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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기부천사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

CCTV를 설치하는 야만..... 기부 행위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전주 노송동 얼굴 없는 기부천사의 선행이 2019년까지 20년째 이어졌으며 성금은 모두 6억 6천8백5십만 원 정도라 한다. 작년에는 그의 성금을 훔친 범인들이 4시간 뒤 붙잡히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주시는 범죄 예방 차원에서 올해 cctv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얼굴을 밝히고 싶지 않은. 얼굴 없는 기부 천사님의 행동이 고스란히 cctv에 기록될 예정이라니. 올해 그 기부 천사가 나타났는지 나타나지 않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기부를 정례화된 이벤트로 몰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신문을 통해 누군가의 기부 소식을 듣는 것이 훈훈한 느낌보다는 기부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좁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얼굴 없는 기부 천사 올해 또 올까?라는 문구만 해도 그렇다. 기부 천사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형편이 혹은 건강이 혹은 기타 등등의 이유로.. 게다가 구두로든 문서로든 기부를 약속을 한 것도 아니다. CCTV까지 설치해 두고 카운트 다운하는 모습이 ‘ 기부’와 ‘선행’ 이미지를 오히려 퇴색시키는 느낌이다.


청소년 시절 ‘키다리 아저씨’라는 소설을 한 번쯤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1912년 미국 작가 진 웹스터가 발표한 ‘키다리 아저씨’는 고아원에서 지내던 제루샤 애벗이 매월 한 번씩 후원자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쓰는 조건으로 대학 진학 후원을 받으며 시작한다. 후원자의 이름과 얼굴도 모르는 애벗은 현관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보고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 대학 진학 후 스스로를 ‘주디’로 부르며 후원자 아저씨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는데 기숙사 룸 메이트인 줄리아 펜들턴의 먼 친적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소설이다.

고아원 소녀가 얼굴도 알지 못하는 후원자에게 편지를 보내고 훈남, 명문가 후원자와 사랑이 완성된다는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쥬디가 편지를 쓴 대상이 꼭 훈남이고 명문가라고 설정한 구성도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편협하다. 룸메이트의 친척이라는 구조도 진부하다.

후원자의 후원이 없었으면 주디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저런 가능성을 따지고 읽다 보면 스토리에 몰입이 힘들다. 고아원 출신 발랄한 아가씨와 명문가 남자의 러브 스토리. 어쩌면 불가능한....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전주 노송동에 얼굴 없는 기부 천사가 있다면 대구에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진 웹스터의 소설 때문인지 ‘키다리 아저씨’는 후원, 기부를 행하는 사람의 관용적 의미로 사용된다. 스스로와의 10년 기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대구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10년째가 되는 올해 5004만 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의 선행,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장 역할을 해야 했고 어려운 시기를 스스로 개척하면서 살아온 인물이라 한다. 벌이가 생길 때마다 수익의 30% 이상을 기부해 왔는데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을 때조차도 그 룰을 지키려 해서 직원들이 만류할 정도였다고 한다. 올해 기부를 마지막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나와서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코로나로 힘든 해다. 작년 이맘때 별 위기감 없이 단지 중국 우한 지역에서만 일시적으로 퍼진 것으로 알았던 '우한 폐렴'이 지금은 '코로나 19'라는 명칭으로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더 온기가 필요한 이때, 그 온기를 나누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려면 내 안에 온기가 가득 차 있어야 할 것이다. 더 좁아진 가슴, 더 얇아진 지갑, 심리적 불안감 때문인지 '기부‘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게만 보인다. 꼭 가진 것이 많아야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누고 싶은 마음의 여유도 온기도 찾기 어렵다. 아직 본격 겨울도 아니건만 유난히 긴긴 겨울이 시작될 것만 같은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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