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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품을 믿었어요!" 이런 확신을 갖는 일

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에서

     

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시상식에 다녀왔다. 시상식에 이어 학술포럼과 팸투어가 진행되는 1박 2일 코스다. 청송 객주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멀었지만 문득 떠나 온 이에게 청송의 나무들은 가을로 보답했다.


2019년... 벌써 꽤 오래전 일처럼 여겨진다. 그때는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쫓기는 사람처럼 청송객주문학관에서 택시를 불러 청송 터미널로, 청송 터미널에서 동대구 역으로... 그리고 기차를 환승까지 하여 귀가... 새벽에 나갔다가 한 밤중에 돌아오면서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여유 없이 살아가는지 하는 희외가 들었다.

인근 지역이 아닌 한 차를 가지고 가더라도 단풍철 도로의 혼잡을 생각하면 청송은 쉽게 돌아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그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1박 2일 여정에 참여하리라 생각했다. 

10. 26일까지 급하게 마무리해야 했던 원고 초고를 새벽까지 정리하고 10. 27일 기차에 몸을 실었다. 빨간 여행 가방을 들고 플랫폼에 선 나.... 금요일 오후 수업과 토요일 오전 수업은 추후 보강으로 미뤄버리고... 이번 여행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빠름’의 시간에서 벗어나보기로,

‘해야만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보기로...

‘누구의 무엇’에서 1박 2일은 벗어나 보기로....

오롯이 수필가 려원으로만 살아보기로...     


대구 수성구 어린이 회관에서 10시 집결하여 청송객주문학관으로 이동하였다.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내비게이션을 보고 길을 잘못 찾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날. 내가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면 되었다.     


시상식은 늘 설렌다. 상의 색깔과 무늬 때문만은 아니다. 오는 이들의 표정이 서로를 설레게 한다. 알지 못했던 전국 각지의 문인들을 만난다. 만찬과 축하공연과 심사평, 김주영 선생님의 강연.... “문학은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합니다.” 이 말이 뇌리에 날아와 박혔다.     

문학은 나를 감출 수  없다. 어떤 글을 쓰든 그 안에는 반드시 내가 있다. 은폐하려고 하여도 글 한 모퉁이 어딘가에 여전히 자리 잡은 나를 본다.

자기를 비추는 거울. 사람들은 내 글을 읽으며 나의 어떤 부분을 덩달아 읽게 될까.

또한 나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읽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내 책과 내 글의 첫 독자는 언제나 ‘나’였다. 행간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나를 찾아 읽어내는 일. 때로는 민망한 독서였다.     

 


객주문학관의 밤바람은 차가웠다. 산이 깊어서일까. 삼삼오오 여행가방을 들고 숙소로 이동한다. 달빛 아래, 캐리어 끄는 소리가 묘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한 방에 있다. 각자 자기가 터를 이루고 사는 곳의 얼굴과 표정을 가지고 왔다. 그것을 읽어내는 일이 흥미롭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 읽고 쓰는 즐거움을 아는 이들.. 청송의 밤은 깊었고 밤의 침묵이 찾아왔다     

주산지, 송소고택, 야송미술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어울리는 여정이었다.

행사를 주최하는 일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임에도 벌써 10회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경북일보와 청송군의 환대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의 대상 공동수상자인 소설의 김외숙 선생님은 북미대륙에서 날아오셨다. ‘그 아침의 농담’ 제목부터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그녀의 작품도 울림을 주는 수작이었지만 그녀의 수상소감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저는 제 작품을 믿었어요.... 제 작품이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요.”     

자기 작품을 믿을 수 있는 힘. 그것이 질투 나도록 부러웠으며 경이로웠다.

나는 글을 쓰면서 과연 몇 번이나 내 작품을 온전히 믿어본 적이 있을까.

어딘가에 투고를 하고서도 상을 타면 탄대로 수상권에 들지 못하면 못한 대로 유능과 무능과 충만과 결핍과 자긍심과 열등감, 지루한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다. 때로는 심사위원 취향이라느니, 문운이라느니 하는 비루한 핑곗거리 찾아보기도 했다.

글에 대해서가 아니라 생각해 보면 ‘나’에게 집중해 버린 시간이었다.     


내가 믿을 수 있을 만큼 완전한 글.......

글을 쓰는 이는 자신의 작품을 믿어야 한다. 근거 없이 믿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믿을 수 있을 만큼 글을 쓰라는 의미다. 

청송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 ‘자신의 글에 대한 믿음’이라는 화두를 품고 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무언가를 쓰고 있다. 자신의 글에 대한 믿음을 갖는 날이 언제 올진 아직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그 아침의 농담처럼 내 글에 확신과 믿음을 갖게 되는 날이 찾아오기를...

그런 농담은 언제나 두 팔 벌리며 환대할 것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꽃과 커피를 바치는 것은 어쩌면 내 책에 대한 스스로의 존중과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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