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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Lulu Miller) / 곰 출판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 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세계 전체의 거대한 구조 속에서 물고기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에 관해 우리의 관념을 뒤집어엎는 자유분방한 여정" (슬레이트)


작년 겨울 인터넷 서점에서 집중 광고를 하던 책이었다. 사실 책보다는  이 책을 구입하면 동그란 투명 문진을 증정한다는 말에 끌렸었다.  영어식 제목과 한국어 번역 제목이 주는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한국어판 제목엔  가장 중요한 WHY 가 빠져있다는 사실을...

룰루 밀러는 미국 스텐포드대 초대 학장이면서  어류 분류에 있어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데이비드 스타 조든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데이비드 스타 조든... 이름 한가운데 '스타'라는 말이 상당히 거슬리게 다가왔다. 역시나 데이비드는 '스타'라는 명칭에 걸맞게 세상에 맞서 자신의 능력의 탑을 쌓아 올린다.  그 탑을 쌓아 올리는 과정은 혼돈에 맞서 분류의 사다리, 위계를 세우는 작업이다. 잔인할 정도로 비열한 방법들을 동원하기도 하고. 열등한 존재에 대한 혐오를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자신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물고기들을 얻을 때 쓰는 방법처럼 '독'으로 해결한다. 과도한 확신과 그릿, 왜곡된 자부심이 뒤섞인 남자인 그가 그토록 집착했던 것은 '어류'에 이름 붙이기다.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는 실제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룰루 밀러는 이야기한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어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그 복잡성을 감추기 위해, 우리(인간)가 그들과 멀다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경멸적인 단어라고 말한다. 


  사다리를 타는 인간의 위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물망 속,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룰루 밀러는 정확한 검사 없이 열등한 유전자를 지녔을 것이라는 이유로 불임 수술을 강제로 받은 여인들의 이야기, 우생학의 희생자들에 대하여 적어 내려간다.  룰루밀러는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위험하게 하는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라고 하며     

지구상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기 말라고 다윈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동성아내)에 대한 내용도 소개되는데...

이 또한 종의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의미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류분류학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어찌 보면 그에 대한 고발문과 같은 느낌도) 데이비드 스터 조던의 일대기를 파헤치면서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인류애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파괴와 상실뿐 아니라 좋은 것들도 '혼돈'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이 책이 전하려는 가장 본질적인 메시지가 무엇일까 자꾸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저자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고, 과학은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자연에 인간이 정한 계급구조.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에필로그에 적고 있다. 

"사다리, 그것은 아직도 살아있다.

사다리,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우주의 혼돈과 질서에 대한 이야기"

과학자인 아버지는 저자 룰루 밀러에게 늘 "넌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지구의 관점에서 인간의 탄생은 혼돈일 뿐, 우리의 삶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러니 무의미에 발을 딛고 오히려 작은 것 안에 있는 장엄함을 발견하며 행복을 향해 마음대로 걸어 나가라고. 안타깝게도 밀러에게 이 말은 삶의 동력이 되지 않았고 무의미의 블랙홀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며 죽음에 가까운 삶을 살던 그는 평생을 바쳐 물고기들에 이름을 붙이고 또 붙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생물학자를 발견한다. 우주의 혼돈이 아무리 방해공작을 펼쳐도 끊임없이 질서를 부여해 가는 그의 삶에서 밀러는 어쩌면 삶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데이비드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책엔 밀러가 추적한 데이비드의 삶의 이야기가 시간 순으로 펼쳐진다. 작고 쓸모없는 생명체에 관심을 기울이던 그가 어쩌다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에 푹 빠지게 되었는지, 30년 평생을 바친 이 표본들이 강한 지진 한 번으로 모두 엉망이 되었을 때 그가 좌절 없이 바로 재작업에 착수한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밀러는 데이비드의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서 여러 심리학적 연구들까지 분석하며 그를 깊이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책의 중반 이후부터 데이비드의 삶은 충격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밀러는 충격과 혼돈 속에서 결국 아버지의 말을 반박할 자신의 진리를 찾아낸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에서                


프롤로그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하는 시기의 문제다. 세계에서 확실한 단 하나이며 우리를 지배하는 주인이다.

열역할 제2법칙...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할 뿐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혼돈과 맞서 싸우는 자이다, 당대 알려진 어류의 1/5를 발견, 이름을 지어주고 에탄올이 담긴 유리단지에 이름표를 함께 넣었다. 자신이 발견한 아류 표본이 탑처럼 쌓여갈 때 지진이 일어났고 그는 바늘로 파괴된 물고기들을 하나씩 건져내어 비늘을 목살에 찔러 넣어 이름표를 붙였다

목에, 꼬리에, 눈알에 꿰매 붙인 이름들....     


