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요함 속에는 모든 움직임의 가능성이 들어있다
와불을 일으켜 세우다
가로눕기 시작한 책들이 아슬아슬 탑을 쌓고 있는 책꽂이, 책들 사이에서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진다. 낡은 책 속 어딘가에 젊음이 박제된 채 머무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20년 전 4월 어느 수요일, 운주사에 있었고 그날은 비가 내렸었나 보다. 우산을 쓰고 천불 천탑 사이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낯설다.
요헨 힐트만의 책 『미륵』 표지가 누런 갈색으로 변해있다. 군데군데 빛바랜 밑줄과 번짐의 흔적이 있다. 그 시절 내 안에도 수많은 밑줄과 번짐의 흔적이 있었으리라. 펼쳐진 생의 한 페이지, 밑줄과 밑줄 사이 나는 어디쯤 있었을까? 젊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 무엇도 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운주사’는 움직임을 의미하는 운(運)과 머무름을 의미하는 주(住)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의 이름을 갖고 있다. 큰 고요함 속에는 모든 움직임의 가능성이 들어있다고는 하지만 움직임과 머무름의 공존은 불가능해 보인다. 힐트만이 한국의 성스러운 돌들로 소개하고 있는 만산 계곡의 불상들은 웃을 듯 말 듯 엷은 미소를 띤 입, 가느다란 선으로 표현된 눈, 상대적으로 긴 코와 귀, 꿈꾸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길가, 논두렁, 소나무 숲 속, 암벽 밑 여기저기에 앉거나 서거나 누운 채로 마치 땅에서 솟아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돌미륵들, 그 발치에 돌탑을 쌓으며 사람들은 무엇을 기원했을까?
구불구불한 돌계단의 끝에 이르면 고요한 머무름의 상징처럼 보이는 와불이 있다. 와불이 일어서는 날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리라는 믿음 때문에 백성들은 삶이 힘들수록 와불이 일어서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힐트만은 “갈망과 거부, 충동과 저항, 그 사이에서 힘든 조정을 이끌어가는 여정이 바로 삶”이라고 했다. 갈망하면서도 거부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넘치는 것과 모자란 것 사이에서 끝없는 욕망을 좇고 있다. 고뇌가 있다는 것은 실존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지만 실은 그 때문에 버겁다.
‘나’를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본래의 나를 찾기 위함인지, 껍질로 포장된 나로부터 달아나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와불이 보고 싶어 숨 가쁘게 차를 몰아 달렸다. 금박 하나 더해지지 않은 채 여전히 산자락에 누워있는 미륵은 거대한 돌처럼 보였다. 별과 달과 해를 품고 비가 오면 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눈이 오면 눈 받이가 되어주고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받이가 되어주는 미륵 위로 바람이 머물고 지친 새들이 쉬어간다.
젊은 날, 나는 무엇을 바라 미륵 앞에 서 있었을까. 아직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갈망과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랐다. 형체 없는 ‘무언가’가 형상화되기를 바랐던 그날의 나와 수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미륵 앞에 서 있는 나, 몇 번의 부정합과 몇 번의 단층과 몇 번의 습곡을 거쳤을까?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온전히 나로 살아왔을까? 다시 미륵 앞에 선 것은 어떤 형태로든 채우고 싶지만 채워지지 않는 삶의 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여기저기 뚫린 구멍 사이로 헤집고 들어와 일상을 흔드는 것들은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사소함마저도 때론 견디기 어렵다.
4월 어느 수요일, 비를 맞으며 와불을 보러 산비탈을 오르던 시간은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 시절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찾고 싶었던 것을 이제는 찾았을까? 어쩌면 큰 고요함 속에 들어있는 움직임의 가능성을 지금도 찾고 있는지 모른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마음은 여전히 와불이 있는 산비탈에 머무르고 있었나 보다. 주변 풍경이 오래전 그때와는 사뭇 다르지만 성스러운 돌들은 여전히 만산 계곡에 존재하고 있었다. 천불 천탑을 세운 이들의 염원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모든 것을 받아들여 줄 것 같은 모성으로서의 미륵이 존재하고 그 아래에서 농부들은 씨 뿌리고 수확하고 탈곡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길에서 마주친 농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사람의 얼굴에서도 미륵의 미소를 찾고 싶어서다.
와불처럼 책꽂이 어딘가에 그토록 오랜 시간 누워있었던 『미륵』을 책꽂이 맨 위 칸으로 옮겨 세워두었다. 책 속에서라도 와불이 일어서기를 바랐다. 어떤 바람과 어떤 간절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너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려 하지 말고 너 자신으로 달아나라.”는 미륵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설핏 들려오는 듯했다.
불두만 남아있다. 돌무더기 사이.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미륵의 얼굴. 세월이 내려앉은 얼굴에 해는 그림자놀이를 한다. 비교적 또렷한 코의 윤곽선을 따라내려가면 희미한 미소가 서린 입이 보인다.
웃을 듯 말 듯, 봉인된 미소... 세상의 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그러나 그 답을 알려줄 수는 없다는 듯한... 깊은 잠에 빠진 듯한 물아의 표정으로 그곳에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를 돌무더기 사이에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곳에 있었을까. 아무도 그의 잠을 흔들어 깨우지 않았나 보다.
성스럽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해탈의 얼굴.... 그 어떤 종교적인 것들보다 더 종교적인 그 얼굴에서 나는 위로를 받는다.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 2022 아르코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