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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바닥에서 시작하는 일

원종린 수필문학상 수상의 기쁨/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9.9일(토) 원종린 수필문학상(작품상) 시상을 위해 대전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내려오기도 남쪽에서 올라가기도 딱 적당한 도시다. 

도시마다 도시의 느낌이 있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전이라는 도시가 주는 느낌은 어딘지 세련된 느낌을 주면서도 온기가 느껴진다. 어쩌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도시의 표정을 결정하는지 모른다.     

9월. 여름의 끝을 품은 가을의 초입이다.

적당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

개인적으로 ‘적당함’이란 말을 싫어하지만 이 계절의 ‘적당함’만큼은 충분이 마음에 든다.     

2022년 8월 수필과 비평사에서 출간된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이 영예롭게도 수필문학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에 선정되었다.               


수필가 원종린 선생은 1923년 충남 공주시에서 태어나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후 수준 높은 수필 작품을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감동적인 내용을 담은 여러 권의 수필집을 발간하여 한국 수필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원종린 수필문학상은 선생의 순정한 문학정신을 기리고 수필문학 창작에 대한 애정을 승화시켜 수필 문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제정된 문학상이다.     


원종린 수필가, 대학 교수, 교육평론가

원종린(元鍾麟, 1923년 10월 10일 ~ 2011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수필가 겸 대학 교수(초등교육학 및 영어교육학 교수)이다.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충청남도 공주 출생이다.     

생애

1947년 수필가로 첫 입문한 그는 충청남도와 세종 및 대전 지방에서 호서문학의 원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수필가이며 공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냈다. 2000년대에는 그의 이름을 딴 '원종린 수필문학상'이 제정되어 해마다 수필가들을 선정하여 수여하고 있다.    

활동기간 1947년 ~ 2011년 / 장르 수필, 평론     

주요 작품 수필 :《1950년대 후반 시절 정림사지 석탑》

 


아마도  평생 동안 사람과 생명,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겨온 원종린 선생님의 신념에 내 책이 조금이나마 들어맞았는지 모른다.     

“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은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고

사람다움의 습도와 온기를 지켜가는 일입니다."


"저마다의 원을 넓혀 서로의 경계를 보듬고 숲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북소리를 찾아 부단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안의 꿈들이 뭉쳐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회색 빌딩 숲, 틈과 틈 사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 어딘가에서도 사람들이 일제히 꽃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은 늘 거룩한 봄의 화관입니다. 뭉클거리며 피어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직 못다 한 ‘꿈’들의 첫입니다."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발췌


존재의 언어로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아직 못다 한 꿈들의 ‘첫’을 찾아가고 있다. 책을 발간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는 게 새롭다. 

1년 전 책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발췌했던 기억이 난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기쁨의 시간이면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공존, 지혜와 어리석음의 공존, 믿음과 불신의 공존, 모든 것이 눈앞에 환상처럼 다가오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비단 ‘책’뿐만 아니라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첫 문장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작가의 손에서 태어난 한 권의 책은 어디선가 오고 있을 당신의 관점에 따라 재해석되어 수천수 만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책에도 분명 책들의 길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처럼.     

이 한 권의 책에는 지난 시간 동안 쉼 없이 읽어왔던 수많은 책들의 흔적과,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붙잡던 불면의 밤과, 깊은 한숨과 나를 관통해 간 바람과 햇살, 소소한 기쁨들, 쓰디쓴 커피와 고독한 시간, 형제가 보이지 않는 무기력들과 누군가를 위해 흘렸던 눈물들, 혹은 어떤 들뜬 열망과 설렘의 기억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내 안의 수많은 목소리들을 붙잡아 활자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전하고 싶은 말,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것들은 많지만 이제는 책에도 책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손을 떠난 이 책이 당신의 책꽂이에 정박하여 축제처럼 아름답고 죽음처럼 불가능한 기억들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하다면 우리는 이미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알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나를 알지 못하더라도. 

                                                        이천이십이 번째 여름         당신의 려원 (에필로그 중)          


한 권의 책을 잉태하는 것에는 어떤 미묘한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듯합니다.  책 속에 담긴 것들은 목소리들의 흔적일 것이고 시간의 발자국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첫’은 부끄러움의 기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어미’에게는 똑똑하고 빼어난 자식보다 어딘지 부족하고 어설픈 자식을 더 품어주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그러합니다.          

잉태의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저자인 나의 몫이고 잉태의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책의 몫입니다.  나의 ‘첫’이기에 부끄러움이 있다면 그것은 책의 몫이 아닌  온전히 저자인 나의 몫입니다.      


그때 나는  “잉태의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저자의 몫이고, 잉태의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책의 몫"이라고 썼다. 책의 어미로서... 나는 한없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사람이지만 적어도 책만은 부끄럽지 않기를 바랐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에 이어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까지 선정되었으니

적어도 책만은 부끄러움을 면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다행이다.           


이제 수상의 기쁨은 잠시고 돌아서서 떠오른 생각은 늘 '신인'이 되는 마음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슬픔은 오래도록 가슴 깊숙이 잠복되어 있지만

기쁨이란 그렇게 오래 남아있지 않다. 수상의 기쁨도 예외는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기쁨은 휘발되어도 좋지만 슬픔과 아픔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겸손해지게 하고 초심을 잃지 않게 하고.... 성장시키려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뜻이 아닐까..     


수상을 하고 나면 늘 떠오르는 문구는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그렇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부단히 글을 써야겠다     


쓴다는 것은 기원에 대한 정열을 갖는 일이다.

글쓰기는 바닥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바닥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다.

따라서 쓴다는 것은

목적지에 가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목적지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질문의 책/  에드몽 자베스     


바닥에서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을 만드는 일..

따라서 쓴다는 것은  목적지에 가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목적지를 넘어서는 것임을 늘 기억하면서...     

아직 못하단 ‘첫’을 찾아가야겠다... 아직 이르지 못한 목적지를 향하여....

또다시 바닥에서...

늘 새롭게 태어나기 위하여......

늘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늘 부족한 책 어미에게 과분한 상을 주신 원종린 수필문학상 원준연 운영위원장님과 심사위원님, 관계자 여러분, 축하해 주신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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