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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먹는 사람들

치명적인 냄새, 치명적인 그리움, 세상의 모든 치명적인 것들을 소환하는.

<감자 먹는 사람들> / 김선우

     

어느 집 담장을 넘어 달겨드는

이것은,

치명적인 냄새     


식은 감자알 갉작거리며 평상에 엎드려 산수 숙제를 하던, 엄마 내 친구들은 내가 감자가 좋아서 감자밥 도시락만 먹는 줄 알아. 열한 식구 때꺼리를 감자 없이 무슨 수로 밥을 해대냐고, 귀밝은 할아버지는 땅밑에서 감자알 크는 소리 들린다고 흐뭇해하셨지만 엄마 난 땅속에서 자라는 것들이 무서운데, 뿌리 끝에 댕글댕글한 어지럼증을 매달고 식구들이 밥상머리를 지킨다 하나둘 숟가락 내려놓을 때까지 엄마 밥주발엔 숟가락 꽂히지 않는다.     


어릴 적 질리도록 먹은 건 싫어하게 된다더니, 감자 삶는 냄새

이것은,

치명적인 그리움


꽃은 꽃대로 놓아두고 저는 땅 밑으로만 궁그는,

꽃 진 자리엔 얼씬도 하지 않는,

열한 개의 구덩이를 가진 늙은 애기집          


뿌리 끝에 댕글댕글한 어지럼증을 매달고 식구들의 밥상머리지키는 감자가 어린 시절  화자에게는 치명적인 냄새였다. 어른이 된 화자에게 어느 집 담장을 넘어 달겨드는 냄새는 치명적인 그리움으로 남았다.     

가난으로 기억되는 치명적인 냄새가 치명적인 그리움으로 치환된다.

세상의 모든 냄새에는... 저마다의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는 ‘치명적인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저마다의 치명적인 냄새가 치명적인 그리움으로 치환된다면 ‘치명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는 땅 밑으로만 궁그는,

꽃 진 자리엔 얼씬도 하지 않는,

열한 개의 구덩이를 가진 늙은 애기집...     


식구들이 하나둘 숟가락 내려놓을 때까지 엄마 밥주발엔 숟가락 꽂히지 않는다     

모성이란 단어에는 ‘희생’이란 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시적화자는 밥주발엔 숟가락이 꽂히지 않았던 어머니를 열한 개의 구덩이를 가진 늙은 아기집으로 표현한다. ‘늙은 아기집’이라니... 시인이 택한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반고흐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 이 있다.

고흐는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이 그림을) 나는 내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는데.... 아직 삶의 깊이를 잘 알지 못하는지, 그림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때문인지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던 그림이다.

하지만 고흐는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 접시 하나를 두고 감자를 집어먹는 사람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몸소 일하면서 정직하게 식량을 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둠을 배경으로 붓터치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고흐의 < 감자 먹는 사람들 >은 어둠의 색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먼지투성이의 감자 색깔”을 의도적으로 반영한 것이라 한다. 등장인물의 피부색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땅에서 캐 온 흙감자의 색깔을 닮았다.

그림의 여러 모델 중 모자를 쓰고 정면을 향하고 있는 여인만 실명이 확인되었는데 고르디나 드 그루프로 당시 30세였다고 한다. 고흐는  1885년 4월13일에 그림 그리기 시작하여 5월 초에 완성하였는데 모델의 위치, 표정 등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마음에 드는 최종 작품을 얻어낼 수 있었다. 세월의 무늬가 새겨진 얼굴, 앙상한 손, 유일하게 빛을 내는 전등...

           

차를 따르는 여인이  작품의 왼쪽에 위치한 초기작이다. 동일 인물, 같은 구도를 지니고 있어도 인물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고흐는 왜 그토록 '노동'에 천착했던 것일까?

당시에는 더더욱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심지어 대표적 모델 고르디나가 임신 중이어서 고흐의 아기라는 루머까지 퍼지는 상황이었다는데...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어쩌면 지극히 정직한 땀의 흔적을 화폭에 남기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밝지 않은 표정, 어둠. 한눈에 보아도 궁색해 보이는 옷차림.... 고흐가 이 그림을 통해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를 후대의 우리는 제대로 해석하고는 있는 것일까.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시로 풀어쓴 정진규시인의 시가 있다.


정진규의  시 <추억-‘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식구들은 둘러앉아 

삶은 감자를 말없이 먹었다

신발의 진흙도 털지 않은 채

흐린 불빛 속에서

늘 저녁을 그렇게 때웠다

저녁 식탁이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거렸다

다만 셋째 형만이

언제고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된 나날이었다     


잠만은 편하게 잤다

잘 삶아진 굵은 감자알들처럼

서걱서걱 흙을 파고 나가는 

삽질 소리들을 꿈속에서도 들었다

누구나 삽질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맛있는 잠 잠에는

막힘이 없었다     


새벽에는 

빗줄기가 조금 창문을 두드렸다

제일 부드러웠다

새싹들이 돋고 있으리라 믿었다

오늘 하루쯤 쉬어도 되리라

식구들은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거리는 저녁, 식구들은 아무 말없이 삶은 감자를 먹는다.

다만 셋째 형만이 언제고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 잘 삶아진 감자처럼 잠을 자는 이들.. 서걱서걱 흙을 파고 나가는 삽질 소리들을 꿈속에서도 듣는 이들.. 누구나 삽질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이들.

 새벽에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라고 믿는 그들은... 목욕탕엘 가고 싶다는 말로 끝맺는다. 마른 햇살이 두려운 이들에게 빗소리는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흐린 불빛 아래서 날마다 감자로 저녁을 대신하는 그들에게도 새싹들이 돋고 있으리라...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감자를 먹는 이들은 세상에 많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먹는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감자의 담백한 맛. 감자다운 맛이 좋다. 그토록 바위처럼 단단한 감자를 삶으면 바나나보다 더 부드럽게 부스러진다.... 그 어떤 맛과도 잘 어울리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점이 자신을 드러내는 강점이기도 한  감자다움이 좋다.

땅의 기억을 뭉쳐 동그랗게 제 몸에 말아 넣은 감자 한 알... 누군가의 거룩한 노동의 흔적이다.

치명적인 땀의 흔적이고 치명적인 눈물의 언어이고..

세상 모든 치명적인 그리움을 품고 있다고....  

또 그렇게 7월이 간다. 감자 먹기 좋은 여름날 오후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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