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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거친 마디에 홍등을 켰다

당신을 '빨강'하는 화살나무들은..

화살나무     

지난해 겨울 아파트 화단에 짙은 갈색 나무군락을 보았다. 쪽 뻗지 못하고 거칠거칠한 마디를 지닌... 어쩌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이름하여 ‘화살나무’라 한다.

화살나무(Eunoymus alatus)는 우리나라 토박이 나무인데 줄기에 붙어있는 독특한 모양의 날개 때문에 화살나무라 부른다.  숲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줄기에 날개를 붙여 더 크게 보임으로써 초식동물들이 기피하게 하는 전략이라고 한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나무 울타리의 대용으로 사용되어 왔으리라.     

겨울바람이 거친 가지를 마구 뒤흔들어도 화살촉 하나로 겨울을 났다.


이른 봄, 그 거친 마디에도 연초록 잎이 돋았다. 연초록 잎으로 뒤덮인 화살나무는 싱그럽게 보였다. 연초록 잎은 그 어떤 거친 흔적도 미화시키는 마력을 지녔다.

날카로운 화살은 보드라운 연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화살에 얹은 연둣빛 꿈. 화살나무의  젊고 푸른 꿈이다. 


여름을 지나 가을... 벌써 11월이다

화살나무는 어느새 붉은 깃을 달아 놓았다. 누구를 향해 쏘려는 ‘붉음’인가.

가을은 뜨거워지는 계절이다. 누구에게나... 

달궈진 화살촉에 짙은 빨강이 묻어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자잘한 붉은 열매도 매달이 놓았다.  

온통 새빨간 것들 사이를 서성이면서 이대흠의 시 <나는 당신을 빨강 합니다>를 떠올린다. 


<나는 당신을 빨강 합니다>     

                              이대흠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오직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키워온 말입니다 아직은 익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말은 세상에 없는 첫 향기일 것입니다 어떤 냄새와도 다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마음입니다     

     

비슷한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껍질만 닮았습니다 보고 싶다는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은 저온 창고의 과일들처럼 이미 죽은 말입니다 나는 당신께 살아 있는 말을 건네러 왔습니다 나는 처음을 꺼냅니다 나는 당신을 빨강 합니다 이토록 싱싱한 나의 빨강을 당신께 드립니다     

- 시집 《코끼리가 쏟아진다》 이대흠(창비, 2022)   

  


화살나무는 지금 온몸으로 ‘빨강’을 하는 중이다.

뜨겁게 달궈진 화살촉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키워온 말, 화살촉에 얹어 놓았다. 

밤새 가을비 내렸는데...

세상에 없는 말을 전하기 위해... 

저온 창고에 저장된 과일처럼 죽은 말을 하고 싶지 않기에...

거친 마디에 홍등을 켰다.   저 불이 오래도록 타오르기를....... 바람이 거세어지더라도...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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