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공기인형/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생명은 자기 안에 결여를 품고 있어서 누군가가 그 결여를 채워주어야 한다

공기인형 : Air Doll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생명은 자기 안에 결여를 품고 있어서 누군가가 그 결여를 채워주어야 한다.

암술과 수술만으로는 부족해서.. 벌과 나비와 바람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은 타인들의 집합소다. 서로가 서로의 결여를 채워주어야 한다

그런데 결여를 채워준다는 걸 알지도 못하고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성욕 해소용 공기인형 러블리 걸 캔디, 5980엔 싸구려 구형 모델. 식당 종업원 히데오는 그 공기인형을 '노조미'라 부른다. 히데오는 성욕해소 용도 이상으로 애정을 갖고 진짜 사람처럼 노조미를 대해주는데 어느 날 노조미에게 생명과 마음이 생겨버린다. 마음이 생겨버린 노조미는 비디오 가게 직원 준이치를 사랑하게 되고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상에는 텅 빈 사람이 많다는 것... 공기 인형이 아닐지라도... 마음이 비어버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이 생긴다는 건 아름답고 따뜻한 것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점점 깨달아간다. 

          

히데오가 공기인형 노조미를 대하는 모습은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을 연상시킨다.

여성에게는 결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은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상아를 빚어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했는데 살아 있는 여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을 실제 연인처럼 사랑했다.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를 선사하기도 하고 예쁜 꽃을 따다가 가슴에 한 아름 안겨주기도 한다. 아름다운 옷, 반짝이는 반지, 형형색색의 목걸이로 꾸며준다. 

피그말리온의 고향 키프로스 섬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성지였는데 이곳에서는 해마다 아프로디테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사람들은 여신의 신전에 온갖 제물을 바쳤고 제단에 향불을 피우며 자신의 소원을 빈다. 피그말리온도 정성으로 마련한 제물을 제단에 바치고 여신께 기도한다.

“여신이여, 바라건대 제 아내가 되게 하소서…….”     

그는 ‘저 상아 여인을…….’이라고 말하려다 차마 그러지 못하고 ‘저 상아상과 같은 여인을…….’이라며 기도를 맺는다. 제사를 흠향하러 왔던 아프로디테는 기도하는 피그말리온의 속마음을  속내를 알아차리고 상아조각상에 생명이 깃들게 해 주었다. 아프로디테의 축복 속에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여인 갈라테이아(Galateia)와 부부로 맺어진다.     


물론 히데오가 노조미를 대하는 방식은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을 대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애초에 노조미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이 아니라 5980엔짜리 구형 공기인형이었으니까.. 애인 한 명 없이 나이를 먹어가는 식당 종업원 히데오는 나이 들어가는 고통을 노조미에게 밤마다 이야기한다. 히데오에게 노조미는 성욕해소용 인형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속마음을 들어줄 대상인 셈이다. 


노조미는 실제 공기인형이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실제 사람이면서 속은 텅 빈 공기인형 같은 삶을 살아간다. 실연의 아픔을 겪는 준이치. 히키코모리처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젊은 여인. 중년의 나이에도 결혼을 생각조차 할 수 없어 공기인형과 살아가는 히데오.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 비디오 가게 사장, 비디오 가게 주변을 맴도는 남자, 직장에서 소외당하는 여자 등..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공기인형들에 대한 이야기다. 숨을 잃어버린... 공기인형들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거리에 넘치는 수많은 공기인형들에 대해서... 가슴이 비어버린 사람들....


노조미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놓았다

           


나이 먹는다는 게 뭐지?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거지.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노조미의 대화..     

생명이란 

그러니까

그러니까 생명이란

...

하루살이는 말이지 알을 낳고 하루 이틀 안에 죽어 몸은 비어있고 알이 가득 차 있지

생각해 보면 알을 낳으려고 태어난 거야.

저도 텅 비어있어요.

나도 텅 비어있지.

또 있을까요?

요즘은 다 그렇지. 비어있어. 자네만 그런 게 아니야    

  


세상이란 곳의 짜임이 허술한 것은 왜일까?

당신도 한 때는 나를 돕는 바람이었을지 모릅니다.... 노조미는 날마다 마음 안에 새로운 것들을 새겨간다.   


노조미는 가게에서 넘어져 바람이 빠져나가고...  준이치가 불어넣어 준 숨으로 다시 살아가게 된다.

준이치의 숨이 자신의 몸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공기를 불어넣는 펌프는 이제 불필요하다.

기쁜 마음으로 공기를 넣는 펌프를 버리고 이제 자신도 준이치처럼 나이를 먹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젖는다. 사람의 숨이 들어간 공기인형 노조미는 행복하다     

“나 이제 말이에요. 나이를 먹어요.”     


하지만 마음이 생겨 행복한 것보다 타인의 마음을 알게 됨으로써 마음이 있다는 건 아픈 일이다.     

