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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의 인생 공부를 생각한다

장맛비 내리는 날 

올여름의 인생 공부 

                             최승자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올여름의 인생공부를 생각하려다 보니 벌써 여름의 한 복판에 와 있다.

7월이면 한 해의 터닝 포인트를 넘어선 시간. 인생도 공부해야 하는 것임을 요즘은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세월이 인생을 배우는 최선의 방법이긴 하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 속수무책으로 인생을 배우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벌써 인생의 수동적인 학생이 되어버린 것일까.

무언가를 바꾸고 무언가를 꿈꾸기엔 너무 멀리와 버린 것일까.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으로 시작하는 최승자 시인의 시는 썩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감추고 건너뛰고 부정하되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파라고 한다

감추고 건너뛰고 부정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일은 불행일까 다행일까?     

달관도 도통하지도 말고 언제나 배고픈 아이처럼 울고,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으라고 주문한다. 대충 적당히 울지 말고 절박하게 제대로 울고 대층 웃지 말고 다른 한 아이와 재밌게 노는 아이처럼 제대로 웃으라고...     

얼굴에 인생이란 것이 내려앉을수록 무표정해지는 것은 어쩌면 썩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올여름의 인생공부를 고민할 시간.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며 천상병 시인의 시 <장마>를 읽는다    

 

장마 / 천상병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 다오.     


저녁이라 하기에 어둠 이슥하고 심야라 하긴엔 심야 같지 않은 시간.

한 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걷는 사내가 있다. 그 사내는 비에게 용서를 빈다.     

순식간에 앞이 보이지 않게 쏟아져 내리는 비를 보면 시인처럼 나도 용서를 빌고 싶다.

전생과 현생과 다음 생이 있다면.......

현생이 전생의 결과라면 다음 생은 현생의 결과물일 텐데 현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심장의 뜨거움을 상실해 버린 듯하다. 그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일까. 인생 공부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을까?

이천이십 삼 번째의 여름,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시인처럼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비여, 나를 용서해 다오."를 중얼거리는  여름 밤이다.


맑은 하늘 보기가 드문 날,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사랑하는 법을, 다르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자기 안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왜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것일까

어차피 사람은

자기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자신을 버려두고 가든지

자신을 끌고 가든지

- 요시노 히로시 <달팽이 > 부분


이렇게 한 여름의 복판에 이르면

가끔씩 나는 나를 견딜 수 없어진다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한다면 자기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자신을 버려두고 혹은 자신을 끌고....... 올여름의 인생공부는 자기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가능하면 버려두지 말고 기꺼이 끌고........... 자기 밖으로!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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