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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에 대한 고찰

 당신을 던져라. 당신 바깥으로........

반복에 대한 고찰....

당신을 던져라.

당신 바깥으로...


프란시스코 고야 : 밀짚인형 The straw manikin (1791-1792)


4명의 잘 차려입은 귀부인들은 밀짚인형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생동감 넘치는 여인들의 표정과는 정반대로 밀짚 인형은 무표정이다.

고야는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어떤 이들은 가톨릭 축제 기간 중의 놀이를 그렸다고도 하고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를 전파시키려는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이라고도 한다.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유심히 늘 인형의 표정을 먼저 살핀다.

 네모난 천을 움켜쥔 여인들의 강약 조절에 따라 높게든 낮게든 던져 올려지는 밀짚인형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변할리 없다. 밀짚 인형은 뒤집어지고 다시 제 위치로 던져지고 또 뒤집어질 것이다.

네 사람 중 힘의 균형이 틀어져 네모난 천 밖으로 던져지는 날 반복의 유희는 끝이 날 것이다.  그날은 어쩌면

밀짚 인형에겐 끝없이 위로 던져지는 반복적인 형벌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시간이다.


여인들은 유희를 반복하고 밀짚 인형을 고통을 반복 중이다.

삶이란 어쩌면 익숙한 것의 반복이 아닌가. 고통이든 쾌락이든 길들여진 채로 반복하는 것. 


반복은 인간 심리와 사회에 뿌리 박혀 있다. 무의식의 기본 구조는 반복이다. 우리는 부모님의 삶을 반복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특정한 연애 패턴을 만들어내고 동일한 증상의 쳇바퀴를 굴린다.

반복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낄 때 인간은 유한성을 절감한다. 


독일 시인 파울 첼란(1920-1970) 시


Wurfscheibe, mit

vorgesichten besternt,

wirf dich

aus dir hinhaus      

원반,

예견으로 수 놓인, 

당신을 던져라

당신 바깥으로.          


반복의 유한성을 벗어나는 것, 이는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은 모종의 중심 바깥으로 우리 자신을 한 번 던져보는 것이다. 관성적이지 않은 원심력이 그려지도록 기존의 궤도로부터 이탈하여 예견 불가능한 경로로 흘러가는 원반이 새로움을 수놓도록...       / 알랭 바디우 <진리의 내재성> 읽기 중에서


파울 첼란의 시 중에서 가장 머리에 남는 문구는 이 말이었다.

당신을 던져라. 당신 바깥으로....  


고야의 밀짚 인형 그림을 보면서 왜 파울 첼란이 떠올랐을까

당신을 던지지 못하는 이들.

당신 바깥으로.  4명의 여인들은 밀짚 인형을 천 바깥으로 던지지 않는다.

반복된 유희가 끝나버릴 테니까. 4명의 여인들은 그들 스스로를 던지지 못하고 스스로의 바깥으로도 나가지 못한다. 그녀들의 마음은 네모난 천 위의 밀짚 인형에 묶여 있다.


밀짚 인형은 당연히 스스로를 던질 수 없다

던져짐을 당할 뿐. 다만 그 던져짐이 네모난 천 위가 아닌 천의 바깥이기를 바랄 뿐.

나는 나를 제대로 던져본 적이 있는가? 나의 바깥으로?

나의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눌 수 있는 온전한 바깥으로.

제대로 바깥으로 던져보지 못한 것은 던져보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늘 안과 밖의 경계.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적당히 발을 걸쳐두고 살아온 것... 익숙한 것. 반복된 것...

가장 현실적인 것 같지만 가장 고루하고 낡은 것... 


반복의 유희든 고통이든, 축제 놀이의 일부였든... 고야의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무표정한 밀짚 인형에 시선이 멈춘다. 언젠가는 멈추게 될 반복... 

 던져지지 못하는 밀짚 인형과 던지지 못하는 여인들의 모습 속에서 현대인들의 고독한 반복을 본다.

끝없이 반복을 반복하는 사람들. 익숙한 길에서 느끼는 편안함 때문일지, 늘 하던 대로의 반복이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반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반복의 유한성을 벗어나는 것, 이는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은 모종의 중심 바깥으로 우리 자신을 한 번 던져보는 것이다."

 삶 깊숙이 자리 잡은 모종의 중심 바깥으로 자신을 한 번 던져 보는 일... 늘 어려운 일/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려원/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자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중요한 건 지금 내게 주어진 그 문제들을 살라고 한다. 그러면 언젠가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정말 그러할까?

릴케는 자신의 문제에 직면해서 살았고

그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내었을까?

삶이 흐른다. 4월로 흐른다.

바람도 구름도 나무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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