1. 별에 머리를 담근 소년     

  꽃들을 수집하려는 필사적인 충동에 이끌린 채로, 세상은 그의 소명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채로.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는 천천히 잎사귀들만 가득한 외로움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갔을지 모른다. 그가 페니키스 섬에 발을 들이지만 않았다면     


2. 어느 섬의 선지자

페니키스 섬 매사추세츠 해안에서 22km 떨어진 곳 

루이 아가시를 만나게 되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은 전환점을 맞는다

“ 맹인이 손가락을 더듬듯 우리는 이곳에서 상형문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

보이는  것에 담긴,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3. 신이 없는 막간극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P. 54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 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다윈 나투라 논 파싯 살툼( Natura non facit sai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데이비드는 자연의 사다리. 모든 동식물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지위기 정해져 있는지를 드러낼  추적을 계속했다. 다른 생물들의 우연한 실수와 성공들 속에 쓰여있는 잠재적으로 인류가 더욱더 진보하도록 도와줄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지진으로 인해 표본을 담은 유리 단지들이 폭발, 동정되지 않은 생물들이 재가 되고 모든 표본이 소실된 현실에서도 데이비드 스터 조던은 

“나는 이미 지나간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근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5. 유리단지에 담긴 기원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정의 향수, 무한, 사랑, 죄 같은 추상적 개념들 천상의 에테르적 차원에 머물면서 인간이 발견해 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바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이 사상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버지니아대 철학과 트랜턴 매릭스는 자신의 의자, 자신이 입자들 위에 앉아 있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입자들이 정말로 ‘하나의 의자“를 구성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집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표본 번호 #51444)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1904년 일본 연안에서 발견

온몸이 가시로 덮인 물고기, 주둥이에도 가시가 돋아있고 몸통은 나선형 계단처럼 말려있다. 톱니 모양의 날카로운 지느러미는 용의 날개를 닮았다, 날갯줄 고기과는 탁월한 사냥꾼들이다. 해초인 듯 숨어있다가 먹잇감에 은밀히 접근하여 유난히 큰 가슴지느러미로 덮친다

'아고노말루스'는 '모서리가 없음'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다


데이비드가 물고기를 잡는 법은 야만적이다. 그는 혼돈이 공격해 올 때면 더 강하게 반격한다

다이너마이트를 폭발시켜 물고기가 튀어 오르게 하거나 산호를 망치로 쳐서 그 안의 물고기를 잡거나 조수 웅덩이의 수많은 작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치명적인 독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가 질서 속으로 끌어다 놓은 혼돈의 양이 거의 건물 두 층높이로 올라갔다.

    

6. 박살

1906년 4월 18일 오전 5시 12분의 지진

데이비드 스타 조던 삶의 30년이 사라진 곳, 유리파편, 에탄올과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표본이 마르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물을 뿌린다. 밤이고 낮이고.... 


7. 파괴되지 않는 것

독수리와 파란 꼬리 스킹크의 이야기

독수리가 날아와 스킹크의 파란 꼬리를 잘라먹는다. 상처 입은 스킹크 도마뱀은 독수리 둥지로 올라가 알을 잡아먹으며 "이 알들에는 새 꼬리를 만들기에 충분한 만큼의 고기가 들어있어." 그리고 둘의 행동은 계속된다.

독수리는 내려와 새로 난 꼬리를 잘라먹고 도마뱀은 둥지로 올라가 알들을 먹어치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완전히 퍄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꼬리에는 더 많은 알을 만들 고기가 충분하고 알에는 또 하나의 파란 꼬리를 만들 고기가 충분하므로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자연에 참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연의 법칙은 바꿀 수 없으며 그 법칙을 거스르는 자는 공기로 된 방망이를 휘두르는 셈이다. 우주 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그의 주먹..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 불렀다.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 와는 전혀 무관하다... 파괴되지 않는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8. 기만에 대하여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건강한 환자들, 인생을 더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 좌절을 겪은 뒤 재빨리 회복하는 사람들,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황금기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토리 에디팅 ” “ 리프레이밍” 적당한 수준의 자기기만

극단적 부인이나 기만은 오히려 적응에 해롭고 순한 거짓말, 하얀 거짓말, 작은 장미봉오리 같은 거짓말은 이로운 효과를 낼 수 있다.

p141-142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능력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그릿 : 앤젤라 더크워스

그릿(Grit : 끈질긴 투지) 긍정적인 피드백이 없는데도 매우 장기적인 목표에 로봇처럼 뛰어들게 해주는 것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P 151

바우어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거창한 자기 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서리가 없던 조던이 바로 그 대표적 예다.


