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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탄 앞에서는 갈탄이 되고 육반 앞에선 육반이 되는 것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 자네 뭐 하는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갈탄 앞에서는 갈탄이 갓 쪄낸 육반 앞에서는 육반이 되어야 해요.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 짓도 못하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조차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조르바 자네 이 순간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그리스인 조르바』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날 항구에서 크레타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기 직전인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장의 눈에 비친 조르바의 모습은 냉소적이면서 불길같이 섬뜩한 그의 강렬한 시선을 지닌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움푹 들어가 뺨. 광대뼈, 튼튼한 턱, 잿빛 고수머리에 밝고 예리한 눈동자를  가진 사나이     

살아있는 가슴과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  곡괭이와 산투르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손을 지닌 남자, 녹로를 돌리는데 손이 자꾸 거치적 거린다는 이유로 손도끼를 들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남자 그가 조르바였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화자인 나는 갈탄 채굴을 위해 크레타 섬에 광산을 운영한다. 크레타로 가는 배 안에서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 그와 함께 갈탄 채석장  사업을 시작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는다. 장비를 구하러 뭍으로 나간 조르바는 평소 그의 습관대로 여자의 마음을 사고 즐기기 위해 사업자금의 일부를 이용해 버린다. 조르바는 고해성사하듯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화자인 나는 분노하지만 곧 깨닫는다. 오히려 먹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논리와 이성 속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자신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p 110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나는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레를 찾아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저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 내가 선택하는 길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

내 영혼을 육신으로 채우리라. 내 육신을 영혼으로 채우리라 그리하여 저 영원한 두 적대자가 내 안에서 화해하게 만들리라....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조르바다. 그의 길이 옳은 것이다.     

  오렌지 나무가 있는 과수 집 여자의 육감적인 몸에 마음을 빼앗겼음에도 자신의 육체를 이성으로 억누르려 애쓴다. 통제된 상태. 일체의 욕망까지도 통제된 상태를 이상적이라 여기는 그와 정반대로 조르바는 육체의 언어에 귀 기울이고 육체가 이끄는 대로 반응한다. 조르바에겐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는 미래를 소환해서 살지 않는다. 갈탄을 캘 때는 갈탄이 되고, 여자와 사랑을 나눌 때는 사랑만 생각하고, 오직 그 여자만 생각하고, 술을 마실 때는 술만 생각하고, 춤을 출 때는 춤만 생각하는 것. 조르바처럼 살아가는 것... 말하기는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춤추시겠소? 춤춥시다!”

“싫습니다.”

“싫다고요?”

“좋습니다. 그럼 나 혼자 추겠소. 두목.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시오. 받아 버리지 않게 말이오.”     

그는 펄쩍 뛰어 오두막을 뛰쳐나가 신발과 코트와 조끼를 벗고 바짓가랑이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갈탄이 시커멓게 묻어있었다. 눈의 흰자위는 번쩍거렸다.

이윽고 그는 춤에다 몸을 맡기고 손뼉을 치는가 하면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발끝으로 도는가 하묜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흡사 고무로 만든 사람 같았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한 도약을 계속했다. 마치 자연의 법칙을 이겨내고 날아가고 싶은 듯했다. 그의 늙은 몸속에 육신을 이끌고 올라 어둠 속에 유성처럼 같이 날아가버리려 용을 쓰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그 영혼은, 공중에 오래 머물 수 없어서 도로 땅에 떨어지고 마는 몸을 뒤흔들었다. 다시 사정없이 몸을 뒤흔들어 이번에는 조금 더 높이 솟구쳤지만, 그 불쌍한 육신은 도로 떨어지며 헐떡거릴 뿐이었다.

조르바를 상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은 놀라우리만치 비장했다. 소리도 더 이상 지르지 않았다. 그는 불가능을 성취하려고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육신이 그 난폭한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공중에서 수천 조각으로 찢어져 바람에 사방으로 날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p 104-105)

          

조르바는 아들 드리미트리가 죽었을 때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

춤을 추지 않았으면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아내의 죽음 앞에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 장자 생각이 났다.

슬픔을 초월하는 행위였을까.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몸부림이었을까...

애도의 방식일 것이다. 어쨌든 가장 진솔한 애도의 방식일 것이다. 

극단의 슬픔의 강을 건너기 위한...


P108

 내 속에는 소리치는 악마가 한 마리 들어있어서 나는 그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면 이놈이 소리칩니다.‘춤춰! “

그러면 나는 춤을 춥니다. 칼키디체에서 우리 꼬마 드미트리가 죽었을 때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죠. 친척들이 달려들어 시체 앞에서 춤추는 나를 말렸어요. 조르바가 돌아버렸다고요.

