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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흐르는 시간과 쌓이는 시간 사이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다

시간에 대한 정의     


  시간을 헤아리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에서 시작해 무한하게 한 단위씩 1년이든 1분이든 1초든 더해가는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로켓을 쏘아 올릴 때와 마찬가지로 미리 정해놓은 미래의 시점을 향해 한 단위씩 시간을 지워나가는 방식이다. 카운트다운하다가 남은 시간이 제로가 되었을 때 ‘미래’라는 로켓은 우주로 소멸된다.   어김없이 한 해의 끝에 이르면 시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게다가 오늘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는 날은 더욱 시간의 덫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간을 더해가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올해 나이가 몇 살인데 내년에는 몇 살이 되는구나. 어르신들의 나이를 묻는 방법에 ‘춘추’라는 말이 있다. ‘춘추’란 말 그대로 봄과 가을을 말한다. "당신의 삶에서 봄과 가을을 몇 번이나 거쳐오셨소?"라고 묻는 셈이다. 대단히 낭만적인 질문이다. 거쳐 온 여름과 겨울을 묻는 대신 거쳐온 봄과 가을을 묻는 셈법. 내가 거쳐온 봄과 가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의 유한한 삶을 생각한다면 이미 정해진 시간에서 해마다 줄여가는 방식이 더 합리적인 시간의 셈법 인지도 모른다. 기다란 양초에 불을 붙이면 양초가 타면서 촛물이 흘러내린다. 공기 중으로 연소되어 사라지는 기체들. 심지는 까맣게 타들어간다. 초의 길이는 처음에는 그다지 짧아진 것 같지 않으나 어느새 눈에 띄게 짧아진다. 실제로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염색체의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는 것이 사람의 수명과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태어날 때 저마다 생명의 초를 한 자루씩 지니고 태어난다고 가정해보면 장수하는 사람은 길이가 유난히 긴 초를, 단명하는 사람은 길이가 짧은 초를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각자가 지닌 생명의 초 길이를 미리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서구에서는 카이로스의 시간과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나뉜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 양적인 시간, 객관적 시간, 인간 역사 속에 흐르는 연대기적 시간, 즉 해가 뜨고 지는 결정되는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 시계 시간)’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 구체적 사건 속에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시간,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시간, 질적인 시간, 기회와 때가 있다는 ‘카이로스(Kairos, 사건시간)’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이로스는 놓치면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기회의 시간’을 말한다. 카이로스 신은 앞머리가 길고 뒷머리는 대머리다. 어깨와 발목에는 날개가 있다. 이유는 앞머리가 무성하여 사람들이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는 대머리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한번 지나간 기회와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카이로스적 시간 개념이다. 삶은 변화 없이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카이로스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에 대한 그 어떤 정의든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다. 쌓여가는 시간이든 소멸하든 시간이든, 객관적으로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든, 특정인에게 특별한 순간으로 정의되든 시간이든 시간은 개인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시간의 마일리지가 쌓여가는 것인지 소멸되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특정한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일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전 기록과 마주칠 때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현재 시제의 나와는 별개로 이미 정신은 기억 속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있다. 유난히 또렷하고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정신은 과거 어느 한 시점에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몸은 현재에 있지만 정신은 언제로든 미래로 달려갈 수 있다. 과거라는 시간 속에 나를 찾는 것은 사진이라거나 편지. 다이어리와 같은 구체화된 기록물을 통해서 지만 미래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에 나를 찾는 것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관념들이다.

시간이 쌓여가는 것인지 소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눈 내리는 도시를 바라본다.  회색도시, 회색 아파트의 머리 위로 새하얀 것들이 쌓여간다. 그 위로 소란스러웠던 한 해가 소리 없이 덮인다./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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