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쇼스타코비치 왈츠, 회전목마를 타던 그 시절이...

쇼스타코비치 Shostakovich. (러시아 작곡가 1906~1975)  재즈 모음곡 2번  왈츠 (Jazz Suite No.2 Waltz)를 들을 때마다   나는 가끔 ‘인생의 회전목마’와 착각하곤 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음악이었던 ‘인생의 회전목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의 곡명이 있다면, 곡명이 필요하다면 '인생의 회전목마'라 해도 좋을 듯싶다.

경쾌함 속에 숨겨진 우수. 우울 속에 숨겨진 발랄함 같은 것... 진지한 슬픔, 가라앉은 환희.... 시간의 기억 같은 것들을 담고 있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떠올린다.

하얀 말들... 마차들... 고정되어 있어서 위아래로 수직 운동을 하는 것이 전부인 놀이 기구다.

아이가 어릴 때 아이를 안고 마차 안에 타는 최초의 놀이 기구, 아기가 자라면 높이가 낮은말에. 더 자라면 더 크고 높은 말의 등에 올라타던 기억... 어느 순간 엄마는 회전목마 밖으로 나와 아이를 찍는다. 아이는 손을 흔들며 돌고 돈다. 아이의 분홍 원피스가 펄럭이고 긴 머리카락이 날린다. 한 바퀴 돌아오면 아이는 엄마를 확인하고 또 엄마는 아이를 확인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놀이공원의 더 짜릿하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로 옮겨간다. 회전목마 근처에는 가지도 않는다. 아이가 점점 더 짜릿한 모험거리를 찾아 달려갈 때 서서히 낡아가는 엄마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고 회전목마 앞에 서있다.

  
병아리 같은 한 무리 아이들이 지극히 단조롭고 시시한 회전목마를 타기 위해 기다린다. 저 아이들 같을 때가 있었지...   유년 시절... 놀이공원이나 테마 파크의 개념이 없을 시절... 최고의 유희는 회전목마를 타는 정도였다. 돌고 도는 반복... 하얀 말과 갈색말과 검정말.. 예쁘게 잘 치장된 플라스틱 말들... 갈기가 휘날리지도 않았고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말은 그저 회전판의 속도에 따라 위와 아래로 단조로운 움직임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말 위의 나는 말을 타고 달리는 듯한 착각을 한다. 타고 싶은 말을 미리 점찍어 두고 힘껏 달려가지만 누군가의 팔이 먼저 말의 목을 끌어안을 때 또 다른 말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기억이 난다.

회전목마를 타고 어디로든 멀리멀리 가고픈 소녀였던 때가 있었다. 가능성.. 그때 세상의 하늘은 온통 가능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 아이도 그러했으리라..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 희열에 찬... 아이에게 어느 순간  회전목마는 시시한 놀이기구가 되었다.

아이는 스릴 넘치는 바이킹을 탔고 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찾아 헤맨다.

세상이라는 곳에서... 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찾아 헤매는 아이들은 날마다 자란다. 

아이들의 이름은 청소년이었다가 청년이었다가.... 통틀어 어느 순간  어른이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아이는 회전목마 같은 단조로움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폭설이 쏟아지는 날. 만삭의 배로 운전을 해서 겨우 대학원 수업 시간에 맞춰 도착하던 날, 엄마인 나 역시 단조로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세상의 스릴을 찾아 나섰던 것이 아닐까...

젊음이란 것은 단조로움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위와 아래로 움직이는 그 단조로움을 받아들이기에 생은 너무 질식할 거 같다고...

수화기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가능성과 기회를 찾는 일은 늘 안정적인 속도를 버리는 일이기도 하니까..   

안전과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오래전 나도 그러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목구멍에 밥을 채우는 것만으로는 허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낮과 밤이 있었으니까...

일정한 속도로 돌고 도는 회전목마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날도 있었을 테니까..


쇼스타코비피치의 왈츠 2번을 들을 때마다 또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무기력한 주인공이 찻집에 가서 앉아있는 장면이다.

아내에게 사육된 남자.... 아니 어쩌면 아내에게 기생하는 남자.

그가 외출을 통해 유일하게 가서 앉아있는 카페... 그때 그 시절 경성의 카페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있다면 아마도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아니었을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스산해지곤 한다.

빙빙 돌던 말들의 움직임과 가능성으로 몸부림치며 다가오던 시간들과 휘날리던 아이의 머리카락과.... 빛나고 아름답다고만 여겨지던 그 봄날의 햇살이 가슴에 와서 박히기 때문일까.


오늘 비 내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듣는다.

인생의 회전목마를 탄다...  돌고 도는 변주, 가능성과 기회와 후회와 열정, 아픔과 결핍이 뒤섞인... 그 아름다운 말의 등 위에 오래전 유년의 나를 앉혀본다./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선정 도서     

우리는 자주 오해받는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봄마다 껍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나무와 같다.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젊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 니체

작가의 이전글 책을 읽는 일은 영원히 지속되는 광란의 축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