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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살갗아래

살기엔 힘들지만 나쁘지는 않다 The Skin of the Wolf,


늑대의 살갗 아래 

The Skin of the Wolf, Bajo la piel de lobo, 2017   스페인 영화     

 

영화의 시작은 눈 내리는 풍경이다. 스페인 북부의 외딴 시골 마을에 사는 사냥꾼 마르티 논은 눈 길을 헤쳐 가며 덫을 놓고 덫에 걸린 짐승을 집으로 끌고 온다.  대사 없이 사냥꾼의 익숙한 몸짓과 쏟아지는 눈, 첼로 음악으로 화면이 가득 찬다. 오직 본능에만 충실한 남자, 먹고 자고 사냥하고...

늑대를 사냥하지만 늑대에게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기에 그는 늘 긴장하며 살아간다.

영화의 처음은 사냥과 사냥한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과 불을 피우고 잠을 자는 장면... 정성 들여 늑대 가죽을 다듬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봄이 되어 눈이 녹으면 겨우내 사냥해 둔 늑대 가죽을 등에 짊어지고 마을로 내려가 늑대 가죽을 판다. 그의 늑대가죽은 질이 좋아서 사려는 사람들이 항상 대기 중이다. 바텐더 세베리노는 마르티 논에게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못할 터인데 아내를 얻어 아들을 낳으라고 말한다.     

산악지대에서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마르티논은 마을에 올 때마다 성적 욕구를 충족해 온 여자 파스 쿠알라를 늑대 가죽과 돈을 주고 산으로 데려온다.

여자의 아버지 세베리노는 과부인 딸이 임신 중이라는 것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서둘러 늑대 사냥꾼과 결혼시키지만 허약한 여자는 산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거의 앓아누워있다가 마침내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다. 나무로 아기 침대까지 만들어 놓은 마르티 논은 아기 침대를 부숴버리고 결국 시신을 동여매  여자의 아버지에게 가져간다.

임신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고 자신에게 딸을 판 세베리노에게 돈과 늑대 가죽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자 영악한 그는 막내딸을 방패막이로 내세운다.     


병약한 여자가 산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죽어서인지 마르티논은 두 번째 여자의 이빨까지 들여다본다. 다시는 병약한 여자를 데려가지 않으려는 듯.... 결혼식을 마치고 마르티 논을 따라 딸이 떠나려 할 때 아버지는 절대 그에게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만일 견딜 수 없거든 ‘이것’을 사용하라고 독초를 건넨다.     

험준한 계곡을 지나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마침내 그의 은신처에 도착한다. 두 번째 여자에게 마르티 논은  “이곳은 살기에 힘들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는 말을 한다.

그럭저럭 산속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갈 무렵 그가 마을로 4일 정도 내려간 사이 여자는 언니의 무덤과 죽은 아기의 무덤을 보고 슬픔에 젖는다. 그의 아기를 임신한 여자는 공포와 슬픔, 분노와 절망을 느끼며 남자가 마시는 물에 독초를 탄다.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점점 쇠약해지고 복통과 구토에 시달린다.


마르티 논이 사냥 나간 사이 여자는 짐을 꾸려 도망치는데 하필 늑대 잡이용 덫에 발이 끼는 중상을 입는다. 눈은 밤새 내리고... 다음날 여자를 발견한 마르티 논은 덫에 상처 입은 여자의 발을 치료하고 거의 동사 직전까지 갔던 여자의 몸을 늑대 가죽으로 따뜻하게 덮여준다.

늑대 이불만으로 부족했던지 그녀를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여자의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     

여자의 몸에서는 하혈의 흔적이 있고 마르티논은 그토록 바라던 아들에 대한 소망을 버린다

여자에게 여기는 해가 일찍 저무니 서두르라고 말한다.

몸이 좀 괜찮아지면 떠나라고....          


여자가 떠난 집 찬장에서 독초가 든 병을 발견한 그는 배신감에 젖지만..... 몸은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음을 안다. 늑대를 잡기 위해 덫을 놓다가 커다란 늑대와 마주치기도 하고 동굴 속에서 나와 햇살을 보고 눈이 부신 듯 한 늑대를 바라보기도 한다. 늑대는 잡아도 끝없이 번식하고...

타고난 늑대 사냥꾼인 그가 사라져도 또 누군가 늑대를 사냥할 것이다.          

염소 우리의 문을 열어 염소들을 풀어주고... 가슴을 움켜쥐기도 하고 구토를 하기도 하면서 그는 침대에 눕는다. 총을 한 손에 쥐고 있다     

눈이 내리는 깊은 산속... 총성이 울린다. 늑대를 사냥하던 그 총으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늑대의 살갗아래>라는 영화를 이렇게 한 줄로 압축해 소개해 놓았다. 