9. 세계에서 가장 쓴 것

그의 냉소, 숨어있는 보잘것없는 꽃들에 대한 몰두, 내 아버지의 쇠솔로 된 밀대 빗자루를 연상시키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팔자수염, 강철 같은 근성,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자기 확신을 품은 이 

“물고기를 확보하는 방법이란 섹션에서 조수 웅덩이 틈새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리는 탓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장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즐겨 쓰는 방법은 독이다. 세상에서 가장 쓴 것이라고 묘사했던 위험하고 강력한 물질, 바로 스트리크닌이다."

          

10. 진정한 공포의 공간     

우생학 1883년 프랜시스 골턴이 만든 단어

데이비드는 ‘타락’ ‘빈곤’ 같은 특징들이 유전될 수 있으므로 ‘습지의 물을 말리듯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 학생들에게 제안했던 ˝박멸˝을 실현할 방법으로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들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것으로, 데이비드는 청중들에게 ˝백치들은 모두 자기 핏줄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데이비드와 프랜시스 골턴은 결정적 사실을 흘려버렸다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고 그 종이 미래까지 지속하게 해 주며, 혼돈이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기온 급변, 해충 침략 등의 강력한 형태의 타격을 가해도 그 종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다윈은 변이를 꼽았다. 행동과 신체의 특징에 변화를 일으키는 유전자에서 생긴 변이는 중요하다. 

동질성은 사형선고와 같다.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위험하게 한다     

지구상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기 말라고 다윈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189

인간의 지력으로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에 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공경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이는 때로 “민들레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철학적 개념이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생학자들은 이런 단순한 상대성의 원칙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유전자 풀에서 “필수불가결한 다양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사실상 지배자 인정을 구축할 최선의 기회를 망쳐버리고 있었던 셈이다.           


11. 사다리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긍정적 착각을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

과도한 확신, 그릿, 자부심이 섞이면 위험한 혼합물이 만들어질 것. 데이비드 스타 조던처럼

다윈에게 있어 기생충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경이였고 비범한 적응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12. 민들레

애나와 메리의 집. 이곳은 움직임과 빛과 따뜻함으로 이루어진 동물원이다. 이 거실은 살아있다

그들에게 모든 것이고  지구라는 행성에 붙잡아주는 힘 같은 것이다     

*민들레법칙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는 약재이고,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아이며, 히피 눈에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유지의 수단, 벌에게는 짝짓기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다.     

금세 사라질 전위의 점 위의 점,..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 한 사람은어머니를 대신해 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이다. 결국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해요.”     


13. 데우스 엑스 마키나     

데이비드 스타 존스는 자신의 우생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다

가장 좋은 자질을 지닌 자가 전쟁에 나가 죽으면 부적절한 자들만 남아 번식을 이어간다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평화를 이야기한다.     

데이비드생전에 분류한 물고기들은  2500종 이상인데 사실 그 물고기들 다수가 그가 사회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무시했던 이민자들. 빈민들이 발견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1980년대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동안 어류에 대해 수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어류: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 몰아 넣은 것이다.

실상 물속 세상을 들여다보면  비늘로 된 의상 밑에 서로 다른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숨어있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p 251

“어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멸적인 단어다. 우리가 그 복잡성을 감추기 위해, 우리가 그들과 멀다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다. 에모리대학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우리의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다고 이야기한다.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19세기 어느 과학자의 삶을 흥미롭게 좇아가는 이 책은 어느 순간 독자들을 혼돈의 한복판으로 데려가서 우리가 믿고 있던 삶의 질서에 관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하나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질문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관계들”에 한층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책이 놀라운 영감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 줄 것이다.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 불렀다고 한다. 파괴되지 않는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파괴되지 않는 것은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 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군데군데 과학적 용어나 철학적 내용 등 유익한 읽을거리가 많았지만... 읽기에 편하지 않은 책이었다. 

특히나 에필로그의 마지막 부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따스함이 넘쳐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생각한다. 가장 희망적인 순간에조차, 나의 하찮은 뇌는 그녀만큼 한없이 도취시키는 존재를 꿈에도 결코 상상해내지 못할 거라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고발문(?)에서 갑자기 자신의 동성 아내의 허벅지로 이어지며 한없이 도취시키는 존재라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어마어마한 내용이 한순간에 희화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뿐이었을까....  /려원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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