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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와 루루의 아들, 세로의 탈출

얼룩말이 도로를 달린다... 위험한 신선함, 자유의지의 실현?

세로... 

이름은 세로였다.

검은 줄과 흰 줄이 뒤섞인 얼룩말. 4살. 350kg 수컷. 가루와 루루의 아들

주소 : 어린이 대공원 내 얼룩말 우리

사건의 개요 : 부모의 죽음에 대한 충격, 외로움으로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 3시간 반 만에 생포


어린이 대공원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한 4살 난 수컷 그랜드얼룩말 세로가 인근 지역 도로와 주택가를 돌아다니다가 동물원에서 1km 떨어진 광진구 구의동 골목길에서 3시간 만에 생포됐다.     

 세로는 어린이대공원에서 2019년에 태어났으나 2년 뒤 엄마 루루가, 2022년엔 아빠 얼룩말가루가 숨을 거둔 후 홀로 남겨진 뒤 반항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상에는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캥거루와 싸우고, 사육사들에게도 거칠게 대하는 세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도심으로 탈출한 세로는 동물원에서 1km 떨어진 광진구 구의동 골목길에서 포위됐다. 경찰과 소방당국, 공원 사육사들은 세로를 둘러싸고 안전 펜스를 설치한 뒤 총기 형태의 마취 장비 '블루건'을 이용해 일곱 차례 근육이완제를 투약했고, 쓰러진 세로는 화물차에 실려 복귀했다.

                                                                                                 -기사 내용 발췌-     

사육사는 세로의 부모가 급성으로 사망한 탓에 세로가 홀로서기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야생성이 강한 얼룩말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동물원 내실과 외실을 이동할 때도 부모를 따라다녔던 세로가 갑자기 혼자가 되면서 적응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몸무게 350kg 수컷 그랜드얼룩말 세로가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동물원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도로를 달려 탈출 3시간 만에 1Km 떨어진 구의동 골목길, 주택가 골목길을 배회하다 생포되었다.

얼룩말 세로가 아닌 가루와 루루의 아들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탈출한 사건이다. 얼룩말의 평균 수명이 25-30년이라면 4살 세로는 청소년이라 해야 할까.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에 접어든 나이다.  마취 총을 맞고 좁을 골목에서 힘없이 쓰러진 세로는 생포되어 무사히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차들이 다니는 거리를 달리는 세로, 좁은 골목길에서 배달 오토바이와 마주 보고 서있는 세로... 골목으로 달려들어오는 세로를 보고 당황하여 뒤돌아 서는 사람.... 갑자기 멈춘 차들...  


세로는 생포되었다. 결국.

생포되어 동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결말일 텐데...

도로로 뛰어들어 달리는 차에 치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지만..

생포되었다는 말에 자꾸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아마도 최일남의 소설 『노새 두 마리』가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눈이 내려 미끄러운 가파른 골목길에서  연탄배달 리어카를 끌던 노새가 달아난 뒤 아버지와 노새를 찾아 나선다. 노새는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온 밤. 나는 노새가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도로를 달리고 달려 고속도로 톨 게이트를 지나 멀리 달아나는 꿈을 꾼다.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으러 거리를 거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물원으로 향한다. 동물 우리 앞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우리 속에 갇힌 얼룩말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아버지의 얼굴이 얼룩말처럼 보였다. 귀와 벌름거리는 코와....     


동물원을 나왔을 때 이미 거리는 밤이었다. 이번엔 집 쪽으로 걸었다. 그럴 수밖에 우리는 더 갈 데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동네가 저만치 보였을 때 아버지는 바로 눈앞에 있는 대폿집에서 발을 멈추었다. 힐끗 나를 돌아보고 나서 다짜고짜 나를 술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런 일도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술집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왁왁 떠들어 대고 있었다. 돼지고기를 굽는 냄새, 찌개 냄새, 김치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으나 이내 시선을 거두고 자기들의 얘기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그 냄새들을 힘껏 마셨다. 쓰러질 것 같았다. 아버지는 소주 한 병과 안주를 시키더니 안주는 내 쪽으로 밀어주고 술만 거푸 마셔 댔다. 아버지는 술이 약한 편이어서 저러다가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 고만 드세요. 몸에 해로워요.” 

“으응.”