히데오에게 노조미는 마음이 생겨버렸다고 말한다. 히데오는 이미 새로 산 공기인형 '노조미'를 침대에 눕혀놓고 노조미의 생일 축하를 하고 있었다. 

나 마음이 생겼어? 

마음?

내 어디가 좋아? 어디냐고? 왜 말을 못 하지?

옛 애인 노조미의 대체품일 뿐인가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거지...

인형으로 다시 돌아가주면 안 되는 거야?

마음 같은 거 없는 편이 좋다는 거야?

성가시게......     


노조미는 출생의 비밀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공기인형 제작자를 찾아간다

어서 와.

다녀왔어요

왜 마음이 생겼을까요?

내가 만들었지만 그건 모르지. 처음에 만들었을 땐 다 똑같았는데 다시 돌아왔을 땐 모두 달라졌지. 그렇다면 애들 한테도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애들은 어떻게 되나요?

매년 봄에 한 번씩 모아서 버려. 타지 않는 쓰레기거든

인간은 죽으면 타는 쓰레기가 되는데 공기인형은 타지 않는 쓰레기가 되지. 하나 물어봐도 돼?

내가 본 세상은 슬프기만 했어?     

아뇨 그렇지 않아요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요

나야말로 고마워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모두 똑같은 공기인형들이 버려져 다시 수거되어 돌아올 때는 전혀 다른 인형처럼 되어있다고 한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은가... 저마다의 삶이 그려낸 흔적들이 새겨진 사람의 몸과 마음.


공기인형 제작자를 만나고 돌아온 뒤 노조미는 준이치를 찾아간다. 

난 누군가의 대체품이어도 괜찮아

넌 누군가의 대체품이 아니야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 수 있어

정말? 뭘 어떻게 해도?

응 뭐든 괜찮아.

그래 너라면... 너에게 부탁할 게 있어.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뭔데?

공기를 배에서 빼보고 싶어

.....

내가 숨을 불어넣어 줄게

알았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별의 아픔으로 마음이 비어버린 준이치는 몸 안의 공기(생명)를 다 빼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조력자살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노조미는 준이치의 공기를 빼는 일을 도와주고... 자신처럼 숨을 다시 불어넣으면 부풀어 오를 것이라 생각한다.  

의식이 없는 준이치에게 "숨을 불어넣어 줄게. 당신이 내게 해준 것처럼.."

하지만  숨은 준이치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타는 쓰레기.. 사람은 타는 쓰레기이고... 공기인형은 타지 않는 쓰레기라는 말을 떠올리고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준이치를 넣어두고 떠난다.

 다음날 사람들은 “글쎄 시체가 쓰레기 봉지에 들어있었대”라는 말을 나누고 있었다.


이제 노조미는 마음이 생겨버린 사실이 행복하지 않다. 너무 많은 슬픔을 알아버린 것.

투명한 병들을 하나하나 진열해 두고.. 버려진 사과들로 장식을 하고 쓰레기 장에 누워있다.

타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 몸 안에 들어있는 준이치의 숨이 하나둘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두고..

눈앞에  민들레가 보인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와 "노조미!! 생일 축하해!"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노조미는 생일 축하 촛불을 불 듯 후~~~~ 민들레 홀씨를 불어주었다.

그 민들레 홀씨는 날아서 세상의 텅 빈 가슴으로 날아가 싹을 틔웠다.

할아버지 곁을 지나.. 웅크린 여자에게도, 인형 공장 제작자에게도... 비디오 가게 사장에게도..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사과와 투명 유리병들 사이, 공기인형 노조미는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그렇게 누워있었다.


공기인형.... 공기인형이란 말을 들으면 어딘지 낭만적인 느낌이 들지만 리얼 돌( Real Doll)이란 명칭을 들으면 어딘지 서늘한 기분이 든다.. 진짜 인형이라니? 무엇이 진짜?라는 말인지. 어떤 의미에서 진짜라는 의미인지... 

한때 리얼돌을 수입 거부하자는 움직임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코로나로 관중이 모이지 않는 야구장에 한때 사람크기의 인형들을 가져다 놓은 적도 있었다. 허수아비들처럼....

사람들은 텅 비어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강력한 말...

사람들의 마음이 텅 비어버렸다는 경고다. 

무엇을 하든 예전 같은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면... 비어 가는 것이다.


다녀올게요... 

노조미가 공기인형 제작자에게 한 말이다.

다녀올게요. 세상으로

그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가 태어났던 곳으로. 

원래는 없었던 마음을 품어버리고.. 욕구해소용 마음이 아닌 희로애락의 마음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도 돌아갈 것이다. 떠나온 곳으로.. 한국어 표현 중에 죽음을  칭하는 '돌아가셨다'는 정말 시적인 표현이다. 죽음, 죽었다가 아닌 돌아가다니... 어디로? 돌아가려면 본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리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휴머니즘이 있는 영화..

노조미는 준이치의 숨으로 가득 채운채 생을 마감했다. 행복한 죽음이라고 해야 할까...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려원/ 2022 아르코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작가의 이전글 반복에 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