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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얼마나 느린가,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왔는데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머물러있네     


손에 손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보자

우리의 팔로 이어진 다리 아래로

강물은 하염없는 시선에

지쳐서 흘러가는데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머물러있네     


사랑은 떠나가네 저 흐르는 물처럼

사랑은 떠나가네

인생은 얼마나 느린가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머물러 있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주 두 주가 지나가는데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머물러있네

                             - 기욤 알포리네르( 1880-1918)     

                                 오생근 『시의 힘으로  나는 다시 시작한다』에서 발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

내 마음 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에 머문다     


손에 손 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의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한 눈길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에 머문다     


사랑은 지나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이처럼 인생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에 머문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흘러간 시간도

옛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에 머문다     

                                    - 기욤 알포리네르  / 한국경제신문 수록

                                             


아폴리네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시는 1912년 2월 <레 수와레 드 파리> 창간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이별이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미라보다리」는 두 사람의 사랑을 환기시키는 시이면서 이별을 예감하는 연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 나오는 ‘희망’이란 단어는 프랑스 원문에서 대문자로  적혀있다. 

미라보 다리는 연녹색의 몸체를 지닌 생각보다 수수한 철제 구조물이라 한다. 기욤 아폴리네르도 이 다리에 멈춰서 이 시를 구상했을 것이다. 연녹색 다리 위에서 센 강의 물결을 바라보는 시인... 

그의 눈에 비친 물결은 사랑과 시간을 싣고 흘러간다. 자신만은 센강의 물결과 함께 흘러가지 못하고 여기 다리 위에 머문다.      


마리 로랑생과의 이별과 관련된 시라는 점에서 떠나가는 사랑에 대한 회한이 담겨있는 시인 것은 분명한데  번역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구절이 있다.


"사랑은 떠나가네 저 흐르는 물처럼

사랑은 떠나가네

인생은 얼마나 느린가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와           


"사랑은 지나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이처럼 인생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평론가 오생근은 『시의 힘으로 다시 시작한다』에 번역한 「미라보 다리」에서 떠나가는 사랑에 비하면, 흘러가는 사랑에 비하면 인생은 얼마나 느린 것인가라고 묻고 있으며 그래도 희망이란 얼마나 격렬한 것인가를 말한다.

한국경제신문에 소개된 「미라보 다리」에서는 흐르는 물처럼 사랑은 떠나가고 그 사랑에 비하면 인생이란 얼마나 느린가를 이야기한다. 다만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라고 묻는다.

처절한 이별의 아픔 속에서 희망을 생각하는 것이 난폭하다는 의미로 내게는 읽힌다. 

희망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 격렬한 것이기도 하고 난폭한 것이기도 하다.

희망조차 꿈꿀 수 없는 자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난폭한 일이지만  희망조차 꿈꿀 수 없는 자의 가슴에 아주 작은 희망이 자리를 잡는 날이 오면 그것은 격렬한 진동을 일으킬 것이다.     


시에서 4번이나 반복되는 부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머물러있네"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에 머문다 " 부분도 역시 번역의 미세한 차이 때문인지 살짝 다른 느낌으로 읽힌다

밤이여 어서 오고 종이 울리기를 바라지만 여기에 머물 수밖에 없는 시적화자의 마음을 드러낸다.

세월은 가도 머물러있는 나,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에 머문다는 것....

같은 느낌인 듯하면서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어찌 되건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은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  이 부분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사랑은 떠나가네

인생은 얼마나 느린가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이다.     

떠나는 사랑에 비해 나의 인생은 느린 것만 같은데 내 가슴속에는 여전히 격렬한 희망이 남아있다는 부분이다.

인생이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이에 이르렀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멈출 수도 유턴도 할 수 없는 인생이란 자동차에 올라타 있다.

미라보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그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쓸쓸한 마음

어서 밤이 오길 바라고 종이 울리길 바라며... 난폭한 희망이건 격렬한 희망이건 품을 수 있던 그 시간이 좋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고서야 뒤늦게 알아차린다

미라로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1912년 2월 기욤 아폴리네르는 이별의 아픔을 다리 위에서 로 승화시켰는데..... 아폴리네르도 마리 로랑생도 떠나고 없어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그들의 사랑을 반추한다.

시의 힘이란 이토록 강렬하고 무서운 것이다.     

아침에 달력을 넘기다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벌써 한 해의 1/4가 지난 것이다.

겨울과 봄의 초입을 지나... 4월이라니.... 엘리엇의 황무지가 생각나는 바로 그 4월인 것이다./려원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지음/ 2022 아르코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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