 “산에 홀로 사는 사냥꾼이 아들을 얻기 위해 한 집안의 자매를 데려와 함께 살다가 자살하는 극영화”

그러나 이 한 줄로 이 영화를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들을 얻기 위해 자매를 데려와 번갈아 살다가 자살한 이야기라니... 영화의 본질,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하나도 전달하지 못한다     

늑대의 살갗아래...라는 제목에서부터 예사롭지 않다

첫 번째 아내가 병에 걸려 누워있을 때도 두 번째 아내가 동사 직전 추위에 떨 때도,  여자를 데려와 성적인 욕구를 해소할 때도 늑대 털가죽 이불이 있었다. 은빛 늑대의 살갗아래 사랑을 나누고 몸을 데우고.... 

그러나 늑대의 살갗아래 그가 원하던 아이는 사산한다. 첫 번째 여자의 몸속의 아이는 그의 아이가 아닐 수 있지만 어쨌든 임신한 암 늑대를 사냥하기도 했던 그에게 늑대는 늑대의 방식으로 보복을 한 것인가.

두 번째 여자가 달아나다 늑대 잡이용 덫에 발이 걸린 것도, 그의 아이를 유산한 것도 늑대의 저주 같은 것이었을까? 암컷 늑대를 죽인다는 것은 어쩌면 미래의 아기 늑대를 죽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첫 번째 아내의 죽음은 그가 암컷 늑대를 사냥한 것에 대한 늑대의 드러나지 않는 저주 같은 것이라면

두 번째 아내가 임신한 생명을 유산한 것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늑대 아기들의 저주 같은 것이었을까.

생명이란 결국 이어져있다. 사람의 생명이나 늑대의 생명이나 결국은 동일한 것이다.       

   


남자는 거의 말수가 없다. 명령하는 듯한 말투. 그러나 여자가 힘들어할 때마다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기도 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에는 능숙하지만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가 아내를 얻은 이유는 함께 살아갈 동반자라기보다는 아들을 얻기 위한 목적이 컸다. 아내가 있든 없든 그는 혼자일 때처럼 늑대를 사냥하고 늑대 가죽을 벗겨내고, 자르고, 두드린다. 눈 내리는 깊은 숲 속 오두막에서 여자들은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언니의 죽음으로 얼떨결에 사냥꾼의 아내가 된 동생은 더욱 주어진 현실에 대한 반감이 컸으리라.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여도 독초로 사냥꾼을 살해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자의 아버지는 사냥꾼에게 빚을 진 것이고 그 여자는 아버지의 빚을 청산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 것. 여자가 사냥꾼의 아내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거부하는 방법이 사냥꾼을 조용히 죽여가는 것이라니...

남자는 여자의 생각도 모르고 달아나다 덫에 걸린 여자를 늑대 이불로 감싸주고 자신의 체온으로 몸을 녹여준다. 늑대의 살갗아래... 늑대의 살갗아래 남자는 여자가 살아나기를 원하고 여자는 남자가 서서히 죽어가기를 원한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그가 첫 번째 여자를 데리고 와서 중얼거린 말이다.

그는 처음으로 안온한 가정을 꿈꾸었으리라. 첫 번째 여자가 아이를 낳다가 죽자 그는 언 땅을 파다가....

그곳에 있는 수많은 십자가들을 발로 부수고 손으로 뽑아 버린다.

아마도 그것은 또 다른 여자들의 무덤이 아니라 그가 죽인 늑대들의 무덤이 아니었을지...          

먹이사슬, 먹이 피라미드... 우리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관계들 속에 살고 있다.

늑대의 살갗아래..

이 영화는 대사가 많지 않은데 유독 기억나는 대사는 

그가 첫 번째 여자를 데려와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과

두 번째 여자에게 " 이곳은 살기엔 힘들지만 나쁘지는 않다"라는 말이다.

이 두 마디 말은 세상살이에 대한 압축이 아닐까...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바람과

세상살이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은 아니라는....

'힘든 것'과 '나쁜 것'은 분명 다르다.. 힘든 삶은 있을지라도 나쁜 삶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늑대 사냥꾼이 두 번째 아내를 다시 마을로 돌려보낸 것도 그녀의 삶과 자신의 삶이 '나쁜 삶'이 되지 않을 끼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나쁜 삶에 이르지 않기 위해, 아내를 돌려보냈고 늑대를 사냥하던 총으로 자신의 힘든 삶을 마감하였다.

스토리의 반전이나 복선, 흥미진진함 같은 것은 없고 눈 내리는 풍경과 꽃 핀 봄날의 풍경과 같은 풍경묘사가 많았지만 몰입의 힘을 지닌 영화였다.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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