하지만 그때 춤을 추지 않았다면 정말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사실 나는 조르바처럼 살지 못한다 조르바보다는 사장의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다. 실수를 한다거나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저지른다거나 그런 것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사회가 정한 틀이 아니라 내가 정한 틀에 사로잡혀 있고 그 틀을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잠이 들면서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눈을 뜨면 그것은 다음 날이었던 것이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있다. 미래이던 것이 현재가 되어있는 것이다.     

  과거 돌아보기와 미래를 끌어당겨 쓰기는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과거엔 좋았지. 과거에는 잘 나갔지. 미래의 나는 어떻게 될까....  때론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현재뿐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조르바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글만 쓰고 책을 볼 때는 책만 보는 것. 사랑을 할 때는 사랑만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검은 옷의 암말처럼 풍만하고 육감적인 과부 소멜리나를 죽인 마을 사람들. 그녀를 얻지 못한 절망감에 자살한 파블로에 대한 응징. 사람들은 오렌지 꽃물 냄새와 올리브 잎사귀 냄새가 풍기는 그녀를 응징한다. 기어서라도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그녀를 마을 사람들은 거대한 바리케이드처럼 막아선다. 그녀가 움직이는 곳마다 사람들이 만든 바리케이드도 따라 움직인다. 날렵하게 도망치려는 그녀를 늙은 마블란도니가 덮쳐 순식간에 목을 따서 전리품처럼 교회 문패에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앞에 나와 조르바는 손을 쓸 수조차 없었다.     

  광기, 악의 구체화. 피가 끓은 남자들은 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음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젊은 처녀들과 늙은 아낙네들은 마을 남자들의 관심이 온통 과부에게 쏠린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과부의 죽음은 그녀를 사랑하다 죽은 파블로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국은 그들 안의 또 다른 욕망이 빚어낸 죽음이었다.  과수댁  소멜리나의 죽음 앞에 사장인 나는 자책을 느낀다.

모든 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려버리려는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서...


p238

생각에 잠긴 채 길을 따라 내려갔다 나는 그들이 경탄스러웠다

인간적 고통에 너무도 가까이 뜨겁게 얽혀있는 사람들, 오르탕스 부인이 그랬고 과부가 그랬고 슬픔을 씻으려고 바다에 몸을 던진 창백한 파블 리가 그랬고 양의 목을 따듯이 과부의 목을 따라고 고함지르던 델리카테리나가 그랬다.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비겁하게 모든 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고서 할 일을 다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소멜리아의 죽음으로 그는 ‘붓다’라는 최후의 인간을 자신의 몸으로부터 내몰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 ‘조르바’가 필요했다. 간절하게... 소멜리아를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달려들던 조르바의 영혼을. 그 영혼을 품은 육신을... 운명이라는 교묘함으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운명이란 놈을 끄집어내어 내팽개치고 마는 그 무모한 진심을...     


p197

붓다는 최후의 인간이었다. 반면 우리는 겨우 시작에 서있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아직 채 살아보지도 못했다, 이 섬약한 늙은이는 숨을 헐떡이면서 우리에게 너무 일찍 찾아와 버렸다, 우리는 되도록 빨리 그를 내몰아야 한다.     

          

친구 카라얀니스는 편지에서 “나는 내 운명을 데려왔네. 운명이 나를 데려온 것은 아니네.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 대로만 행동하네. 나는 내 운명을 이곳으로 데려와 노예처럼 일해 왔고 지금도 노예처럼 일하고 있네.”라고 적었다. 운명이 나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내가 운명을 데려온 것이라고...

왜 그런 역발상적인 생각을 나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일까?

사실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잡아끈다고 해도 그것을 붙잡는 이는 분명 나의 의지와 나의 손이다. 그러하다면 내가 운명을 내 삶에 끌어들인 셈이다. 그 어떤 사소한 선택도 결국 내가 운명을 끌어들인 것이라는 의미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낸 나무 조각도 성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믿음에 대한 이보다 더 명쾌한 말이 또 있을까?     


  조르바는 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알아가는 남자다. 그는 세상을 몸으로 읽고 받아들인다. 세상은 모두가 그가 머물 항구이며 그가 떠날 항구다. 반면 나는 세상을 펜 끝으로 해석한다. 살다 보면 세상은 이성만으로 되는 곳은 아니었다. 몸을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곳에서 펜 끝을 보며 저울질하는 사이 세상은 자기만의 속도로 흘러가버렸다. 

p 428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보다 좀 더 길 거예요.

이리저리 다니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을 자르지 않으면..........     

p17

왜요?

당신은 왜요? 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당신은 저울 한 벌을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확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요.     


