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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도 웃는 게 아닌 벨루가

투명한 사각의 관에서 날마다 '죽음'을 공연한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닌          


벨루가를 생물학적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척추동물 > 포유강 > 고래목 > 외뿔 고래과 > 흰고래 속

학명 Delphinapterus leucas     


북극해에 주로 서식하는 일각돌고래과에 속하지만 일각 고래의 특성인 뿔은 없다. 막 태어났을 때는 털색이 어두운 청회색이나 검은색이지만 4~5세 정도가 되면 흰색이나 크림색으로 엷어져서 벨루가 또는 흰고래라고도 한다. 분포범위가 넓어 북극해와 그 근처 바다의 깊은 연해와 해안에서 발견된다. 어류·두족류·갑각류를 먹고사는데, 약 5~10마리 정도의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  때로는 북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고음의 휘파람 소리를 내는 울음소리가 카나리아와 비슷해 ‘바다의 카나리아’라는 별명도 있다. 주로 기름·가죽·고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사냥되며 북극지방에서는 이누이트 족의 식량이나 개의 사료로 사용된다. 깊은 곳에서 오래 잠수할 수 있으며, 100kg이 넘는 물자를 수송할 수 있다. 지능이 높아 미국과 옛 소련의 냉전기에는 양국에서 구조용, 정찰용, 수송용 등의 군사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다음 백과 요약    

 


바다서 1000m씩 잠수하는 벨루가 벨라가 10년째 7.5m짜리 수조에 갇혀있다. '벨라'는 2011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3살 때 포획되어 롯데월드아쿠아리움이 2013년에 수입했다. 벨루가 ‘벨라’ 외에 다른 두 마리는 평균 수명에 훨씬 못 미치는 나이에  패혈증으로 사망하고 현재는 '벨라'혼자 남아있다.      

어둡고 푸른 브라운관 같은 곳, 사람들은 벨루가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쉴 새 없이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는다. 벨루가는 위와 아래를 오르내리는 행동을 수없이 반복한다. 구석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 수면 위에 가만히 떠 있기도 한다.     

이를 보고 동물보호단체들은 '정형행동(스트레스로 인해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벨루가가 좁은 수조에서 사는 걸 "관과 다를 바 없다"라고 비판했다.

그들은 3~5m 크기의 벨루가, 1000m씩 잠수하는 능력을 지진 벨루가에게 7.5m 깊이 수조는 턱없이 좁으며 특히 이주하는 계절엔 야생 벨루가가 약 2000㎞를 헤엄치는데, 좁은 수조를 약 27만 번 헤엄치는 거리라고 주장했다.  정형행동이라는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에 대해 롯데월드아쿠아리움 측은 ‘벨루가가 스스로 개발한 놀이의 일종일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벨루가가 스스로 개발한 놀이일까... 모든 정형 행동은 어쩌면 삶을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개발한 놀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그런 놀이를 하지 않고서는 죽을 것 같아서가 아닐지..

우리도 그러하지 않은가

생각이 많아질 때. 군중 속에 고독해질 때 혼자서도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싶을 때. 멀찍이 떨어져 보이지 않는 구석에 투명인간처럼 있고 싶을 때...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찾지 않기를 바랄 때. 세상으로부터 자발적 격리를 하고 싶을 때... 도시의 잔인한  바다에서 오래도록 잠수 타고 싶을 때...

      


 롯데월드아쿠아리움은 2019년 10월에 남은 벨루가 한 마리를 방류하겠다고.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벨루가는 아쿠아리움의 대표적 돈벌이 수단일 테니까.

지능이 뛰어나고 사회성이 있는 동물들에게 혼자라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독감을 주는 일일 것이다. 

물론 나도 아이가 어렸을 때 벨루가의 노랫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벨루가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부모가 됨으로써 아이에게 무엇이든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컸던 때가 누구든 있었을 것이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아쿠아리움에서 벨루가를 보았다. 아주 잠깐.... 노랫소리라기보다는 고통에 젖은 소리처럼 들리는 미묘한 소리를 아주 잠깐 들었다.

고통에 찬 목소리가 분명했다...  슬픔의 절규 같은.     

  


벨루가를 보고 웃는 고래라고 한다는데.... 웃는 게 아닐 것이다.     

개업식이나 전통적 행사 때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 지내는 일들이 있었다.

아마도 요즘은 덜하겠지만... 돼지머리를 성의 정 중앙에 놓고 돼지의 입으로 지폐를 꽂아 사업의 발전을 기원하던... 놀라운 것은 돼지머리가 웃고 있을수록 더 비싸다는 것이었다.

웃는 돼지라니... 이미 머리가 잘린 돼지가 어떻게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저런 해탈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니 늘 의아했던 궁금증이 풀렸다.

돼지 머리를 삶을 때 입이 오므라 들지 않기 위해 입에 밧줄 같은 걸 끼우는데 그게 모양이 잘 나오면 그럴듯한 웃는 표정이 된다는 것... 죽어서도 웃는 돼지.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북극해 어디선가 우아하게 유영을 하는 벨루가, 떼를 지어 움직이는 벨루가를 생각한다.

이누이트족의 사냥감이 되는 벨루가...

사냥감으로 잡혀 식용이 되는 대신 이국의 수족관으로 비싼 값에 팔려와  투명한 사각 ‘관’에 갇혀 죽을 때까지 ‘공연’을 하는 벨루가.. 어떤 벨루가가 행복할까.

당연히 넓고 깊은 바다에서 무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벨루가 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 냥 후 먹잇감이 되는 벨루가와 공연용 벨루가 중에서 어떤 벨루가의 상황이 더 나은 것일까.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는 벨루가. 죽음의 고통은 느끼겠지만 그 고통의 순간은 짧다.

사각의 투명 수조에 갇힌 벨루가는 여러 번의 죽음을 겪는다. 단 한 번의 죽음이 아닌 날마다 찾아오는 죽음. 투명한 한 7.5m 관 속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동물 복지의 고민... 새장에 갇힌 앵무새를 본다. 

멀리 산에서 새들의 소리가 들려온다(새들의 노랫소리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새들의 목소리라고 하는 게 정확한 것이다. 새들은 노래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좁은 새장에서 나른한 표정을 반복하며 깃털을 손질하는 앵무새... 단조로운 발화....

앵무새의 말이 아닌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앵무새. 

사랑을 준다는 이유로 사육당하는 앵무새. 

아침에 벨루가 기사를 보고 나니 나의 앵무새 역시 사각의 철장 같은 관에 갇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지속적 먹이와 안전을 자유와 바꾸게 된 나의 앵무새.

 벨루가의 평균 수명이 30년. 앵무새의 평균 수명이 30년...

나는 어떤 형태로든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

사람의 죽음이든 햄스터의 죽음이든... 앵무새의 죽음이든.... 세상의 모든 죽음은 슬픈 것이기에..     

죽음... 보다 더 슬픈 것은 날마다 죽음을 공연하는 것이 아닐까...

잔인한 4월. 햇살은 이토록  눈부신데.....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 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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