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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있지 않음과 없어도 있음 사이에서 줄타기

있어도 있지 않음과 없어도 있음에 대하여     

 

우리는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와 없어도 있는 존재를 실감하며 살아간다. 

내 목소리를 굳이 내고 싶지 않은 날은 익명 속에 몸을 감춘다. 전체의 목소리가 곧 나의 목소리라는 안도와 설령 전체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다르더라도 굳이 뾰족하게 나를 드러낼 이유가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있어도 있지 않은 것이다. 무언가 사회에 대해,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내 목소리를 내고 싶으면서도 자꾸 저울질하다 마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리라.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영리한 비겁함일까 비겁한 잔인함일까.

적당히, 어떻게든 되겠지,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라는 계산 뒤에 나는 있지만 나는 있지 않다. 

있어도 있지 않은 것 같은 날은 나답지 않은 날이기도 하다. 내가 아닌 타인처럼 느껴지는 날. 자꾸 낯설어지는 날, 나는 있어도 있지 않다.     


없어도 있음의 경우는 가상공간에서는 늘 가능하다. 기분과 목소리와 상태와는 별개로 나의 카톡 프로필은 늘 한결같다.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늘 같음의 상태.

분명 ‘오늘’의 나는 그곳에 없지만 카톡에서는 늘 같은 상태로 존재한다. 때로 가상공간에서 우리들의 모습은 일종의 연출이기도 하다.

일부러 카톡 메인에 올라있는 지인들의 창문을 들여다본다. 그들도 늘 같음의 상태인가. 어떤 이는 시시각각 자신의 같지 않은 상태를 알려주고 있다. 생중계하듯 존재함을 드러낸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어떤 여인의 카톡을 지우지 못하고 오래도록 놓아둔 적이 있다. 그녀가 나와 특별한 관련이 있어서가 아니지만 그녀의 죽음이 너무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젊은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 ‘엄마가 많이 사랑해! “ 그녀의 카톡 프로필 문구는 늘 그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아이들을 잠깐 가르친 인연이 있다. 가끔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활기차고 낭랑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사랑한다는 말을 메인에 띄워놓을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했던 그녀. 이미 작은 단지 안에 들어와 있지만 한동안 나는 그녀의 연락처를 지우지 않고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그녀의 잔상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마다 그녀 아이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생각하곤 한다.      


  현대사회의 익명성은 '있어도 있지 않은 척' 하며 살아가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 그런 비겁함이 뭉쳐 결국은 사회를 비겁한 방향으로 몰고 가버린다. 군중이란 힘을 지닌 존재이면서 방향성을 상실할 때는 그 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어쩌면 방향성을 상실한다는 자체가 '나쁜 힘'을 양산하는지도 모른다.

있어도 있지 않은 척 하기, 익명의 군중 속에서 나는 그렇게 비겁하게 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있어도 있지 않은 척하기’를 부추긴다고 허접한 변명을 해본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참사, 희생, 사망, 리본, 검은 리본, 책임, 책임지지 않음, 무한 책임, 통감, 자리, 압수 수색, 애도, 추모, 심지어....... 웃기고 있네ㅠㅠ라는 해괴한 말까지... 등장했다.

본질은 희석되고 진실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희화화된 세상에서 있지만 있지 않은 척하고 싶은 마음은 더 오래갈 듯하다. 현실이 자꾸만 ‘있지만 있지 않은 척’하고 싶게 만든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세상에 있지 않은 이들을 붙잡아 둔다.

사라지고 없는 것들을 자꾸만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은 어쩌면 나 또한 그들처럼 사라질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은 있어도 있지 않은 척 하기보다는 사악함이 없어서 좋다.      

존재하길 바란다. 익명성 뒤에 숨은 우리들의 비겁함 대신 용기가 그리고 진실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온기가, 존중과 배려가, 이해와 용서가, 사랑이........

있어도 있지 않음과 없어도 있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느라 벌써 11월이 되었다.

한 해의 끝을 향해 간다. 11월의 햇살이 창가에 앉은 나의 등 뒤로 내려온다.

햇살은 모두에게 고루 비치는데 세상은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려원    

     


<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사람들..

저마다 다른 사람들 속에

그래도 사람이기에 

저마다 같은 정서를 품고 있지 않을까

어떤 슬픔이나 어떤 기쁨이나

분노나 욕망이나 좌절이나...

결과 빛깔과 폭과 깊이는 다를지라도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품어야 할.... 마음의 온기와 습도 같은 것들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흙에서 온 사람들...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사람들이기에.


있어도 있지 않은 척하는 비겁한 놀이를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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