조르바는 늘 "왜?"를 달고 사는 사장에게 묻는다. 당신의 자유롭지 않음에 대해... 몸을 묶고 있는 긴 사슬애 대해서...


p282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그러면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는 겁니다. 어릴 적 나는 버찌에 미쳐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한꺼번에 많이 살 수 없어서 조금 사서 먹으면 점점 더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버찌 생각만 났어요.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에 화가 나 밤중에 일어나 아버지의 주머니를 뒤졌지요.

은화 한 닢. 다음 날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를 한 소쿠리 사서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어요.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구역질이 나고 토했어요.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나는 구원을 받은 겁니다. 나는 내 정열에 휘둘리지 않아요.  조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요. 그걸 너무 좋아한다 해도 목젖까지 퍼넣고 토해버렸어요. 그때부터 그것 때문에 괴로울 일이 없어요."

     

  조르바는 육체가 원하는 욕망을 욕망으로 채운다. 먹고 싶어 눈앞에 아른거리는 버찌 때문에 잠을 잘 수조차 없으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버찌를 마구 먹고 그 욕망으로부터 벗어난다.  나의 욕망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돌아보면 나는 제어된 이성 안에 욕망을 누르고 산다. 이성이 꼭 진리는 아닌데도 마치 그것이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어쩌면 그 또한 위선이 아닐까?          

조르바는  가장 위험한 경사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버리는 남자다. 인생의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분별 있는 사람은 브레이크를 쓰지만 조르바는 브레이크를 버리고,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국에 대해서도 술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모두 다 토해버릴 정도로 목구멍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그것으로부터 온전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p 52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두목.

육체에 먹을 것 좀 줘요. 육체란 짐 싣는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두목을 팽개치고 말 거요. 우리는 영혼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다니는 육체라는 이름의 짐승을 실컷 먹여야 해요."

  

조르바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영혼에도 육체가 있고 육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영혼은 육체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을 지고 다니는 육체가 영혼을 꺼내어 내던져버릴지도 모른다도.. 영혼과 육체.... 생각해 보면 내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 내 영혼 또한 피폐했다. 

영혼의 아름다운이란 영혼을 지고 다니는 육신의 건강함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p53 

아흔 넘긴 할아버지가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다.

“아니 할아버지, 아몬드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다.”

그래서 내가 대꾸했죠

“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죽음이 존재하지 않을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건 어쩌면 똑같은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과 금방 죽을 사람처럼 사는 것.

죽음이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자살이 아닌 다음에야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는 죽음을 위해 오늘. 지금을  제대로... 살아야 한다..

죽음을 죽음답게 맞으려면 삶을 삶답게 살아야 하는 것... 오늘을 오늘답게... 지금은 지금답게 살아야 하는 것.


p113

"두목, 나는 벌써 대가리 꼭대기가 하얗게 세어 있고 이빨도 흔들거리죠. 그래서 미적거릴 시간이 없어요. 당신은 젊으니까 참고 기다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감히 선언합니다. 나이 먹을수록 나는 더 거칠게 살 겁니다. "

"나이 먹을수록 나는 더 거칠게 살 겁니다."

이 말이 가슴을 쳤다. 

나이 먹을수록 거칠게... 미적거릴 시간이 없으니까. 무한정 주어지는 것들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좀 더 거칠고 좀 더 맹렬해져야 한다.


P 414

 나는 일어섰다.

“조르바, 이리 와 보세요, 춤 좀 가르쳐 주세요.”

조르바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춤이라고요? 두목? 정말 춤이라고 했소. 야호! 이리 오쇼!      

“조르바 시작해 봐요! 내 인생은 바뀌었어요! 자 한 번 달려봅시다.     

“처음엔 제임비키코를 가르쳐드리지. 이건 아주 야성적인 군인의 춤이지요. 게릴라 노릇 할 때, 출전하기 전에는 이 춤을 추곤 했지요.”

그는 구두와 자주색 양말을 벗었다. 그래도 더운지 그것마저 벗어부쳤다. 그러고는 나를 끌어당겼다.

“두목, 내 발 잘 봐요. 잘 봐요!”

그는 발을 내뻗으며 발가락만으로 땅을 살짝 건드리더니 그다음 발을 세웠다. 두 발이 맹렬하게 헝클어지자 땅바닥에서는 북소리가 났다.

그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해봐요! 자, 같이!”

우리는 함께 춤을 추었다. 조르바는 내게 춤을 가르쳐 주고 엄숙하고 끈기 있게, 그리고 부드럽게 틀린 부분을 고쳐 주었다. 나는 차츰 대담해졌다. 내 가슴은 새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브라보! 아주 잘하시는데!” 

