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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산타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은 무언가를 존재하게 만든다

12월의 산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해마다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설렌다. 눈이 내리기를 바라고,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를 품는다.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고 선물을 사기 위해 총총히 걷는다. 몇 년 전 성야미사를 보고 하얀 눈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은 쌓이기 시작한 눈으로 미끄러웠지만 모두가 잠든 시간 거룩함으로 충만한 기분이 되어 그 길을 걸었다. 일 년 동안 내 삶의 얼룩들이 순결해지기를 바랐다. 정화된 채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적어도 작년까지는 그러하였다. 올 크리스마스는 적막했다. 거리두기. 미사나 예배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크리스마스 덕담을 나누는 것조차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도로는 얼어붙지 않았으나 마음은 이미 얼어붙어버린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 예수님의 탄생일. 아이들은 예수님 생신보다는 산타클로스라는 존재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나 역시도 빨간 코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빨간 옷을 입은 흰 수염의 뚱뚱한 산타할아버지가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들고 굴뚝으로 들어오는 상상, 걸어놓은 양말이나 트리 아래에 선물을 두고 가실 거라는 믿음. 깊은 밤 산타가 두고 갈 선물이 궁금하여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깨어나자마자 선물을 확인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스노우맨 비디오를 보며 스노우맨이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Walking in the air"를 들으며 감상에 젖어들던 시간이 있었다.

산타클로스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정답은 아마도 ‘존재한다고 믿으면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일 것이다. 소아시아의 세인트 니콜라우스가 산타클로스의 기원이고 현재의 산타클로스 복장은 미국의 콜라 회사가 디자인한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 안에 빨간 옷 산타는 상업광고의 영향으로 정형화된 이미지로 굳어있다.

물론 남반구의 산타클로스는 수영복에 선글라스 차림이겠지만...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대해 묻곤 한다. 해마다 존재를 부정하는 대답이 많아진다. 부정하는 연령도 낮아진다. 또래 중 누군가가 “산타는 있어.”라고 주장하면 누군가가 즉시 나서서 바로 잡는다. “산타는 부모”라고. 생각하면 부모는 1년 열두 달 아니. 평생 ‘산타’ 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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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은 산타에 대한 기대를 갖는 사람이 드물다. 핀란드 산타 마을에서는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 특수를 누리기도 하고, 대형마트는 산타를 마케팅 전략에 활용하기도 한다. 산타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어리석거나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산타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이들의 머리맡에 선물을 두는 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이 현실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산타의 부재를 주장하는 아이들의 근거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고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근거는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것 (오직 부모만이 좋아할 만한 것)을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란다. 어느 쪽이든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왜일까? 본디 과학적으로는 가상의 존재였던 ‘산타’를 가상의 것이 분명하다고 확인하는 순간 우리들의 가슴은 갑자기 공허해진다. 산타의 존재를 마음에서부터 부정하는 순간 어딘지 모르게 새삼 몇 년은 더 나이를 먹어버린 것 같은 느낌, 내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산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유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지는 연결고리 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져보는 것,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능할 거라는 믿음을 가져보는 것. 산타의 존재 의미는 아마도 그런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산타는 눈에 보이는 구체화된 물질적 선물을 가져다주는 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설렘, 가능성, 믿음, 희망, 유대감, 기원, 따뜻함.... 그런 것들을 가져다주는 이 일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우리 안의 산타는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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