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이 책은 1983년 12월에서 시작하여 1986년 4.28일 월요일에서 끝이 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83년 여름,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어머니를 세르지의 집으로 모셔온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억척스럽고 자립심 강한 여성으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며.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기억력 감퇴를 심각할 정도에 이르렀다.

어머니가 집에 머물렀던 그 몇 개월 동안은 공포의 시간이었고 어머니의 행동과 말들을 그때부터 에르노는 쪽지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퐁투아즈 병원에 입원시키고 문병을 다녀올 때마다 점점 더 절박하게 다가오는 어머니의 모습과 말들을 필사적으로 기록한다. 

1985년 말 죄의식을 느끼면서 어머니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의 글쓰기는 앞으로의 전진이었다면 어머니를 문병하고 돌아와 격정에 사로잡힌 채 쓰는 글은 가혹한 피폐를 상기시켜 주는 일이었다.           



“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치매에 걸리기 전 본래 모습의 어머니를 꿈에서 자주 뵌다. 어머니는 마음속엔 살아있지만 실제론 죽었다. 나는 잠에서 깰 때마다 잠시 동안 어머니가 죽었으면서 동시에 이중 형상으로 실제로 살아있음을 확신한다. 마치 죽음의 강을 두 번 건넌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처럼

                                                    1996년 3월 / 아니 에르노  (작가의 말 중에서)                

1984년 1월

나는 어머니가 전에 쓰기 시작했던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라고 적혀있었다.

이 편지의 글들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써놓은 것 같았다.  

   

4.4 수요일

나는 어머니의 안락의자에, 어머니는 걸상에 앉아 있다. 내 몸이 둘로 쪼개어져 있다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면서도 ‘그녀’였다.      


5.17 목요일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7.12 목

우리는 다시 승강기에 올라탔다. 승강기 모퉁이에 거울이 걸려있었고 그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니 어머니 허리가 몹시 휘어져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어머니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간에 중요한 건 지금 내 곁에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12.9 일요일

어머니는 생기를 잃고 피부가 변해간다. 늙는다는 것은 생기를 잃어가는 것이며 동시에 마음속의 움직임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어머니 곁에서 생활하던 자그마한 노파가 사라지고 그녀의 벽장이 텅 비어있다. 나는 아직도 그 노파가 어디에 있는지 감히 물어볼 용기가 없다.     


12.31월 요일

아직 앞날에 대한 계획과 욕구를 지닌 채 어머니는 오로지 살고 싶은 소망밖에 없었던 것이다

“간호사들은 누가 떠나버린 일에 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아. 언젠가 나도 떠나겠지.”


2. 1 토요일

어머니가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 사람은 결국 한 가지 인생만을 살게 된다(웃기 위해서, 잘 먹기 위해서, 혹은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 내게는 ”넌 인생을 살면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하려고 해! “라고 말했다.     


5.18 토요일

어머니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가던 끔찍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뭔가 자꾸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처럼 집을 되돌아보았다. (가을이면 사방으로 가로수가 즐비했던 안시에 살았던 당시 그 집 정원에는 거북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 거북은 쇠창살 문에 달라붙어 여기저기 기어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생각난 것은 어머니가 떠닐 때 찾았던 것이 바로 그 거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가 쓴 글이 “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였다.     


9.5 목요일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자신의 밤을 헤쳐나갔던 것이다.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준다. 어머니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면 나 역시 죽음으로 치닫는다. 


10.23 수요일

어머니가 과자를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는 내가 과자를 빼앗아 갈까 봐 과자 봉지를 손가락으로 힘 있게 움켜쥐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로 뒤바뀐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난 두렵다. 


12.1  일요일

내 인생의 처음과 끝, 삶과 죽음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있는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 외엔 아무것도 없다.      


12.15 일요일

전 생애란 한갓 인생의 다양한 정경이 첩첩이 포개진 하나의 축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과 생의 노래가 축적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20 목요일

글을 쓴다는 모든 행위가 어렵고 고통스러워진다. 나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청춘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생기 넘치고 아름다우며 열기로 가득 찬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본다. 하지만 오늘 나는 피골이 상접한 채 입을 벌리고 잠든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4.7 월요일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제 자리에 있었지만 생각은 멈추어버렸다.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다. 이 순간이 오리라고는 예측조차도 못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있기를 바랐다.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이야.     

