죽은 말, 구어로 소통할 수 없는 말이라서일까요. 침묵과 수즙은 망설임, 덤덤하게 반응하는 웃음으로 강의실의 공기는 서서히 덥혀지고 서서히 식어갑니다.     

고대 희랍어에는 수동태와 능동태 말고 제 3의 태가 있어요..

우리가 중간태라고 부르는 이 태는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표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다’는 동사에 중간태를 쓰면 무엇인가를 사랑해서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 됩니다.      

수동도 능동도 아닌 중간태의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랑하다는 동사를 중간태로 쓰면 그로 인해 나에게 미친 영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동사가 되는 것인지.......... 고대 희랍인들에게 중간태가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하는 것과 당하는 것. 두 가지로 양분되는 것 사이에 머무르는 중간태...... 어떤 것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을 나타내는 동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남자와 여자는 평행선이었다. 단순한 반복과 단순한 호기심과 강의실의 강사와 온통 블랙 패션으로 차려입은 우울해 보이는 여자. 단 한마디도 발화하지 않는 여자.  침묵의 갑옷을 입은 여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으려는 단호한 혀를 지닌 여자.     


우연히 건물 안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 여자는 새를 건물 밖으로 내보내 주려 하지만 새는 필사적으로 지하로 달아난다. 그는 계단을 올라오다가 새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비추던 손전등을 놓쳐버림과  동시에 그를 향해 새가 달려든다. 그의 안경이 벗겨져 바닥에 뒹글고 안경알이 떨어져 나간다.

"내 말을 들을 수 있어요?"

" 거기 누구 없나요?" 

연한 사과향의 목욕비누 냄새가 코 끝에 스며온다. 차갑고 날렵하게 여자의 두 손이 그의 겨드랑이를 받쳐 든다. 어둠의 명도가 달라졌다.

남자를 구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건물 안에 오직 여자뿐이었다. 그날따라 덩치 큰 남자도... 의대생도... 강의에 오지 않았다.

    

“ 그러니까... 당신은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았나요?"

“ 희랍어는 왜 배우시나요?"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 그날 희랍어로 공책에 쓴 것은 무엇이었나요?"

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이 공중 속으로 흩어진다.

     


여자는 태생적으로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것이다. 스스로. 

어떤 경험이 그녀로부터 말을 앗아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 발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셀 수 없는 혀와 펜들로 너덜너덜해진 언어, 그녀 자신의 혀와 펜으로 평생 동안 너덜너덜하게  만든 언어. 하나의 문장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늙은 심장이 느껴졌다. 무표정한 심장.     


볼 수 없는 남자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입 맞춘다. 축축한 귀밑머리에 눈썹에 먼 곳에서 들리는 희미한 대답처럼 그녀의 차가운 손끝이 그의 눈썹을 스쳤다 사라진다. 눈가에서 입가로 이어지는 흉터에 닿았다 사라진다. 소리 없이 먼 곳에서 흑점들이 폭발한다.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난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떠올랐어요

먼저 수면의 빛에 어렴풋이 닿고

그다음부터는 뭍으로 거세게 쓸려갔어요     


두려웠어요

두렵지 않았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내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기 전에

당신은 나에게 천천히 입맞추엇지요.

이마에

눈썹에

두 눈꺼풀에     

마치 시간이 나에게 입 맞추는 것 같았어요

입술과 입술이 만날 때마다 막연한 어둠이 고였어요

영원히 흔적을 지우는 눈처럼 정적이 쌓였어요

무릎까지, 허리까지, 얼굴까지 묵묵히 차올랐어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이 난다.

마침내.. 첫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이 각오하듯이....


여자는 처음으로 발화하는 아기처럼 입을 오므리고 첫음절을 발음하려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사라지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침묵과 어둠............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

이미 죽은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

쓸모를 지닌 언어로서가 아닌 이미 죽은 언어를 통해 이미 죽어가는 자신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칼은 무엇일까?

‘혀’가 아닐까. 입 안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쉽게 접히고 구부러지는 혀....... 혀로 인해 목구멍 안에서 발화되어 나오는 그 어떤 것들이 때로는 왜곡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때론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모음과 자음을 꾹꾹 눌러 적어주고 촉각으로 읽어내는 것이 더 정직한 것이 아닐까.

해외여행을 갔을 때, 그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극히 단순한 표현 외에는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원어민 수준은 아니더라도 띄엄띄엄하는 문장 몇 개로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오롯이 전해질 수는 없었다.

내 안에 있는 엄청나게 무거운 말의 뿌리들이 목구멍 안까지 차오르고 있었지만 혀는 그것들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겐 초등생 정도의 단어들만을......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의 1프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      


여자는 침묵을 깨고 밖으로 나온 것일까.

죽은 희랍어가 그녀 목구멍을 막고 있던 거대한 바위들을 바수어버리고...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를 위해. 그를 위해 이제는 목소리를 발화하기로 한 것일까.

오래전 그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 앞을 볼 수 없었던 여자로부터 외면된 남자의 사랑을.... 무릎에서 허리까지 그리고 얼굴까지 시간들이 눈처럼 차오르도록 내버려 두면서..

두려웠어요/두렵지 않았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두려움과 두렵지 않음 사이를. 울음을 터뜨리고 싶음과 터뜨리고 싶지 않음 사이를.......

여자는 걸어가기로 한 것일까. 발화하기 위해 입을 한껏 오므리면서../ 려원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오래전 누군가와 한 몸이었을 우리는 끝없이 징표를 찾아 헤맨다. 누구나 타인의 부족한 한 조각, 누군가가 놓쳐버린 퍼즐 한 조각을 품고 있어 누군가에게 퍼즐을 건네주면 비로소 완성되는 퍼즐 판 같은 것일까. 

결여를 품고 사는 사람은 누구든 결여를 채울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선다.... 부절이든 부신이든 반편이든 인간 본성의 본질은 그리움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리움은 반으로 잘림 때문에 생겨난 정서 인지도 모르겠다.  p51


결여를 지닌 사람들. 누구든 결여를 품고 있다

말을 잃어가든, 눈을 잃어가든...

스스로 잃어가든 타의적으로 잃어가든..

그 잃어가는 것들의 사이에서 또다시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없음이 만들어낸 '있음'같은 것일까... 

잃어가는 어떤 것들을 되찾기 위해 죽은 언어에 기댄다. 현대의 언어로는 자신을 발화할 수 없기에.

서늘한 결여와 그 결여를 다시 무언가로 채워가는 이야기... 

잊히지 않는 무언가를 품고 살아가고 싶다.  두려움과 두렵지 않음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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