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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500봉 난 죽었다.

흰 커튼 뒤 은폐되고 왜곡되고 유린된 것들....

치킨 500봉 난 죽었다.     


23살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죽었다.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15일 오전 6시 20분 홀로 작업하던 20대 여성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배합기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더 슬픈 것은 사고 다음 날에도 작업을 계속하라는 회사 측 지시에 따라  그녀가 목숨을 잃은 배합기 옆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을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하얀 천으로 가려놓은 배합기는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한 ‘관’처럼 보였으리라.

납품일을 맞추기 위해 동료의 죽음을 묵도하고서도 끝없이 일을 하게 강요하는 사람들.

노동자를 감정이 없는 기계, 공장의 부품 정도로 보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에도 공장 내 다른 생산라인에서 손 끼임 사고가 발생한 바 있었지만, 사측은 기간제 노동자라는 이유로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샌드위치의 유래는 18세기 영국의 귀족인 제4대 샌드위치 백작 존 몬태규(1718~1792)의 작위명인 '샌드위치'를 따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트럼프 도박을 좋아한 그는 나머지 트럼프 게임을 하느라 식사할 시간조차도 아까워서 손에 쥐고 있었던 트럼프 카드를 보고, 트럼프를 하면서도 먹을 수 있도록 빵 사이에 고기와 채소를 넣은 식사를 생각해냈다. 자신이 생각한 음식을 하인에게 주문했고 다른 사람들도 "샌드위치와 같은 걸로 주시오(The same as Sandwich)"라고 하면서 샌드위치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한 늘 배를 타야 하는 선원들에게 샌드위치는 빠르고 간편한 식사이면서 야채 공급원으로 영양적으로도 인기가 있었다. 우리도 무언가를 먹기 애매한 시간이면 누구든 샌드위치 한 조각을 사거나 만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빠르고 간편한 한 끼 식사를 위해 누군가는 치킨 500봉을 까야한다고 눈물 흘린다. 앞치마가 기계 안으로 끌려들어 가도 기계를 멈춰 줄 사람도 그녀의 몸을 붙잡아 주는 이도 없다. 기계는 그 순간에도 분쇄와 배합이라는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현대 물질문명의 두려운 이면이다.

인터넷상으로 SPC 계열사 납품 업체 리스트가 떴고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불매운동으로 그칠 일인가.     


용광로 쇳물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잃고 한 동안 가슴이 저려왔다. 

“그 쇳물 쓰지 말라!”가 구호였지만 그 쇳물은 이미 어딘가에 쓰여 다리가 되고 철골 기둥이 되었으리라.

택배 노동자가 물류센터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지만 택배 분류 라인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만들었던 그녀의 배합 물든 이미 납품 업체로  이동되어 바쁜 누군가를 위한 샌드위치가 되었으리라. "그 빵 먹지 말라."라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노동자를 부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같은 작업 실내 2인 1조라는 지침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 속에...     

세상은 얼마나 흰 거튼으로 가려진 위험들이 많은가.

은폐되고 축소되고 왜곡된 것들 사이에서  용광로는 돌아가고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배합기가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흰 커튼 뒤에서 흘리는 눈물 젖은 빵이란 말이 왜 이리도 가슴을 시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스물세 살 피어보지도 못한 나이다. 

이틀 뒤 남자 친구와 부산 여행 일정이 잡혀있다는 카톡 메시지가 더 서글프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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