어머니는 가엾은 작은 인형 같았다. 나는 레이스가 달린 하얀 잠옷을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어머니가 이 잠옷을 입고 땅속에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      


4. 12 토요일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어떤 여자는 십 개월 된 어린 딸아이를 잃어버리고서도 오후에는 미장원에 갔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를 망각해버리려는 그 심정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머니를 보러 간 수많은 일요일 중의 하나였던 그 일요일과 마지막 날인 월요일, 나는 이 두 개의 날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가 없다. 삶과 죽음은 서로 분리된 채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측면에 잔재해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요일과 월요일이라는 두 개의 날이 나의 나머지 인생에서 하나로 녹아들기를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늘 같은 일요일과 무언가 단절이 일어난 월요일.

우리는 늘 같은 날이 무제한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기대이거니 유예이다.     

당당하고 젊은 , 활력 넘치는 어머니는 없고 가엾은 인형 같은, 과자봉지를 탐하는 아기가 된 여자가 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 승강기가 닫힐 때마다 아기 같은 그녀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승강기 속에 남겨진 에르노는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어한다.     

치매에 걸린 이들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혹은 괘종시계처럼 반복을 좋아한다. 무언가를 쉴 새 없이 벽장 안에서 끄집어내고 쉴 새 없이 투덜거리며 다시 원래대로 정리를 한다.

간혹 온전한 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온전함이 때론 무섭고 두렵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어머니가 집을 떠나 병원으로 옮겨온 후 적은 메모다.

창살에 매달려 어디론가 기어가고 있을 거북이를 찾느라 한없이 그 집을 돌아보던 어머니의 모습을 에르노는 기억한다.     

어머니의 ‘밤’이란 무엇이기에 어머니는 ‘그 밤’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 것일까

밤은 어둠의 시간이고 고요의 시간이고 조용한 잉태의 시간이고 침묵의 시간이다. 밤은 낮의 들뜸과 혼돈이 가라앉은 시간, 또 다른 낮의 들뜸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머니는 왜 밤을 떠나지 않으려는 것일까.

치매에 걸린 이들에게 ‘밤’은 아무리 더듬어 봐도 누구인지, 무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자신은 또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억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머니가 쓴 알쏭달쏭한 메모는 삶에 대한 짧은 경구처럼 보인다.

‘나의 밤을 떠나지 않겠다.’ 선언하였던 그녀는 밤으로 걸어 들어갔을까. 온전한 어둠 속으로,

치밀한 두께의 침묵 속으로... 더 이상 내가 아니어도 되는 곳으로.     


병에 걸린 사람들, 임종을 앞둔 이들...... 간병과 문병..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어머니는 마지막을 보내셨다.

병원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으로 들어가면 늘 가라앉은 공기가 느껴졌다.

늘 같음의 반복. 고요하지만 무언가 두려운 것들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

누군가의 침대가 비어있고 새로 시트가 깔린 날은 더더욱 병실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복도에서 무언가를 끄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간병인들은 눈치 빠르게 병실 문을 닫았다.

처음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 줄 몰랐으나 방금 세상을 떠난 이를 영안실로 옮기기 위해 케리어가 이동하는 소리였다. 가려진 것들 아래...... 마지막 숨을 내쉰 누군가의 몸이 있다는 사실을..

매번 병실에서 나와 병동 로비를 벗어나면 쏟아지는 햇살과 코를 찌르는 장미향이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그녀가 지은 문구가 아니라 치매에 걸린 그녀의 어머니가 지은 제목이다. 시적이고 무언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문구.

 어머니를 문병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처럼 안도하기도 했을 죄책감. 미안함과 어떤 의무감. 어서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의 혼돈. 

그런 양가감정들이 있었다. 누구나 그러하였으리라..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젊지 않은 나이에 접어들었다.  바람결 하나에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세상의 모든 떨어지는 것들을 위하여.

그 마지막을 지켜주려는 이들을 위하여 오늘 나는 쓰고 있다./ 려원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지음

오랜 시간이 흐르면 이른 새벽 자판을 두드리던 나를, 나의 소리를 어느 누가 기억해줄까.

소리로 소환되는 기억을 뒤에 남겨진 누군가는

헤아려 줄 것이다.

저 멀리 숲 속에서 저마다의 북소리 들려오고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판 위에서 아버지를 소환하고

 지금은 부를 수도 없는 이름을 적고 있다. 

 P 298

4부 존재의 변주곡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죽음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은 우리가 끝없이 그 혹은 그녀를 소환하기 때문일 것이다. /려원

작가의 이전글 있어도 있지 않음과 없어도 있음 사이에서 줄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