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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대상의 이름을 잊어야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

“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대상의 이름을 잊어야 한다.”   

       

클로드 모네가 르아브르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노르망디 바닷가와 자연을 탐험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날씨가 자연의 모습에 미치는 효과를 관찰할 수 있었다.     

모네에게 '겉모습으로의 현실', '빛이 보여주는 세상'은 매 순간 변화하여 생성되는 과정에 있었고, 이를 포착하려는 노력은 새로운 기법을 낳았다. 기존의 살롱 양식으로는 변화와 생명력을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모네는 '인상파 양식'을 시도한다. 빛의 변화를 포착하려는 붓은 속도를 내야 했고, 그 결과로 그림에는 짧게 끊어지는 자유분방하고 거친 붓자국이 가득했다.   

  

빛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고정되어있지 않다, 순간의 ‘인상’에 집중하는 일. 그러하므로 모네의 붓은 빛의 속도에 맞춰 속도를 내야 했으리라. 고유의 색, 고정된 색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억과 관습이 만들어낸 뇌의 편견일 뿐이라는 그의 말처럼 눈앞에 펼쳐 치는 풍경과 대상은 바라보는 이의 시선과 주변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사라지고 새롭게 생겨나는 것들. 사라짐과 태어나는 것들. 모네에게 그 둘 사이의 간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네의 작품에선  부재와 존재,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것들과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것들이 공존한다. 그러하기에 가장 근본적인 구도, 원근법, 드로잉은 모네의 세계에선 거침없이 무너진다.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지닌 모네는  '건초더미'(1888~1894), '포플러'(1892), '루앙 대성당'

(1892~1894), '수련'(1912~1914)과 같은 연작 시리즈를 통해 시간과 계절이 만들어내는 것들을 화폭에 담았다.  

똑같은 풍경과 똑같은 구도. 다만 시간의 변화, 빛의 변화, 바람의 변화, 구름의 변화.... 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포착한 작품들이다.     

모네의 연작 작품인 ‘건초더미’는 탈곡을 하기 전 알곡이 붙어있는 것인지 알곡을 떨어내고 밀집만 있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는 ‘건초더미’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건초더미는 오렌지빛으로 빛나기도 하고 하얀 눈으로 뒤덮이기도 하고, 서리가 내린 모습으로도, 푸르스름한 박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의 시골 마을 지베르니의 풍경을 배경으로 해 질 녘의 건초더미와 한낮의 건초더미, 여름의 끝과 시작 무렵의 건초더미,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건초더미, 한겨울의 건초더미의 모습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건초더미’가 놓여있는 거대한 캔버스. 자연이 그려낸 순간을 포착하여 그려낸 모네의 힘은 겨경이로움을 준다.

          

그가 그토록 집착하여 그린 ‘건초더미’ 연작에서 한 사람의 일생을 본다.

푸르스름하고 밝은 기운의 건초더미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건초더미,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의 건초더미, 서리와 눈보라 속의 건초더미... 그리고 모든 것이 저물어가는 무렵의 건초더미.... 오직 쌓여있을 뿐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한 사람의 일생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안에는 눈물과 한숨과 지루함과 격정과 고단함과 권태가.... 희망과 설렘과 이상과 사랑과 애정과 연민이 들어있다. 모네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화가의 눈썰미와 화가의 손끝을 통해 

지베르니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건초더미가 예술 작품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건초더미... 모네... 모네가 보았던 빛...

그러나 지금 그곳엔 여전히 빛이 내리쬐고 바람이 지나간다.  마른 건초더미의 풀내가 나고... 서리 맞은 건초더미의 차가움이 존재한다. 해 질 녘 건초거미의 주황으로 물든 얼굴이 존재한다.    


“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대상의 이름을 잊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건초더미’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건초더미’라는 이름을 잊어야 할 것이다.

지독한 반복과 지극한 열정... 바라봄과 느낌과 망각과 기억 그 사이.... 순간은 영원을 만들어낸다/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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