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으로 좋은 것, 그러하기 때문에 좋은 것
달항아리의 시간
밤은 깊고 느리고 길다. 불을 끄면 산 그림자가 창에 가득 차고 달빛이 방안으로 스며온다. 잠든 사물들의 얼굴도 달빛으로 일렁이고 바라보는 이의 마음도 달뜬다. 유백색 뿌연 달은 부정형의 미학이라는 달항아리처럼 보인다.
둥근 곡선과 풍만한 형태가 마치 달과 같아서 달항아리라고 부르는데 미술학자 최순우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내는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했다. 동양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막사발을 두고 “그것으로 좋은 것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 했듯 막사발이나 달항아리나 꾸미지 않은 모든 것의 본질, 아름다움의 원형을 품고 있기에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다른 항아리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이라 한 번에 물레로 만들기 어려워 위, 아래 몸통을 따로 만들어 접합하였는데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도리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두 그릇의 입술을 맞물려 온전한 ‘달’을 만들어내려는 도공의 거룩한 몸짓을 생각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향연』에서 인간은 본래 구형의 몸에 4개의 팔과 4개의 다리,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는데 인간이 신을 공격하자 반으로 나누어버렸고 그로 인해 서로의 반쪽을 그리워하며 온전함을 추구하려는 본능 ‘에로스’를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흙의 길과 불의 길을 걸어온 두 그릇을 접합시키는 도공의 마음에도 불완전함으로 완전함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 에로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하다면 담아해 보이는 달항아리야말로 뜨거운 에로스의 구현체라 할 수 있다.
사물이 또 다른 사물을 만날 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결혼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발이 모여 달항아리가 되는 첫 관문이 아닐까? 누군가의 ‘무엇’이 되기 전 우리는 어떤 용도로든 쓸 수 있는 그릇, 막사발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무엇이든 쏟아내어도 아깝지 않은, 무한 리필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젊음, 그것으로 좋고 그러하기에 좋다는 말로 대변할 수 있는 푸른 시간을 막사발에 담아왔다. 하지만 젊음은 채워야 한다는 강박과 채우지 못함으로 인한 허기, 끓어오르다가도 금세 식어버리는 것의 반복,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무언가가 다가오면 뒷걸음질 치는 모순의 시간이었다.
어설픈 젊음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 비로소 두 그릇이 하나로 합쳐지기를 갈망한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그릇이 하나의 맥락으로 읽혀야 하는 시간,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 그릇과 그릇의 경계에서 불협화음이 들려올 때 비우지 않으면 깨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나 양보와 배려를 배우며 하나의 원을 만들어간다. 뜨거운 가마 속에서 혹독한 단련과 기다림의 과정을 거친 달항아리는 이질적인 것들의 융합이고 어울림이고 에로스의 구현이고 사랑의 본질이다.
현재 영국 박물관에 전시된 달항아리는 일제 강점기에 영국인 버나드 리치가 골동품상에서 구입 후 오스트리아 출신 도예가 루시 리에게 전해준 것이다. 리치는 평생을 함께할 수 없기에 그녀 곁에 달의 달항아리로 남고 싶었던 것일까. 잘못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확신에 찬 표정의 달항아리는 오래도록 루시의 작업실에 남아 그들의 사랑을 대변했을 것이다. 결핍을 품고 있지만 결핍이 도리어 인간적으로 여겨지고 뜨겁지만 뜨겁지 않으며 온전하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온전한 달항아리가 서양인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조선의 장아찌를 담는 단지라고 소개되어있지만 어쩌면 밤하늘의 달을 담아두고 싶은 항아리였을지도 모른다. 이름 모를 도공의 눈물과 땀으로 빚어진 달항아리가 바다 건너 이국의 박물관 유리 안에서 하나 됨의 에로스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어느 집 뒤주 위에서 달빛을 가득 담아두었을 달항아리, 결핍과 허기를 잠재운 텅 빈 충만, 불완전함 속에 완전함을 품은 달항아리가 삶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며 그러하기에 좋은 것이라는 말을 조곤조곤 들려주었으리라. 창밖에 달항아리 하나가 어른거린다. 두 그릇이 맞물린 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낯 모르는 누군가에게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해져야 한다고 달항아리가 알려주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삶을 삶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허영과 과시, 움켜쥐기 위해 ‘더’를 외치는 욕망이 삶을 버겁게 한다.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더 뛰어나기 위해, 더 여유롭기 위해, 더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늘 지친다. ‘더’를 외칠수록 더 왜소해지고 더 궁핍해진다고, ‘더’를 감당할 그릇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달항아리가 고요한 몸짓으로 이야기한다. 깊고 느리고 긴 밤, 인생은 그것으로 좋은 것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달항아리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시간이다./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