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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비도비디부와 비비디 바비디 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을 중심으로 


"권위주의에 도전한다는 평가를 저는 반대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떤 형태의 권위도 불편하고, 필요성을 볼 때마다 맞서려고 노력해요, 사회적으로 확립된 경계와 관습에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라 사회를 변화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말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1960년 이탈리아 태생으로 가난한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노동자로 일하던 어느 날 갤러리 창문 너머로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았고, 자신도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예술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전시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첫 개인전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걱정한 나머지 갤러리를 닫고 문 앞에 '곧 돌아옵니다 (Torno Subito)'라는 임시 명판을 남겨 놓았다. 두 번째 전시에서는 만들지도 않은 작품을 도난당했다고 경찰서에 신고하고 접수증을 전시했다. 서류는 작품을 걸지 못해 죄송하다는 해명의 글일까, 그 자체가 작품이 된 것일까?    

 


리움미술관 곳곳을 메우고 있는 비둘기도 비슷한 맥락에서 만든 작품이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초청 작가가 되어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전시장을 사전 탐방했을 때 아무 전시도 없는 텅 빈 전시장에는 비둘기 떼가 가득했다.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 오는 대신 비둘기 박제를 만들어 와 그대로 전시했다. 


엘레나 쿠에가 마우리치오 카텔란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간결한 프로필을 만들어보라”라고 하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지루한 사람이다. 나 자신을 정의하려고 노력하다가 잠이 들 것이다.” 

뼛속까지 작가인 사람. 작가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 그에 대해 여전히 감탄하는 한 가지는 그가 너무나도 진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스처나 작업 방식은 흡사 불량 학생 같은 자세지만 그 결과물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없이 진지하다.  아티스트 토크나 대면 인터뷰도 없다. “절대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라고 그는 충고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 

노란 바나나를 벽에 회색 테이프로 붙여 고정해 두고 갈변하면 바꾼다는 작품. 낙찰가가 15억 원이라던가... 정확하지 않지만.  바나나를 어떤 각도로 놓는지, 회색 테이프를 어떤 방식으로 붙이는지... 어느 정도 갈변이 일어났을 때 바꿔야 하는지... 이 또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아닌 우리도 누구든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고정시키는 작업 정도는 할 수 있다. 더 전위적이고 자극적인 색깔의 테이프로 작업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작업은 획기적인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모든 예술은 처음의 발상이 가장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작품명이 ‘코미디언’이다. 왜 이렇게 붙인 것일까. 흔한 바나나를 은회색 테이프로 붙여놓은 것을 보기 위해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는 것이 일종의 '코미디'같아서일까. 실제로 전시 중인 바나나를 관람객이 떼어먹은 사례도 있었다. '단지 배가 고파서'라는 이유로...

어쩌면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전시된 바나나를 누군가 떼어먹는 것까지도 전시의 일종으로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코미디언'이란 작품의 바나나를 먹었다는 기사가 뜨는 순간 자신의 작품 '코미디언'이 진짜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일지도 모르니까...

사실 나는 현대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지도 않고 이론적으로도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장난이나 유희'처럼 여겨지는데 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며 고차원적인 작품으로 관람객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코미디언'이란 작품 속 바나나는  갈변되면 2-3일에 한 번씩 바꾼다고 하는데 전시기간 내내 바꾸지 않는 게 작품으로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나나의 생로병사 같은 느낌..


그의 작품 중 양복차림의 남자가 테이프로 온몸이 감겨 벽에 붙어있는 작품도 있었는데 1999년 <무제> 란 작품이다. 바나나를 붙이기 전에 실제 사람을 실험적으로 붙여본 모양이다. 결국 이 모델은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한다. 

바나나와 사람... 테이프로 고정된. 살아있는 사람과 죽어있는 바나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르네 마그리트처럼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바나나가 아니라면, 이것이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카텔란은 금지된 어떤 것은 자행한다. 금지라는 이름의 틀을 깨버리는 행위.          

카텔란의 작품의 특징은 날카로운 메시지와 함께 유쾌한 유머가 담겨 있다는 것인데, 누군가의 생각을 뒤흔들려면 설득의 장치가 필요한데 카텔란은 그 장치를 바로 "유머"로 보았다.  나는  감히 '이것은 유머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 진다. 


카텔란의 다른 작품  박제 다람쥐 〈비디비도비디부>도 인상적이다.

다람쥐 자살?을 연상 시키는 작품인데 작품명이 〈비디비도비디부>다.

작품의 명칭만으로  1948년에 알 호프만과 맥 데이비드, 그리고 제리 리빙스톤이 작사한 코믹송 비비디 바비디 부(Bibbidi-Bobbidi-Boo)가 연상된다. 1950년에 개봉된 디즈니 만화 신데렐라에서 호박마차로 변하게 하는 주문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노래 가사는 제목과 마찬가지로 거의 아무 뜻도 없다. 일종의 여음구인 것이다.      

“ Salaga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Put 'em together and what have you got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It'll do magic believe it or not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ans mechicka boolaroo But the thingmabob that does the job is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Put 'em together and what have you got bibbidi-bobbidi bibbidi-bobbidi bibbidi-bobbidi-boo     

다만 신데렐라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무언가가 이루어지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의자에 앉아 엎드린 채로 있는 다람쥐.. 바닥에 떨어진 권총. 누군가가 앉아있었을지도 모를 다른 의자 하나. 싱크대의 그릇.  실제로 자연사한 다람쥐를 박제로 만들어 작품화한 것이라 한다.

다람쥐는 죽었을까? 죽어가는 중일까? 죽은 척하는 것일까?

잠시 뒤 '짜잔' "죽은 줄 알았지?' 하고 다시 일어나는 건 아닐까? 

다람쥐가 죽음을 택하였다면 자살일까? 타사일까? 고독사일까? 어쩔 수 없는 죽음, 궁지에 몰린 죽음일까?    잠든 것처럼도 보이고 죽은 척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죽은 다람쥐다.

작품명이 다람쥐 자살이나 다람쥐 죽음이 아니라 '비디비도비디부! '라니.... 


  '비디비도비디부'와  '비비디바비디부' 사이

다람쥐는 '비디비도비디부'라는 마지막 유언(말)을 남기고 죽은 것인가.

신데렐라의 마법의 주문 '비비디바비디부'로 누군가 다시 깊은 잠에서 깨워주기를 바란 것일까.

아니면 다람쥐는  살아있을 때는 '비비디 바비디 부!'를 마법처럼 끝없이 외쳐왔지만 그 공허한 외침과 기대에 지쳐서 '비디비도비디부'를 외치며 죽어버린 것일까. 아무리 외쳐도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그 절망감에 말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여음구가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힌다.

        

카텔란 전시회의 특징이 어느 누구도 작품에 대한 해설을 해주지 않는 것이라 한다. 심지어 작가 카텔란도 전시회장에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작가가 마이크를 잡고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다 보면 관객의 상상력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껏 느끼고 생각하고, 재창작하라는 의도인 듯...   

실제로 어떤 전시회를 가더라도 누군가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면 더 이상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는 경험을 누구든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람쥐.... 다람쥐의 주문을 떠올리는 여름...

8월이다.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비디비도비디부의 여름이 되지 않기를../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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