조르바는 박자를 맞추느라고 손뼉을 치며 외쳤다. “ 브라보. 젊은이!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 버려! 상품, 이익 좋아하시네! 광산, 인부, 수도원 좋아하시네! 젊은 양반, 당신이 춤도 출 줄 알고 내 언어를 배웠으니 이제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그는 맨발로 자갈발을 짓이기며 손뼉을 쳤다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드리지! 자 갑시다.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채 온몸을 던져 위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흡사 반란을 일으킨 대천사처럼 보였다. 그는 하늘에다 대고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이 날 어쩔 수 있다는 것이요? 죽이기밖에 더 하겠소? 그래요. 죽여 요상관 않을 테니까. 나는 분풀이도 실컷 했고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했고 춤도 실컷 추었으니까...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요.!”     

조르바가 춤추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인간이 자신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 펼치는 환상적인 몸부림이 처음으로 이해되었다. 나는 조르바의 끈기와 그날램, 긍지에 찬 모습에 감탄했다. 그의 맹렬한 스텝은 모래 위에다 인간의 신들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광산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조르바와의 결혼을 통해 아기를 원했던 부불리나도 과수 소멜리아도 .... 수도원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 순간 사장인 나는 조르바에게 춤을 청한다. 인간이 자신의 무게를 이기기 위한 거룩하고 신성한 몸부림. 모든 것이 폐허가 된 대지 위에서 사장은 나는 비로소 모든 것을 얻었다. 그의 이성에는 없었던 것들을, 있었으나 결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비로소 본다. 참다운  진리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조르바라는 학교를 통해서 생겨난 것이다.


P 416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마치 어렵고 어두운 필연의 미로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이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 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 -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온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는다.

외적으로는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 나는 강력하고도 맹목적인 필연이라는 것에 맞설 때 인간이 어떤 태도와 어조를 취해야 하는지를 감득했다.          


  돌아보면 삶에서 내가 만들어낸 궤적 아닌 것이 없다. 살아가면서 무언가 결여되어 간다고 느낄 때, 원하지 않는 무기력이 몰려올 때 조르바를 읽는다. 그러면 조르바는 내가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 조르바는 온몸으로 말한다. 이성 따위는 집어던지라고... 몸을 감싸고 있는 편견의 두꺼운 외투와 늘 들고 다니는 저울을 던져버리라고... "왜"라고 따져 묻는 유치한 물음 따위도 던져버리라고...

  

  요즘 시선으로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읽으면 여성 비하적 표현이 많고 성적인 묘사가 많아 부적절하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학작품이 도덕적이고 순결하고 거룩한 것이어야 한다면 문학작품을 읽어야 할 의미가 없다. 모든 독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조르바는 일체의 사슬을 끊어버린 사람이다. 여자를 비하의 대상이 아닌 온 마음으로 존중한다.  조르바가 거쳐간 수많은 여자들에게 조르바는 진심이 아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생각이 많다는 것을 신중하다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실천을 겸비한 생각이 아니라 걱정에 대한 생각, 불안감에 대한 생각, 주저함에 대한 생각이라면 그 생각들은 자신의 삶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펜 끝이 아닌 온몸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조르바.  대지의 탯줄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조르바는 몸은 정직하고 몸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일! 오직 그 순간만을 생각하는 일! 인생에 대한 조르바식 조언이다.          

 먹고 싶은 버찌가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버찌를 먹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 없다면     

구역질 날 정도로 버찌를 먹어서 두 번 다시 버찌에 대한 욕망을 품게 하지 말하는 그의 말은......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역설적 의미로 다가온다....     

버찌를 탐하는 자는 버찌에 대해 구역질이 느껴질 정도로 먹어라... 비로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테니.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려원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지음 /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선정도서

우리가 춤을 출 때 그것은 기도의 일부이다.

춤을 추고 있지만 동시에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놀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기도의 일부이다. 영혼, 육체, 마음이 늘 한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분리될 수 없다.

 <푸레블로족>


p44-45

무엇으로도 자신을 은폐시킬 수 없는 곳, 가장 절박한 곳, 바로 그곳에서 가장 동적인 춤을 춘다. 온전히 자기 다운 춤, 온전히 자기답기 때문에 충만하면서도 불안한 춤. 자신을 설명할 그 어떤 장치도 도구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춤은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조금만 여유를 부려도 조금만 느슨해져도 손을 놓쳐버릴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다시 손을 내밀어 자신의 생을 붙잡는 것. 생의 수레바퀴에 자신을 단단히 붙들어 매어두는 것...

그리하여 다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기만의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것. 저마다의 삶은 위태로운 그러나 아름다운 춤이다.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제1부 존재의 의미 찾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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