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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편안하고 가장 불안정한 자세로 하늘을 향해

새는 누워있다.

9월 첫날이다.  8월 31일이던 어제와 9월 1일인 오늘, 무엇이 달라졌을까.... 상징적으로 8월은 여름의 달, 9월은 가을의 달처럼 여겨진다.          

중첩된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진다

어제의 나뭇잎과 오늘의 나뭇잎. 두서없이 손을 흔든다. 연초록 진초록 빛 손들... 

나뭇잎들은 햇살의 미세한 변화를 알까. 아마도 알 것이다.

그 미세한 변화들의 끝에 이르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도..

수많은 프레디를 바라본다

나뭇잎 프레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던 다니엘의 목소리도 듣는다.

햇살과 바람과 소리와 색깔과... 어떤 경험을 하였느냐가 어떤 색으로 물들게 될지를 결정한다고 하였지.

생각해 보면 사람이나 나뭇잎이나 결국 같은 존재가 아닌가.     

내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나무의 끝에 나는 매달려있다. 어떤 변화도 어떤 모험도 어떤 생각도 어떤 기회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살아갈 뿐...... 다만 오늘을 받아들이고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새로운 계절의 시작에 죽음을 목도한다. 산책로로 이어지는 아파트 화단 근처에 작고 동그란 물체가 누워있다. 등을 반듯이 누이고, 생애 최초로 가장 편안하면서도 가장 불안한 자세로 하늘을  향해 있다.

새의 죽음이다. 그 새의 종류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비둘기인 듯도 싶고 비둘기가 아닌 듯도 싶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산책길에 마주쳤던 바로 그 새다.

뒤뚱거리며 절뚝거리며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날개를 질질 끌고 발자국 소리가 나자 서둘러 덤불 속으로 피하던 새.... 먹이를 찾는 것이려니 생각했었다.

길고양이가 있는 숲.... 새의 안위가 걱정되었었다.     


8월의 마지막 주... 덤불 속으로 몸을 숨기던 그 새를 9월 첫날 죽음으로 마주한다.

덤불 속에 숨어있던 새가 어찌하여 산책로 시멘트 길로 나와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처음으로 가슴을  펴고, 처음으로 하늘을 우러르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터전이었던 하늘을 향해 누워있다.

새의 망막에 비친 마지막 하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날아왔던, 날아야 했던 그 시간이 정지된....

지상에서의 마지막 기억, 마지막 호흡, 마지막 날갯짓.....

현실에서는 날 수 없는 새, 너머의 세계에서는 자유로이 날고 있으리라.     

9월이다. 여전히 지속되는 것들.... 생과 사.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어가리라.

새의 사체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머뭇거리다 또 머뭇거리다... 뒤돌아 왔다... 새의 죽음에 내가 부채를 떠안은 듯한 기분에 마음이 무거웠다. 땅을 파고 묻어주었어야 했을까.....


햇살아래 누군가  새빨간 고추를 말려놓았다 

눈이 빨간 비둘기... 눈이 고춧빛으로 물들도록 고추씨앗을 먹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빨간 고추사이 빨간 장화를 신은 눈이 빨간 비둘기는 지금 포식 중이다,

우리에게 빨간 고추는 매운맛이지만 새에게 고추 씨앗은 보양식이라고 한다.     

새빨간 고추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나른한 포식을 즐기는 비둘기를 아무도 쫓지 않는다. 새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고양이마저도 두렵지 않다.      

이름조차, 종류조차 알지 못하는 어떤 새는 9월 첫날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토록 볕 좋은 날, 빨간 고추 더미에 얼굴 한 번 묻어보지 못하고 뒤척이고 뒤척이다.... 하늘을 향해 바로 누운 채로... 떠났다.

새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9월 첫날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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