대답하면서도 아버지는 술잔을 놓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안주를 계속 주워 먹었으므로 어느 정도 시장기를 면한 나는 비로소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제부터 내가 노새다. 이제부터 내가 노새가 되어야지 별수 있니? 그놈이 도망쳤으니까 이제 내가 노새가 되는 거지.”

기분 좋게 취한 듯한 아버지는 놀라는 나를 보고 히힝 한번 웃었다. 나는 어쩐지 그런 아버지가 무섭지만은 않았다. 그러면 형들이나 나는 노새 새끼고, 어머니는 암노새고, 할머니는 어미 노새가 되는 것일까? 나도 아버지를 따라 히히힝 웃었다. 어른들은 이래서 술집에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안주만 집어 먹었는데도 술 취한 사람처럼 턱없이 즐거웠다. 노새 가족― 노새 가족은 우리 말고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아버지와 내가 집에 당도했을 때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우리를 본 어머니가 허둥지둥 달려 나와 매달렸다.

“이걸 어쩌우, 글쎄 경찰서에서 당신을 오래요. 그놈의 노새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가게 물건들을 박살을 냈대요. 이걸 어쩌지.”

“노새는 찾았대?”

“찾거나 그러면 괜찮게요? 노새는 간데온데없고 사람들만 다치고 하니까, 누구네 노새가 그랬는지 수소문 끝에 우리 집으로 순경이 찾아왔지 뭐유.”

오늘 낮에 지서에서 나온 사람이 우리 노새가 튀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많은 피해를 입었으니 도로 무슨 법이라나 하는 법으로 아버지를 잡아넣어야겠다고 이르고 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술이 확 깨는 듯 그 자리에 선 채 한동안 눈만 데룩데룩 굴리고 서 있더니 힝 하고 코를 풀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스적스적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아버지’ 하고 뒤를 따랐으나 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어두운 골목길을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또 한 마리의 노새가 집을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무엇인가가 뒤통수를 때리는 것을 느꼈다. 아, 우리 같은 노새는 어차피 이렇게 비행기가 붕붕거리고, 헬리콥터가 앵앵거리고, 자동차가 빵빵거리고, 자전거가 쌩쌩거리는 대처에서는 발붙이기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남편이 택시 운전사인 칠수 어머니가 하던 말,

“최소한도 자동차는 굴려야지 지금이 어느 땐데 노새를 부려.”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동안이고 나는 금방 아버지를 쫓았다. 또 한 마리의 노새를 찾아 캄캄한 골목길을 마구 뛰었다.

--최일남 <노새 두 마리> 발췌


최일남의 『노새 두 마리』는 산업화로 인한 소외를 ‘노새’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연탄 리어카를 끌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노새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려는 아버지를 상징한다. 또한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노새’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 도시화로 인해 소시민들의 고달픔과 소외감을 더욱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결국 한 마리 노새는 이미 달아나서 돌아오지 않고 스스로 노새가 되겠다고 자처한 노새 한 마리도 비척비척 어두운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나는 또 한 마리 노새를 찾아 캄캄한 골목길을 마구 달렸다.   


얼룩말은 무리 지어 다닐 때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가 뒤엉켜 서로를 보호한다.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인지, 검은 바탕에 흰색 줄무늬인지 논란이 있었는데 검은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결론지었다. 검은 줄과 흰색이 반복되어 있을 때 색의 교란으로 체체파리가 달라붙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체온 조절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림 속 검은 줄무늬와 흰 줄무늬의 얼룩말들, 무늬의 독특함으로 종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사람의 눈에는 모두가 세로줄의 '세로'처럼 보인다. 외롭지 않은 세로가 사진 속 어디에 있다.

인간의 품이 아닌 얼룩말의 품에서.... 온기를 느끼는 세로가...


생포되지 말고... (위험한 상상이지만) 노새 두 마리에 등장하는 노새처럼 도로를 달리고 달려서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 어딘지 자유로운 곳으로 가버렸으면... 길 잃은 동물들이 사는 자유로운 어딘가가 존재한다면 그곳으로...     

동물원에 갇힌 세로가 아닌 무리 지어 다니는 얼룩말들의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면..

그곳에 달콤한 당근도, 치료사도 사육사도 없다 해도..

세로에게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맹수에게 잡아먹힐 위험과 굶주림, 상처와 죽음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해도.

외로울 때 살을 비빌 누군가가 늘 곁에 있다면 바로 그곳이 세로의 천국이다.

거대한 검은 줄과 흰 줄의 행렬 속 세로는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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